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1-7절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로마서 강해(1)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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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과 이렇게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노예 입니다.
어떻습니까? 1월 1일에 나눌 인사치고는 별로 기분 좋지 않은 표현이지 않습니까?
다시 이렇게 인사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 입니다.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소개할 때 부정적인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중요한 면접의 자리일 경우나 상대방이 나에 대하여 잘 모를 때에는 더더욱 중요합니다.
만약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했을 경우, 예를 들어
나는 바보 입니다. 당신밖에 모르는 바보.. 이렇게 긍정적이거나, 반전을 줄 수 있지 않으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바울은 자신을 로마교회에 이렇게 소개 합니다.
본문 1절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원어를 살펴보면 헬라어로 둘로스 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둘로스는 부자집에서 집안일을 돕는 하인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노예를 뜻합니다.
지금이야 갑과 을이다, 갑질을 한다 등의 표현으로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로마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서신을 받는 당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의 이 표현은 굉장히 충격적이면서도 반감과 모욕이 섞여 있다고 생각될 단어 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집안의 물건, 재산으로 취급 받던 자들입니다.
자유나 생각, 의지가 있으면 안되는 자들입니다.
오직 주인의 뜻에 복종만 할 수 있으며, 주인이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자들이 노예 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로마교회에 처음으로 보내는 서신의 첫 인사말에 자신을 소개 하면서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노예라는 표현이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고, 가장 분명한 정체성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 노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이 의도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노예가 가지는 두 가지 이미지 때문입니다.
첫번째 이미지는 로마사회에서 노예의 모습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데로 노예는 자유가 없고, 의지가 없으며, 오로지 주인의 재산입니다.
주인은 노예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병이 들면 시장에 나가 팔아버릴수도 있고,
집에서 쓰던 물건이 고장나면 버리듯이 / 노예가 죽으면 절벽에 던져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노예가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도망을 가다가 잡히면 즉각 처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노예제도는 사람들이 부에 대한 개념을 가지면서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제도 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노예제도를 떠올리게 하면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자유가 없고, 의지가 없이
오직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노예 라고 고백합니다.
두번째는, 구약의 율법에 명시된 노예를 떠올리게 합니다.
노예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퀴리오스, 주인 입니다.
주인은 노예의 소유권을 가진 자를 뜻합니다.
바울의 고백에 대한 배경은 구약 성경의 노예법을 기초로 합니다.
성경에도 노예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가지 특이한 점은 노예 해방법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1장과 신명기 15장을 보시면 삶이 힘들어 노예가 된 자들을 부려먹고, 재산으로 소유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잘 돌보아주다가 7년째 되는 날 자유를 줘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노예가 주인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해서 영원히 자신의 주인을 섬기는 노예가 되기를 원한다면 주인은 노예에게 표식을 남길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6절 입니다.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여자분들의 귀걸이의 본래 의미가 노예제도에 기초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드립니다.
이 예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주인과 종의 관계를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귀는 순종을 상징하고, 문은 주인의 집을 상징합니다.
문에 귀를 데고 동시에 뚫는 것은 주인에게 영원한 순종을 바친다는 것과
그 주인 집안의 영원한 일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라는 고백의 정체성 입니다.
나는 영원히 그리스도의 집에 거하겠다.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섬기지 않겠다.
오직 주님만 사랑하겠다.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겠다
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것은 /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중요한 믿음의 고백이며 삶 입니다.
바울의 인생은 실패와 배신의 연속입니다.
또한 죽음의 위협과 고난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가 끝까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주인되신 주님이 그 길을 달려 가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에 바울은 단 한번도 후회나 반항, 자랑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또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라고 고백하며, 세상에 자랑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는 자신의 지식, 물질, 권위, 직분 등을 자랑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노예이기에 하나님이 주신 구원과 은혜와 사랑만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지? 내가 세운 교회가 몇개고, 내가 전한 복음으로 수 많은 자들이 회개했고, 능력이 있는 지도자야 라고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라는 가장 처절하고도 겸손한 고백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신앙의 원동력,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의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주의 종은 나를 버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고집과 권위와 권력과 인정을 위해 주인의 자리를 탐하고 높아지려는 자가 아닙니다.
주님 발 아래 엎드려 낮은 곳에서 겸손히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충성을 다하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바울과 같은 이 믿음의 고백과 삶의 순종이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의 올 한해 뿐만 아니라 평생의 고백과 순종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소원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주께서 왜 자기를 부르셨다고 합니까?
다시 1절을 보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나를 사도로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것이며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구별된 자 라고 소개 합니다.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여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으로 종이 되었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을 또한 우리를 부르신 이유와 목적인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4절 입니다.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또 한가지 특별한 단어를 사용하는데 택정함을 입었다는 표현입니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구분되다, 구별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한 존재나 직분으로 세웠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별되다 라는 말은 성질이나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현빈, 조인성, 차은우, 남주혁, 홍소명 과 같이 잘생긴 사람과
누구누구의 못생긴 사람.. 이렇게 어떤 종류나 본질의 차이에 따라 구분 짓는 것을 구별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택정함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알고 듣고 믿은 자들과 / 아직 듣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믿고 구원받게 하심으로
믿지 않는 자들과 구별하시고,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복음을 아는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물론 부르심을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구원받은 구별된 자로 부르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 부르심의 사명과 목적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위해 물질을 주셨고, 직업을 주셨으며, 재능을 주셨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고, 교회 안에서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의 부르심에 따라 기분, 형편 상황과 상관없이 부르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고, 뒤로 미루고, 감당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입니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가 맡겨주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때로는 이런 삶이 어리석고 손해보는 것 같고, 실패한 것 같아도,
나의 주인되신 그리스도를 믿고 결과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거룩이며 겸손이고 순종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과 마음이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복음을 들어야 하는 자들을 바라볼 수있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지? 인기를 얻고 인정을 받으며 살지? 라는 이러한 썩어 없어질 것들에 시선과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 있는 저 영혼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충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올 한해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자랑이며, 은혜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그 분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듣기 싫은 모욕적인 표현이지만, 이것이 바울의 정체성이며, 삶의 원동력 입니다.
설교를 시작할때 했던, 나는 예수님의 노예 입니다. 라는 이 고백이
우리의 가장 큰 자랑이며, 은혜이며, 정체성이며,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주인된 그리스도의 명령에 자신의 욕심과 의견, 자존심, 자랑과 높아지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오로지 순종과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 이외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고백의 인사를 통해 이 서신을 읽는 로마교회 교인들과 또한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함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살아가며,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며,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무엇을 원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사명인,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장전중앙교회,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우리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여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입니다.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죽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복음을 향하여 생명을 내던졌던 바울의 이 고백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으로 올 한해를 살아갈
우리의 순종과 헌신의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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