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05 주일오후예배: 시편 8편; 벨직 신앙고백서 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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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이 주일예배로 부르시고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말씀을 주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2024년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 2025년에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런 하나님께 새해에도 어김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아왔습니다. 이 2025년에도 이 예배를 통해 저희에게 부어주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기뻐하는 한 해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그런 하나님을 알고자 말씀의 자리에 나아갑니다. 부정한 입술을 통하여서 영광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알리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좋으신 분이신지 이 말씀을 통해 깨닫고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8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벨직 신앙고백서 함께 보겠습니다. 벨직 신앙고백서 2항입니다. 제가 질문을 읽으면 함께 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Q.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어떤 수단으로 알리십니까?
A. 우리는 두 가지 수단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온 우주의 창조와 보존과 통치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 가장 고상한 책으로서 피조 세계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수많은 글자들처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을 깨우치기에 충분하므로 사람들은 핑계할 여지가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신적인 그분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더욱 분명하고 충분하게 알려 주십니다. 즉,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만큼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필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이 입술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부족한 제가 아니라 영광 그 자체이신 하나님만이 이 자리 가운데서 드러나길 바랍니다. 작년까지 저와 함께 교회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면 좋겠는데요. 이번 주제는 “하나님”입니다. 교리적 용어로 지난 시간까지는 교회론이었다면, 이제부터 살펴볼 것은 “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신론”을 먼저하지 않고 “교회론”을 먼저한 이유기 있는데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교회 안에서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칫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을 “개인적”인 영역으로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교회에게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족장 공동체와 이스라엘 백성들, 신약에서는 교회에게 말입니다. 심지어 현대의 뛰어난 인쇄술로 각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성경조차도 개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서상 교회론을 먼저 배우는 것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라는 주제를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그 다음으로 교회 안에서 자신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을 통해 살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것, 바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해서 살피고자 합니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는 사랑받고 싶어하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로 들어간다면 내가 당신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어필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것을 정리하자면 한 마디로 자신을 나타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과는 다르지만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성경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소위 하나님의 계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계시에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어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영광받으시기 위해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외부로 향한 계시입니다. “한 분을 가리키는 만물”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 벨직 신앙고백서를 보시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리시는 수단이 두 가지가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통해서, 즉 전문 용어로 일반계시 또는 일반은총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더욱 분명하게 자신을 알려주시기 위한 수단으로 말씀, 즉 설교와 성경을 통해 자신을 알려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특별계시, 또는 특별은총이라고 합니다. 먼저 일반계시를 보자면, 우리가 도르트를 통해서 배웠듯이 하나님께서는 창조세계, 즉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통해서 자신을 알려주십니다. 성경 여러 곳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세상에서 자신을 알 수 있도록 계시하셨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세상을 보고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봐도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었고, 나무나 꽃을 보더라도 이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었고, 동물을 보더라도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듯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이 피조 세계를 바라봐도 우리는 더이상 하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주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려주시기 위해 자신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시기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특별계시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을 통해 자신을 알려주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가장 완벽한 계시를 보여주셨고, 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계시하셨으며, 이후에는 사도적 가르침인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통해 자신을 직접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특별계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별계시를 받지 못한 불신자들은 아무리 일반계시를 보더라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개념을 듣고 하나의 지식으로 남길 순 있으나, 이 일반계시로 하나님을 찬송하거나 그분을 누릴 순 없습니다. 이것이 신자와 불신자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며 신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신자인 우리가 특별계시를 통해 일반계시로도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말 현실에서 우리가 그렇게 보고 있냐는 겁니다. 신자인 우리의 삶 속에서 정말 자연이나 만물에서 하나님을 보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현실은 일반계시와 하나님을 떨어뜨려 놓은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계몽주의 이후로 인간은 이성을 통해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계몽주의 이전까지 진리는 인간 외부로부터 오는 그 무언가였습니다. 그러나 카톨릭과 개신교가 전쟁한 30년 전쟁 이후로 그 어디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냐는 질문에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이성을 통하여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고, 근대 이후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이 계실 자리를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여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과는 동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도 근대의 영향을 받아 아무리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에서 하나님과 연관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아침에 해가 뜨고 밤에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을 그거 자연 현상이며, 자연의 법칙이라고 인식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지 이 자연 현상을 하나님께서 오늘도 허락하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또한 봄에는 당연히 꽃이 피고, 여름에는 당연히 나무가 초록색 잎을 내며, 가을에는 당연히 낙엽이 진다고 인식하지 하나님께서 이 자연의 순리를 움직이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는 저조차도 분명히 특별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정작 현실 속에서 이 모든 자연 현상들과 하나님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피곤해하는 저를 발견하지 오늘도 아침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이 먼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 밤 동안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잠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자고 일어나서 바로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이러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 삶의 곳곳에서 드러나지는 않는지요.
우리가 삶 속에서 가장 규칙적으로 행하는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고 직장을 통해 돈을 벌게 하시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당연하게 하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들도 하나님과 분리시킬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로 치부하고, 자연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우리의 노동으로 얻은 음식이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양식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음식을 먹기에 급급하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처럼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근대의 영향으로부터 세례를 받아서 모든 것들로부터 하나님을 분리시키려는 습성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일반계시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자연 만물들을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운행하신다는 겁니다. 분명히 자연에는 법칙과 순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법칙과 순리 마저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들이며 지금도 하나님께서 자연을 운행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과학을 잘 알진 못하지만 우리는 과학으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주 복잡한 인간의 장기 구조와 아주 정교하고도 세밀하게 일하는 인간 몸을 누가 만들지 않고서야 가능하냐면서 인간의 몸을 이토록 놀랍게 만드신 하나님을 향해 감탄과 경이를 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이 우주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만드셨고, 우주에 비하면 먼지와 같은 이 지구에 인간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찬송과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그저 과학을 통해 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알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으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에서 이것을 굉장히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 시인인 다윗은 이 세계를 보면서 “여호아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노래하는 특징은 온 우주에 가득 차 있는 하나님의 장엄하고 위대한 왕권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주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감탄문으로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와 우주를 통치하고 계시는 왕이심을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다윗은 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인간을 돌보시는 분이심을 노래합니다. 다윗은 우리와 같은 이 세상을 보면서도 이 세상의 모든 자연 만물이 각기 다른 생김새와 다른 종류들을 취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세상을 바라보니 3절에서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창조 능력에 압도당하면서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 자신을 비롯하여 보잘 것 없고 비천한 인간을 돌보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같이 발견하게 됩니다.
보십시오. 다윗은 3절과 4절에서 달과 별, 사람과 인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자연과 사람을 의도적으로 비교하면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과 비교했을 때 인간은 한없이 낮고 비천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나 두 번의 “무엇이기에”라는 표현으로 더욱 강조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고백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당시의 시대상을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윗이 살던 당시에 보편적인 인간들의 생각은 달과 별을 보고 하나님을 떠올리고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 창조물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계시를 통하여 이 자연과 우주가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고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은 모습을 취해야 함을 시편 8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학을 공부하지 말거나 폄하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성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계시를 받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반계시와 일반은총들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재료로 삼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우주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겁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은 일반계시로도 자신의 아름다움과 위대하심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특별계시를 통해 일반계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우리는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계시에 있어서 우리 하나님과 다른 이방신들과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일반계시를 통해서 이방신에게도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이방신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 내부로 향할 뿐만 아니라 외부로도 향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방신들은 언제나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뽐내기 위해서 자신을 계시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이방신들과 달리 자신을 계시하심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 특히 우리 인간을 이롭게 하십니다.
이방신들의 신화를 보시면 우리 하나님과 명확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아주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시면 신들은 인간을 전혀 위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이용하고 자신의 도구로만 사용할 뿐입니다. 그리고 바벨론 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누마 엘리쉬라는 바벨론 신화가 기록된 책이 있습니다. 에누마 엘리쉬를 보면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나와있습니다. 이 신화의 최고 신은 마르둑이라는 신인데요. 마르둑은 다른 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에 그 신의 시체로 세상을 창조하고, 사람을 만듭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노동을 창조한 인간에게 부여하여 신들이 쉴 수 있도록 만듭니다. 바로 이방 종교의 신들이 인간을 만든 목적은 오로지 신 자신만을 위해서입니다. 신이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인간을 창조하신 것부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지만, 그 영광을 어떻게 받으십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들을 누리며 즐기면서 이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방식으로 영광을 받으시기로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하나님은 노동하지 않으시기 위해 인간에게 노역을 부과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미 삼위 안에서 누리고 계신 그 기쁨과 행복을 자신의 피조물, 특히 인간에게도 주시기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일반계시를 통해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무엇을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면서 세상을 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일반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항유할 수 있었습니다. 향유한다는 것은 좋은 것을 가져서 누린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신 하나님을 향유하면서 지내는 것이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특별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왜 하나님께서 구원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바로 진정한 행복자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절망과 불행만이 있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행복하게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시편 8편을 읽었는데요. 시편의 서론이기도 하며 시편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1편에서 다윗 하나님을 어떻게 노래합니까? 바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향유하는 것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 자신을 향유하게 하신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알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모든 피조 세계 그리고 나에게 허락하시는 모든 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찬송이 터져나오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경이로움과 그분의 위대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벨직 신앙고백서에서 일반계시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인 8편의 다윗의 노래처럼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위해, 우리의 행복을 위해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어 우리를 통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좋으신 분이신지 알려주기 위하여 우리가 결코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이어지게 만듭니다. 보잘 것 없는 우리를 위해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라는 이 사실을 아직까지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우리는 얼른 하나님을 전하고 싶어질 겁니다. 이 행복에 얼른 같이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 가운데 생길 겁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계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도하며,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결코 우리와 같이 자신을 드러내어 질투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자신을 뽐내고 자랑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통해 하나님을 향유하면서 그분을 마음껏 즐기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이 행복을 우리만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어 이 행복에 동참하게 만드는 놀라운 일에 쓰임받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두 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첫째는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자신을 계시하심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다음으로는 우리를 통해 아직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어 이 행복에 동참하게 되는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개념적으로, 지식으로는 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 자체를 향유하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이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듯이 아직 이 선물을 받지 못한 자들이 선물을 받고 함께 하나님을 향유하는 복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 시간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