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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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의 시작을 알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당시 제사장들의 타락을 보여주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실 사사겸 선지자, 그리고 왕정 시대를 열 사람으로 그의 등장을 알리며 사무엘상은 시작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무엘이 죽었다고 그의 부고를 알리면서 본문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죽었다는 것은 이제 사사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도래할 시대는 왕정 시대가 본격화 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의 죽음.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의 끝을 말하지만 또 다른 편으로는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큰일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인 것 같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끝이 사실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의 선상에서의 한 점에 불과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선위에서 수 많은 점을 찍어가며 하나님의 순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마온 사람 나발이 갈렙이라는 지역에서 목축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부자인지 양이 3천이고 염소가 천마리라고 그의 부유함을 소개합니다. 나발이 자기 소유의 양의 털을 깍는 시기가 되었을 때 다윗이 나발에게 전령을 보내 한가지 부탁을 합니다. 우리가 당신의 양들과 염소와 목자들을 광야에서 지켜 주었으니 너희가 평안한 것이다 말을 하고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좀 무례한 부탁 같지만 양털을 깍는 시기는 당시 사회에서는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추수의 날이었고 유대 사회에서는 여행자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중요한 관습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축제의 날을 기다렸다가 나눔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발의 반응은 단칼에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며 무시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망 나온 종에 불과 하다는 모욕까지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 모욕적인 나발의 행동에 대가를 주고자 군사적 행동을 준비합니다.
나발의 이름의 뜻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나발의 행동과 말은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사회 약자를 돌보고 그들에게 먹을 주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 부유한 자들이 해야할 책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다웃은 나발의 양과 염소를 광야에서 도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인가의 도리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자신의 소유 어느 것도 베풀 생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보면서 누가 잘못했는지 잘잘못을 따지면 본문에서 말하는 의도를 놓지게 되고 맙니다. 다윗의 요구를 나발이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고 나발도 그렇게 매정하게 요청을 무시해서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나발과 다윗의 행동에서 한가지씩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을 통해서는 분노에 대한 나의 대처 방식입니다.
분노는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분노는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할 뿐만아니라 경솔한 행동으로이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노는 옳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다윗을 분노케 한 결정적 원인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무엘상 25:10–11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의 한 마디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즉 다윗을 도망친 종이라고 한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명예를 훼손하는 말이었으며 부하들에게도 모욕적인 말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땅에서 다윗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인 용사였고 사울의 사위였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는 백전 백승을 거둔 이스라엘의 자랑이었습니다. 부자였던 나발이 다윗을 모를리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언사에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반응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25: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다윗의 반응은 4백명의 군사들에게 칼을 차고 나발에게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발의 말이 칼을 찬 군사들을 데리고 갈 정도로 분노를 자아내는 말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발을 향한 다윗의 분노는 그의 인간적인 약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감정에 치우친 과잉 반응. 이것이 다윗이 분노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의 모습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 아니었습니까? 한발을 내 딛기 전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 온 것이 다윗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나발의 한마디에 다윗은 무너져버렸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위대한 인물을 들자면 누구를 말할 수 있을까요?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 그런데 이 네명 모두 약점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자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지 않고 “내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분노에 찬 말로 잔신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내세웠습니다. 바울은 선교를 하던 중 바나바의 의견 충돌로 다투고 헤어졌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말 한마디에 내 감정이 무너져 버리고 신앙마저 무너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네, 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윗과 같은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 그렇다고 안도하기 보다는 그런 나의 약점이 세상 밖으로 표출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발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의 극치를 볼 수 있습니다. 나발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면 부자였습니다. 사무엘상 25:2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그러나 그는 인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은혜를 모르는 무지한 인색한자였습니다. 사회의 전통도 무시하는 자였습니다.
다윗이 나발에게 요청한 것은 사실 무리한 요청이라고 보기어렵습니다. 나발이 양털을 깍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위의 군사들이 나발의 소유를 지며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발은 이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요? 네 그가 가진 소유가 곧 그의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발은 이웃과 협력하고 나누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가지고 타인을 억압하고 다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을 위해 배려하거나 이해하거나 베풀지 않는 사람.
여러분! 나는 나발과 같지 않다고 자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나발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말과 행동이 언제든 뛰어 나 올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발의 위험성이 나에게도 있음을 인지하고 하나님 앞에 겸손과 감사로 나가야 합니다.
오늘 이 밤에 나에게도 부족함과 어리석음이 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의 참 군사로 다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이 밤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