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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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었습니다.
그분이 세상에 계셨고 그분이 세상을 지으셨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요한은 그분에 대해 증언해 외쳤습니다.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그분이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분이 바로 이분이시다.”
그분의 충만함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분에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품에 계시는 독생자께서 하나님을 알려 주셨습니다.
서론:
어제부터 요한복음 큐티가 시작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마태,마가,누가 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부르는데 반해서, 요한복음은 이것과 구별해서 제4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보다 한 세대가 더 지나서 기록되었는데요.
그렇기에 요한은 이미 공관복음에 기록된 내용들은 많이 생략해서 저술했습니다.
대신에 특별히 일곱기적을 엄선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인간에게 베푸신 기적이 나타나죠.
또한 공관복음은 주님의 가르침을 주로 설교와 비유형식으로 기록한 반면에
요한복음은 주님께서 유대인과 토론하시며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요한복음의 목적은 20장 3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록된 목적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서론은 이쯤에서 마치고 함께 말씀나누겠습니다!
참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참 빛이십니다. 할렐루야?
빛도 여러가지 종류의 빛이 있죠
사단도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다닌다고 말합니다.
거짓된 빛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빛은 수많은 종류중 하나의 빛이 아닙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참 빛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14절에 보시면 그분의 영광속에 은혜와 진리가 가득하다고 말하는데요.
그분의 빛은 은혜와 진리의 빛입니다.!
진리의 빛인 것입니다.
그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거짓이 분별되며 참진리가 예수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특별히 요한복음에서 처음에 예수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정의하죠!
그러면 예수는 = 말씀 = 참빛 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요.
큐티를 통해 말씀을 묵상할때 빛이 비추일 것입니다.
우리의 우둔함이 밝혀지고,
잘못된 생각들이 깨우쳐지고, 어둠이 밝혀지기 시작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생각들도 조명을 받아야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말씀의 빛에 비추어, 잘못된 생각과 우둔함을 깨우치십시요.
생각을 분별하십시요.
위로부터 오는 영의 생각인지, 이 땅의 생각인지 분별하십시요.
땅의 생각이라면 멈추십시요, 끊어내야합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빛앞에 조명을 받읍시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변화되었다고 말합니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신앙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진짜 믿고 있는가?
이 정체성이 내면 깊이 뿌리 박혀 있는가?입니다.
이 믿음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론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다 이루신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당신을 살리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다는 표징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이 내면 깊이 뿌리 박혀야 고난이 와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이 정체성은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입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입니다.
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자녀삼아주신 그 사랑이 나의 내면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할렐루야!! 예 그렇죠!!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의 자녀의 정체성으로 일어나십시요! 할레루야!
마지막으로 요1:14 보겠습니다.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성육신에서 3가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1)그리스도의 겸손을 묵상하게 됩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것입니다.
보좌 위에 계신 분이, 가장 낮은곳으로 구유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친구가 되어주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죠.
우리의 본능은 주류층에 들어가고 싶어하죠
주류중에서도 주류가 되기 위해, 그 주류중에 주류가 되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낮은 곳으로 가십니다.
주류층에서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십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계속해서 소외되고 비주류가 된 이들을 찾아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 낮은곳으로 나아갑시다.
그것이 성육신입니다. ‘겸손’입니다.
2) 말씀이 육신을 입음으로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살아냅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둥둥떠다닌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기 원합니다!
말씀이 삶이 되기 위해선,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말씀 앞으로 자신의 삶을 던져봐야 합니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말씀 앞에 순종해보기 위해 몸부림칩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도록!
바로 그럴때 그것이 우리의 영성이 됩니다. 할렐루야!
3)성육신은 사랑입니다.
지난 금요예배때도 나눴지만,, 성육신은 엄청난 사랑입니다.
우리는 지구의 대자연을 보면서도 감탄하는데, 지구는 우주에 비하면 먼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인간은 지구에서 봐도 먼지 같은 존재인데, 우주차원에서 보면 어떻겠습니까?
현미경으로 봐야.. 보일 수 있을랑가요..
그런데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옷을 입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은 믿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 이 사랑 속에서 헤엄쳐봅시다.
그리고 하반절을 보시면, 요한은 예수의 영광을 보았는데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영광이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것이 제 개인적인 기도제목입니다!
그분의 영광보기를 원합니다!
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그 영광을 보게하옵소서!
그 영광의 빛을 볼때 도대체 얼마나 진리가 충만하게 가득차있을까? 그 은혜는 어떤 은혜인가?
보고싶어요 ! 할렐루야!
사도바울도 그 영광의 빛을 보고 단번에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아보고
전생애를 다 받쳐서 그분을 따랐자나요!
그 영광을 구합시다 할렐루야! -> 금요설교로!
기도제목
1)말씀의 빛으로 비추십시오
2)하나님의 자녀된 권세
3)성육신으로 겸손, 말씀이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