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비가 되었나요

송구영신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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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비가 되었나요‌

마태복음 20:12–16 (NKSV)
12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였습니다.’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
16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cs루이스는 우리에게 가장 큰 죄라고 하면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기심”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는 이기심을 우리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곤경이라고 지적을 합니다.
이 이기심은 갓난아기서부터 죽기 직전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이기심이 마음에 가득찬 상태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온 세상이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토마스 홉스는 이런 인간의 모습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의 본성인 이 이기심이 정의라는 것이 되면 서로 경쟁과 갈등으로 인해 끔찍한 죄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상태라고 말을 합니다.
이기심의 자연상태 안에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생존과 이익의 욕망을 추구하고 제한된 자원속에서 무한경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늘 투쟁가운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이 채비가 되었나요 입니다.
이 채비라는 말은 우리 고유말입니다.
어떤것을 준비하거나 필요한 것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준비라는 말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다양한 것이 담겨있는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우리는 죄의 대한 채비는 태어날때부터 이미 마쳤습니다.
이 이기심으을 조절할 수는 없을까요. 이 이기심을 조절하는 수도꼭지를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이 정의의 수도꼭지를 차지하기 위해 선점하기 위해 싸움을 벌입니다.
사회의 문제가 터지면 앞을 다투어 그 일에 마치 관심이 많고 지금 걱정을 많이 한다는 투로 글을 써서 올리고 말을 합니다. 정의를 선점하기 위해서 말이죠.
오늘 말씀의 본문은 포도원 농장 주인이 수확할 때가 되었는데 일군이 부족하여서 마을 광장에 가서 일할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첫번째 만나 사람에게 아침6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해주면 일당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했습니다. 일군이 더 부족해서 다시 광장에 나가 아침9시부 일해주면 적당한 일당을 주겠다하고, 또 부족하여서 12시에, 오후3시에 가서 일꾼을 그런식으로 데려옵니다. 이제 일이 거의 마쳐갈 때쯤 다시 5시에 나가서 일군을 데려옵니다.
일이 다 마친 후에 일당 정산을 하는데 모두에게 주인이 똑같은 일당을 지급하는 겁니다. 6시부터 일한 사람이나 5시에와서 1시간만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데나리온을 지급합니다. 일찍 온 일군이 항의를 합니다.
이게 말이됩니까. 아침 일찍 와서 하루종일 땀흘리며 일한 나와 끝나기 한시간전에 와서 일한 이 사람과 같은 일당을 받는것이 맞습니까.
이것이 정당한 대우입니까. 한마디로 이것은 정의롭지 않아요 라고 따집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연봉을 가지고 따져 본 분이 계십니까?
주인이 어떻게 말했을까요
마태복음 20:13–15 NKSV
13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보시오, 나는 당신을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당신에게 주는 것과 꼭 같이 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것이 당신 눈에 거슬리오?’ 하였다.
마태복음 20:13–15 NKRV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그런데 저라도 사실 이 이의를 제기한 사람과 비슷한 마음으로 따질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이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의제기에 주인의 답이 명확합니다.
15절에서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내것을 내 뜻대로 하는데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라는 의미인데 직역을 하면
이렇게 보는 네 눈이 악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충분히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 외근을 가게 되었는데 회사 업무용 차량이 경차였습니다.
아주 길다란 경사를 만났습니다. 사거리를 지나 올라가는 길인데 제가 거의 신호에 까딱까딱해서 앞차와 뒤차가 함께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차 뒤차는 큰차들이어서 그냥 쑹 지나가는데 제차는 출력이 약해서 단속하고 있던 경찰한테 잡혔습니다.
제가 억울해서 왜 저만 잡으세요. 저 앞차도 같이 지나갔고, 내 뒤차도 그냥 보내고 그랬더니 경찰이 아쩌씨가 재수가 없는거지요 뭐…이러는데 어쩔수 없지요.
무엇이 옳고 그런지 우리는 알고 있지만 사실 이것이 나의 일이 되면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오히려 부당하다며 따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주인이 차라리
가장 좋은 방법은 첫째 처음부터 시급제로 주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고
두번째는 먼저 왔던 사람들에게 조금 더 얹어 주면 되었을것이고
마태복음 20:10 “10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맨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이 마음이 일군들에게 있었습니다.
그것마저 아니면 돌아갈 때 가장 먼저 왔던 사람들에게 먼저 주고 돌려 보냈으면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0:1 “1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마치 천국이 이 포도원의 이야기와 같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으례히 이래라고 하는 세상의 보편적 정의와는 다른 것이다입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수고하고 얻은 것이 정당하고 더 많이 일한것에 더 많은 대우와 보상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또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하나님 나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완전한 정의가 존재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기심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한 어렵습니다. 이 이기심위에 우리의 정의가 서 있기때문입니다.
“내로 남불”이라는 말, 내가 불리할 때는 정의가 불편하고 내가 유리할 때는 정의가 당연합니다.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 책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신화다 라고 말을 합니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실제하는 세계가 어디 있냐 라고 질문합니다.
왜 나중에 온 사람이 우리와 같은 대우를 받습니까.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정의 아닙니까 라고 묻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보다 못한 사람이 더 누리지 않는 것이 평등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인은 “너의 눈이 악하다”라고 말합니다.
주인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요? 일할 사람이 정말 필요해서 오후5시에 나가서 1시간 일할 사람을 데려왔을까요?
일당 1데나리온은 당시 하루 생계를 감당할 수 있는 아주 평균적인 돈이었습니다. 이 돈이면 평범한 사람이나 소망이 끊어져서 힘든 사람, 일할 곳을 잃은 사람들이 하루라도 살수 있는 돈입니다.
포도원주인의 의도는 일할 량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데나리온이라도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그 돈을 주기위해서 부른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배의 정의를 갖다 붙여서 분배를 하면 한시간 일한 사람은 다음날 굶어야 합니다.
포도원주인의 분배는 대가없이 주는 은혜의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당 간당 도착했는데 하루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신것을 잘 보십시오. 우리가 특별한 자격이나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어서 우리가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기로 선택하셨고, 은혜를 모두가 동일하게 누릴 수 있는 은혜를 값없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온자입니까 나중에 온자입니까
우리는 늘 내가 가장 나중에 온 사람이지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간당간당왔는데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구나.
저는 늘 불평했습니다. 왜 하나님 나는 신학교를 늦게가게 만드셨습니까. 일찍 와서…쫌…. 근데 지금 고백하면 이렇게라도 불러서 하게 하시니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이기심의 바탕위에 세워진 이 불공정한 세상, 이기심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정의를 무시해야 하는 세상, 정의마저도 이기심으로 불공정해버려진 이 세상
이런 세상을 살아갈 채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년 한해 어떻게 채비해야 할까요.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라도 부르신 은혜 감사하고 이렇게 신앙생활하게 하신 것 감사하고
주변에 왜 이런거야 아니라, 나의 조건과 상황과 상관없이 한데나리온 주신 은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의의 수도꼭지를 차지하기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수도꼭지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틀어서 은혜가 흘러 나오게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0:16 “16 이와 같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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