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5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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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다

요한복음 1:43–51 (NKRV)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나다나엘은 빌립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라고 반문한다. 그처럼 나사렛은 하찮은 장소였으며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곳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는 곳이었다. 이와 같이 나다나엘은 빌립의 증언을 선뜻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드레가 이전에 시몬 베드로에게 말했던 것 처럼 이제 빌립도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말한다.
이런 나다나엘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47 NKRV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에 대해 누군가에게 듣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내면을 보실 수 있으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사람은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 말로 찐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다.
(암암도 UDT 진짜 군인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 사람임을 예수님께서 인정해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보다 더 큰 칭찬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보시며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47절 마지막을 보면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간사하다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미끼, 올무, 속임, 간교함, 거짓됨’ 이다. 이러한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요소들 중에 하나이고 사탄의 속성 중에 하나이다.
다시말해 나다나엘의 마음에 거짓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 나다나엘을 찐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없도다’의 시제가 현재 시제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과거 어느 한때에 거짓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거짓없는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이것이 나다나엘과 예수님의 차이이다.
사람들은 겉모습으로 많은 것들을 판단한다. 보이는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그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오늘날은 더 그렇다.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울증 환자는 더 많은 이유는 눈으로 보여지는 것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그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신다. 늘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과거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을 선택할때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이 이새의 아들중에 하나님께서 새 왕이 될 사람을 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를 찾으면 그의 아들중에 누구에게 기름을 부을지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보는데 그중에 첫째인 엘리압을 보았는데 사무엘의 눈에 쏙 들어왔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사무엘상 16:6 NKRV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무엘상 16:7 NKRV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오해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니깐 마음을 보시니깐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해도 상관없지!! 내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깐?! 이런 신앙이 과거에도 있었다. 바로 영지주의 이다. 이단인 것이다.
이런건 이런 상황과 같은 것이다.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 못만나서….” 그렇지 않다.
여튼 사람은 눈으로 보이는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은 결국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볼 때 거룩하다고 해서 그의 믿음이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진짜 신앙은 혼자 있을 때 알 수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너 없으면 못 살아!” 했던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서 “너 때문에 못살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연애 할 때는 적당히 내 모습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4시간 같이 있다보니 숨겨지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결국 마음은 행동과 삶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여러분의 마음은 안녕하신가? 예수님 예배하러 왔는데 예수님 만나러 왔는데 여러분 마음은 어떻게 잘 정리하고 왔는가? 겉모습은 멋지고 이쁘게 하고 왔는데 정말 중요한 마음은 어떻게 치장하고 왔는가?
이처럼 나다나엘을 보시고 예수님은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해주셨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나다나엘의 반응이 흥미롭다. 뭐라고 하는가?
48절에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이게 잘 못 이해하면 나다나엘이 재수 없다고 생각이 들 수 있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다나엘 너 정말 거짓없는 정직한 하나님이 택한 백성 그 모습 그대로구나!”
이러자 나다나엘이 “어!? 나 정말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면 자기도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처럼 거짓이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신을 아냐고 물은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이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48절이다.
요한복음 1:48 NKRV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본게 나다나엘이 진정한 이스라엘 사람인것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건 당시 문화를 알아야 한다.
무화과 나무 아래 있다는 말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무화과나무이다. 무화과 나무는 잎이 크고 무성해서 그 나무 밑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듣다. 그러기에 당시 랍비들은 종종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율법을 가르치거나 말씀을 묵상하였다. 그러기에 나다나엘이 거기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소망하면서 부지런히 율법을 묵상하며 연구하는 신실한 사람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이건 당연한거 아니야? 할 수 있겠지만, 당시 종교지도자들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그리 신실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우선으로 여기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소리높여 기도하였고 사람들을 의식해서 행동했던 사람들이 당시 종교지도자들 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신실하게 율법을 연구하며 묵상하고 민족을 위해 약속한 메시아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유혹들과 고난과 고통이 있었겠는가? 우리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 것인지 잘 알지 않는가?
이러한 나다나엘의 모든 것을 예수님은 아시고 인정하신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마나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신것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다.
“애야 그동안 참 많이 애썼다. 참 힘든거 많았는데 그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그 많은 것들을 손해보고 포기하면서 그 믿음지킨거 내가 잘 안다. 그동안 애썼다. 고생 많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다나엘이 뭐라고 말하는가?
요한복음 1:49 NKRV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한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지금 여러분의 현실이 어떠하던 주님이 보시는 것은 지금 여러분의 직책도 아니고, 타이틀도 아니고, 어느대학을 가는 것 도 아니고, 어느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도 아니고,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는것 그것도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잘 간직하며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 그 좋은 소식을 나다나엘에게 전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 좋은 소식을 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친밀한 그 마음, 그 마음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수요일부터 수련회를 하는 것이다. 주제가 RE BOND 이다. 다시 예수님께 붙자는 것이다. 예수님과 떨어지지 말고 다시 딱 달라 붙자는 것이다.
많이들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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