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 엡 1:3-6

에베소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91 views
Notes
Transcript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덜어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기도
이 새벽에 주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 새해 저희의 모든 필요를 주님께서 채우시며, 저희가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축보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지혜로 저희를 인도하시고, 주님의 성령께서 저희와 동행하시며 저희의 삶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사모하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앞에 귀한 예물 드립니다. 넘치는 기쁨과 감사로 정성을 다하여 드린 예물을 축복하여 주옵시며, 이 예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귀하게 쓰여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 엡 1:3-6
에베소서를 읽다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그 안에서’라는 말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사상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단어입니다. 그래서 바울 서신에 164회나 발견되고 특히 에베소서와 같은 옥중서신에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실로 그의 몸은 로마 옥중에 갇혀 있으나 그의 마음은 그리스도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시되’ 라는 표현은 과거 미완료형입니다. 과거에 주셨고 지금도 주시고 앞으로도 주실 것인데 그 대상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안에’라는 표현을 자주 쓴 것은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깊은 신앙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바울 신학의 핵심이 되었으며 바울의 봉사생활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우리 인간으로서는 가히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신 일 중에 가장 큰 신비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신령한 복을 주시는 일입니다. 무엇이 신령한 복입니까? 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을 허락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그 신령한 복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본문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가지기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좋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자연이나 땅은 너무나도 탐욕스러운 것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의 아버지 오하라 씨는 ‘땅이야말로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죽을 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 영화도 얼마나 아름답고 좋습니까? 이 세상에서 많은 지식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빛나게 만듭니까? 그리고 땅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석들이 있습니다. 금이나 은이나 금광석, 석유 같은 것은 모두 땅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마 인간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라고 하면 제일 좋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진짜 축복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굶어 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비상 식량에 불과한 것입니다. 지식이나 돈이나 부귀나 영화나 모두 이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필요한 것들이지 우리를 영원히 가치 있게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등산할 때 비상 식량을 충분히 가지는 것은 조난당했을 때 월등하게 유리합니다. 그러나 비상 식량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비상 식량이 많아도 산에서 길을 찾아 내려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의 자리에서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비상 식량이 아니라 우리 내면을 영원히 빛나게 할 하늘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먼 눈을 뜨게 했습니다. 우리로 영원한 세계와 그 축복을 보게 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 고상해 이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같이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또 우리에게 주신 복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주셔서 죄로 인해 타 버린 우리 속사람을 다시 전보다 더 완전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귀를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성품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보물 창고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복을 마음껏 다 가져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이 세상에 속한 육적인 복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복은 모두 진짜 복이 아니고 그림자 복입니다. 사람들은 그림자가 진짜인 것처럼 자랑하며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복은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세상적인 복을 많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복을 거두어 가기도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적인 복에 배불러 있으면 신령한 복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 잡으면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보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보물인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가져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있어야 가치가 있고, 학벌이 있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보물이기 때문에 다른 것의 도움을 빌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 짧은 세상을 살면서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의 보물로 우리 속을 채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 인생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채웠습니다. 그랬더니 삶 전체가 기적이었고 능력이었고 축복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왕도 아브라함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능력 있는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보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가진 것이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 모세가 세상의 학식이나 경력으로 자신을 치장했을 때는, 사람 하나 죽이고 도망치는 신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사십 년 동안 방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속에 채우고 하나님으로 자신을 채웠을 때는, 지팡이 하나로 열 번의 기적이 일어나게 했씁니다. 그 이유는 모세 자신이 보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사는 비결은 하나님의 복으로 나 자신을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 태어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축복으 ㅣ자녀가 되는 것이 창세 전에 하나님의 예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지기도 전에 우리를 미리 축복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될 때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 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창세 전부터’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이 놀라운 복을 받을 자들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이 너무 약해 그냥 두면 저절로 하나님을 믿을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계획을 아예 창세 전부터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결국 항복하게 하시고 예수 믿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길을 보면 나는 아무렇게나 살아온 것 같은데 하나님은 치밀하게 우리의 삶을 따라오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로 우리를 몰아오셨던 것입니다. 바다에 아무리 물고기가 많아도 그물이나 낚시 없이 한 마리도 잡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은혜의 그물로 잡으셨던 것입니다. 내가 방황하고 있을 때 조용히 따라오시다가 결정적 순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손을 보이시면서,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우리를 한 순간에 낚아채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결론이 5절에 나옵니다.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아들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소를 읽은 교인들에게는 정말 실감 나는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당시는 로마의 지배 아래 살던 때였는데 이 시대의 가장 놀라운 복이 ‘왕족이나 귀족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즉 입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왕이나 귀족이나 부자들 중에서 자식이 없는 사람은 노예나 친척 중에서 양자를 택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아버지의 지위나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로마 황제 중에서 친자식보다 양자가 왕위를 물려받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로마가 진짜 로마다울 때였습니다. 나중에 진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을 때 로마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핏줄보다 능력 있는 자에게 아들을 물려 준다는 것이 로마의 정신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입양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출세요 복이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왕이되고 귀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었습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고 천사들보다 훨씬 더 높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제기하는 모든 윤리적 문제가 다 풀려버리게 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영광과 능력과 지위를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것이 우리의 신분이요 위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얼마 있지 않으면 썩어 없어질 것들에 목을 매단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잘 살고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4절말씀에서와 같이 우리로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로 전혀 흠이나 티가 없는 완전한 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우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흠이나 티가 없어지기보다는 표범가팅 얼룩무늬로 만들어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 살면서 우리를 흠 없는 어린 양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세밀한 성형수술과도 같습니다. 티 하나 없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체만 생각해도 찬송이 저저롤 나오는데 그분이 우리에게 향하신 그 은혜, 특히 그 은혜가 우리에게 가져온 영광과 축복을 생각하면 더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죄가 가져온 치명적 결과는 자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면 찬송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또 이 시대에 태어나게 하셔서 얼마나 세밀하게 나를 인도하셨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 풍덩 던지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얕은 물가에서 찰랑거리면서 있지 말고, 깊은 은혜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를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선택을 받는 성도답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개인제목기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의 강에 풍덩 빠지게 하여 주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주의 이름 한번 부르짖고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