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것들 / 엡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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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장 주 예수여 은혜를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우리가 가진 것들 / 엡1:15-23
에베소서 1장은 1절 2절 은사를 빼고 나면 3절부터 마지막 23절까지 무려 21절(스물한)이 단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3절-14절까지가 헬라어 문장 중 가장 긴 한 문장으로 200단어 이상이 들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찬양한다는 겁니다.
두 번째 문장이 15절-23절 9절(아홉)에 걸친 두 번째 긴 문장입니다. 169개 단어가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흘러갑니다. 그 내용은 하늘에 속한 성도의 신령한 기도입니다. 신령한 복을 찬양하는 일과 신령한 복을 간구하는 일은 성도를 신령하게 만드는 두 기둥입니다. 이 시간은 두 번째 기둥인 "신령한 기도"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데살로니가전서 5:16-18은 두 기둥이 아니라 세 기둥을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겁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인가요?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열매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집을 튼튼하게 잘 세우려면 기둥부터 튼튼하게 잘 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감사가 줄줄줄줄 흘러나왔습니다. 지금은 자신이 옥중에 있어 어려운 가운데 있었지만 에베소교회를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기도는 감사로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났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3년이나 사역을 했던 곳입니다.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에베소 교회는 아시아 지역의 중심 교회로 우뚝 섰습니다. 바울이 없는 이 때에도 15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는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사랑도 풍성해서 소문난 교회가 되었습니다. 멀리 감옥에 갇혀 있지만 이 소문이 바울의 귀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자기가 뿌린 씨가 자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볼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역의 보람입니다. 목회자는 무엇보다 성도들이 은혜 받고 믿음 안에서 성장하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상급입니다. 교인 한 사람이라도 믿음 안에서 변화가 있고 성숙하게 자라나는 것 이것이 상급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그치지 않습니다.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바울은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라 표현합니다. 생각할 때마다 기쁜 것이지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목회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수고가 기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16절에 나와 있는 대로 ‘내가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아침 저와 만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 가운데 여러분을 기억합니다.
여러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다. 기도의 대부분 여러분의 가정과 건강, 사업과 직장을 위한 기도, 그리고 하나님 알기를 기원하여, 여러분의 인생에 풍성한 열매가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사도 바울은 단순한 축복을 기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기원합니다. 이는 고기 잡는 법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만 구하지, 하나님 자신을 구하지 않습니다. 축복이란 것은 하나님을 알 때 자연히 주어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의 깊이가 한 차원 더 깊어져야 하겠습니다. 축복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 자신을 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간절히 알기를 기도하는 것, 또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서 알기를 원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입니다. 곧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영광, 지극히 크신 능력 이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이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요. 1장 4절과 5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를 어느 날 갑자기 부르신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택하셨습니다. 그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셨습니다. 우리가 ‘새군포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하심입니다. 내가 우리 부모 밑에 태어난 것도, 지금의 형편도, 지금의 일도 다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일어난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를 고생시키려 하심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소망 있는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인생들의 죄를 사해주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5절의 말씀대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부르심입니다. 이렇게 그의 아들 삼으심으로 12절 말씀대로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2장 10절에서는 ‘우리는 그의 작품이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떤 어려움과 환난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절망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깎고 다듬질을 당하는 이유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광산에 금을 캐러 온 사람들입니다. 모래나 자갈 때문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돌 캐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연단을 통해 우리는 정금같이 빚어져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들 그게 물질이든, 사람이든, 환경이든 그것에 절망하고 맙니다.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망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좌절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실패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 소망을 붙잡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려는 소망 가운데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22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순서가 이렇게 됩니다. 가장 정점에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그 몸이 교회이고,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서 만물을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왕 같은 존재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우리 가정과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서 영적인 제사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노예나 품꾼의 자세로 살지 마십시오. 영권과 지도력을 가지고 이끌어 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소망을 가지고 부르십니다.
두 번째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알기를 기도하는 것은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기업은 하나님께 받은 유산입니다. 분깃입니다. 우리가 받은 것이영광스럽기 때문에 풍성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은 단순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기업 신앙입니다. ‘기업’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각 지파별로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말합니다. 사실 기업으로 받은 땅들은 비옥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을 방문해 보면 알 것입니다. 이들이 정착했던 곳은 평야지대가 아니고 산악지형입니다. 강수량도 많지 않고, 돌멩이와 거친 광야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유머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지만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기 전에 느보 산이란 곳에서 가나안 땅을 볼 수 있도록 허락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을 보고 모세는 숨을 거둡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사인이 심장마비였다고 합니다. 모세가 쇼크를 받았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생각했는데 돌멩이와 산지 투성이였기 때문에 쇼크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기업으로 받은 땅은 흠모할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기업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비옥하다 그렇지 않다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주셨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영광스럽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받은 기업을 영광스럽게 대하면 정말 그 기업이 영광스럽게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변화가 그렇습니다. 객관적으로는 좋은 땅이 아닌데 이스라엘은 이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프링쿨러가 광야를 옥토로 바꾸었습니다. 산악지형에 맞는 포도나무나 감람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유럽에 비싼 값에 수출됩니다.
여러분도 기업을 받았습니다. 신약 시대의 기업은 여러분의 일이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서 이렇게 살라고 주신 몫이 있습니다. 이것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이십시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런던 교외에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에 식사를 하러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가 식당에 들어서자, 손님들이 모두 일어나 그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청소부가 빗자루를 내려놓으며 탄식을 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나와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저 분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나는 세익스피어가 걸어온 발자국을 쓸어야 하는 청소부에 불과하구나” 이 말을 들은 셰익스피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빗자루를 들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쓸고 있습니다.”
그냥 먹고 살기 위해서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관은 천지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로 나를 보내셨다고 믿을 때 감사와 기쁨이 생기고 그래서 마음에 평화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소?”하고 물으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누가 그 일을 시켰소?” 하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도록 나를 보내셨습니다!”하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영광스럽습니다. 신약시대는 구약시대보다 더욱더 영광스럽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기업으로 교회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들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영광스러운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2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현장이 바로 우리의 머리된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현장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는 위대합니다. 영광스럽습니다. 여러분은 예배의 이 영광을 보고 있습니까?
수만 명이 모이든 소수의 몇 사람이 모이든 교회는 영광스럽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런 영광됨을 망각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다할지라도 이 영광을 알고 소유한 교회는 위대합니다. 사람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보십시오. 안타까운 점은 우리 눈이 너무 현실적이고, 사람만 바라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놓쳐버린다는 점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영광스럽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기에 이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알 수 있는가? 바로 교회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말씀대로 사는 그 모습에서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계시하십니다.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래서 초대 교회 교부 중 한 사람은 걸을 때도 조심조심 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몸이니까요.
세상은 자꾸 우리를 볼품없는 존재로, 쓸모없는 존재처럼 보게 만듭니다. 여러분, 신성한 자존감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무가치하다는 것은 세상의 타락한 세계관의 영향이요,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모든 인간은 존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더 존엄합니다. 여기에 이제는 그리스도의 몸까지 되었으니까요. 아무리 작은 소자라도, 아무리 작은 지체이고, 가난하고, 장애인일지라도 우리는 위대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 번째로 알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 안에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짧은 한 절에 ‘힘’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힘’은 ‘이스쿠스’입니다. ‘위력’은 ‘크라투스’입니다. ‘능력’은 ‘두나미스’입니다. 이 두나미스가 지극히 크다는 말씀입니다. 19절과 20절의 ‘역사한다’는 단어도 ‘에네르게오’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영어의 ‘에너지’입니다. 힘과 관련된 모든 헬라어가 다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에게 인한 능력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2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인류를 얽어매는 힘은 죽음의 권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게 역사한 힘은 이 죽음의 권세를 파하십니다. 그래서 믿는 신앙인들은 장례식장에서 찬송을 부릅니다. 죽음 앞에서 곡을 해도 시원찮은데 찬송이 웬 말입니까? 바로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으로 죽음을 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를 하늘 보좌의 자기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오른편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21절과 22절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함께 21-22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1:21–22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권세, 능력, 주관하는 자, 이 모두는 어떤 초월적인 세력들입니다.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인간을 두렵게 만드는 세력들입니다. 이런 모든 존재들보다 그리스도가 더 뛰어난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주관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운명이나 사주팔자에 속지 마세요. 보면 답답하고 안 좋은 것만 맞는 것 같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이제 우리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께 맡겨드리세요.
그리스도의 주권은 먼 미래에만 이루어질 일이 아닙니다. 21절 말씀대로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그리스도의 주권은 미칩니다. ‘예수 천당’ 하지만 천당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미 이곳에서부터 천국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문제는 우리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눈이 안 열렸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눈이 세상을 향하고 있어요.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요. 그러니 사도 바울이 답답한 것입니다.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까 세상에 흔들립니다.
그래서 물질이 많으면 교만해지고, 없으면 비굴해집니다. 위력 앞에 비겁합니다. 누가 알아주면 홀랑 넘어가고, 알아주지 않으면 포기하고 맙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 사람이지만 사도 바울의 태도를 한 번 보십시오. 빌립보서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빌립보서 4 장 12-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빌립보서 4:12–13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얼마나 담대한 고백입니까?
만약 우리 신앙생활이 단조롭거나 세상에 취해 있으면 이 능력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나아갈 때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함이 있는 곳입니다. 교회는 정체되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생동하는 곳입니다. 그 안을 예수님의 영이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꿈틀꿈틀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요동치기 때문입니다. 교회 마당만 밟아도 은혜와 평화와 사랑을 맛보아야 합니다. 예수의 사랑이 교회에 충만히 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몸의 피와 신경계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예수입니다. 예수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교회는 죽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거나 반응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로 채워야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가 아니라 사업이 들어오고 친교나 이권, 자리가 들어오면 몸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도 예수님으로 충만해야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 생명이요 양식입니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없으면 바람 빠진 풍선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와 우리 교회가 이런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과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깨달아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이 위대함을 깨달아 진정 위대한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교회가 성령 충만한 능력의 교회가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 풍부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성숙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만물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충만한 교회가 되어 이 시대를 향하여 이 일의 증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합심기도제목
•우리의 인생이 예수로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사명감당하도록
•신년특별새벽기도회에성령의 기름부음 있도록
•토요일(11일) 초등부에서 아빠와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는데 은혜로운 시간 되도록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담대한 믿음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능력을 믿으며, 그 능력으로 충만함이 가득 넘치는 새군포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동행하심과 역사하심이 / 날마다 예수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으로 사명감당하기를 힘쓰는 모든 성도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