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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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오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 자유는 결코 자연스럽거나 당연한 자유가 아니에요.
우리는 원래 종노릇하며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내가 무슨 이유로 힘있는 사람들에게 보호를 받아야 합니까?
우리는 힘있는 사람에게 복종하며 제재 당하고 착취를 당해야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신을 희생하여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유를 오해해요. 먼저 이 자유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감사함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예로 들어볼까요?
여기에도 우리 자녀들이 많이 있는데 이 자녀들이 왜 이렇게 자유롭습니까? 잘 입고 잘먹고 잘 잘 수 있죠? 어떻게 이 자녀들이 자유를 누릴까요?
그것은 부모라는 대상이 있기때문에 가능한 자유입니다. 부모의 헌신과 노력과 희생이 없다면 이 자녀들은 지금과 같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잘 수 있을까요?
이 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국가가 자유를 보장해줄 의무는 없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이것을 이루기 위한 희생과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 전체가 누리는 자유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희생하시고 헌신하시고 노력하신 이유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는 당연하게 갖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것을 육체를 위한 기회로 삼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녀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기때문에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줬는데 이것을 자녀들이 육체의 욕심을 이룰 기회로 삼고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 장난감이니까 어떻게 사용하든지 내 자유야”라며 친구들과 나누지 않고,
내가 먹고싶으니까 마음대로 먹을거야”하며 밥은 먹지 않고 주스나 사탕 등을 계속 먹는다면 어떨까요?
숙제를 하지 않는 것도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도 다 자녀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자유이며, 이것이 바로 자유를 오해하여 육체의 기회를 삼는 행동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당연하게 자녀의 이런 자유를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더 어이없는 행동을 합니다.
내 몸은 내 것이니까 성적인 선택도 자유야”라며
성관계, 성전환, 성매매 등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심지어 낙태까지도 자기 몸에 관한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말과 콘텐츠는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다
이것이 SNS나 유튜브에 관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온갖 폭력적, 음란적 콘텐츠가 여과없이 사람들에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음주와 흡연 그리고 마약까지 자유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 책임도 회피하려고 합니다.
옳고 그름에 기준이 없이 자기 자신이 선택한다고 말합니다.
자연은 인간이 자유롭게 사용할 자원이니 어떻게 사용하든지 자유라고 합니다.
결혼이나 가정을 이루는 형태와 방법도 자유라고 합니다.
결혼식도 자기 마음대로 가정의 형태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결혼식을 서약식이 아니라 축제나 파티와 같이 즐기며, 동성 결혼, 비혼 출산, 다자 결혼 등을 다 선택의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내 자식이니 내 마음대로 훈육할 것이다”라며
자녀를 학대하거나 방임하고 심지어 자기 자녀를 성적으로 학대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모두 자기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에 대한 오해입니다.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예수님께서 희생하시고 그의 길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 눈물로 얻은 이 자유를 가지고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의 끝은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멸망이에요. 어린 아이가 자기혼자 장난감을 욕심내다가 왕따가 되는 것이나 간식만 좋아해서 영양실조가 되는 것이나 어른들이 담배, 술, 마약에 빠지고 절제없는 성행위를 하거나 전통과 윤리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결국엔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필요해요.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례나 율법이 필요없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하는 종노릇이란 무엇이냐?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먹고싶은 것을 절제합니다.

내가 건강수치가 나빠지고 살이 너무 많이 쪘어요. 그러면 계속 먹어주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육체의 기회를 삼는 것이고, 진정 사랑하면 음식을 절제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기적으로 건강해지기도 하지만 훨씬 더 많이 이렇게 회복이 됩니다.

돈도 쓰는 기쁨에 빠지면 불필요하게 소비하거나 낭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종노릇을 하면 내가 충분히 쓸 수 있는 돈도 절제하고, 꼭 필요하며 의미있는 곳에 사용하게 됩니다.

펑펑 쓰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관계의 문제에서도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말이나 행동이 달라집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고, 건강관리나 결혼생활
그리고 자녀양육과 사회적인 문제들에도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니 이렇습니다.

저는 최근에 야식을 자주 먹습니다.
왜그런지 야식이 자꾸 당겨요. 그런데 살이 찌거나 건강이 이상이 생기면 절제합니다. 아예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균형감은 이렇습니다.(이것은 제 나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 건강을 생각해서 운동은 못하고 있습니다.
늘 생각은 런닝이라도 하고 근력운동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못하고 있어요. 이것은 제가 제 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종노릇 해야 할 부분입니다.
종이 무슨 자기주장이 있습니까? 주인이 하라고하면 피곤하든지 아프든지 해야지요.
저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화를 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정말 많이 인내합니다. 그것은 제가 성령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내나 자녀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행동하는 부분은 약합니다. 몰라서 못해주고 알아도 못해주는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늘 기도하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입니다.
이와 같이 아주 많은 부분에서 성경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말씀을 통해서 배우고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내 생각 하나도 못바꿉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예배하고 기도하면 없던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결론

이 귀하고 값진 자유를 내 몸뚱이를 위한 기회로 삼지 마세요. 한번 사는 인생이라고 몸을 위해 막살지 마세요. 몸은 내 일부이지 내 전부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나는 따로 있잖아요.
팔 잘리면 내가 없어집니까?
다리 잘리면 내가 없어진니까?
오체불만족을 쓴 닉부이치치는 손발이 다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몸은 죽으면 썩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진짜 나를 위해 사랑으로써 종노릇하기를 축복합니다.
진짜 나는 예배할 때 너무 행복해하고, 찬양할 때 함께 노래하고, 기도할 때 숨통이 확~트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진짜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기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로 매일매일 힘쓰세요. 육체의 종노릇하지 말고 사랑으로 주님의 종이 되어보세요. 내 삶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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