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시작 / 에베소서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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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장 여러 해 동안 주 떠나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기도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지난밤도 평안케 하시고, 이 아침 영육의 강건함으로 이 제단에 나와 예배드리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어제를 돌아보고, 앞으로를 생각하고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그 사랑와 은혜를 베풀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세상 풍조를 따라가지 아니하며, 이 세상 풍조를 성령의 능력으로 장사지내는 역사가 날마다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 귀한 예물 드립니다. 이 예물 드린 손길을 주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고, 한없는 은혜와 기도 응답의 축복이 더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뜻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새 생명의 시작 / 에베소서2:1-3
바울은 1장에서 우주를 통일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포괄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 한 부분인 인간 구원문제를 하나님이 우주 경륜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2장에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화해와 만유의 통일’입니다. 특히 바울은 본장에서 개인 구원의 문제를 언급합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인간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해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의 화해는 태초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성취이자 최후의 심판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을 향한 출발점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화해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온 인류의 통일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화해의 십자가는 모든 인간들, 민족들, 그리고 계급들간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결국은 우주의 통일을 지향합니다. 특히 바울은 영적으로 분리되었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높은 장벽이 무너져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모두가 하나될 새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한편 2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1-10절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사역의 일부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죽음에서 살리시고 하나님과 함께 화해케 하셨다는 구속의 역사를 말하고 있고(1-10절), 둘째 부분인 11-22절에서는 평화의 사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해케 하셨다는 사실과 함께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신 교회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11-22절).
본장이 인간 구원론에 대하여 논하였다면 오늘 본문은 인간이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논하는 것입니다. 구원 전에 우리는 과연 허물과 죄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다고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받기 전의 상태는 사탄의 지배 하에서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불순종이 영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푸심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새 생명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새 생명의 시작은 죄로 죽었던 자신을 발견함으로 시작됩니다.(1)
여기서 구원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게 됩니다. 첫째는 1-3절로 구원 전의 상태를 말하고(1-3절), 둘째는 4-10절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논하는 것입니다(4-10절). 그 가운데 우리는 성도의 구원 전의 상태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처지를 깨닫고 구원을 위한 예비적 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마치 치료를 받으려는 환자는 먼저 그 병명과 원인을 알아야 하듯이 구원의 확신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의 구원받기 전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우리의 옛 상태가 어떠했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의 승리를 통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있기 전에, 또는 그 주님을 믿고 성령의 역사를 따르기 전에는 우리가 죽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구원받기 전의 상태입니다.
오늘날에도 모든 인간은 숨을 쉬고 말을 하고 활동함으로써 살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며 스스로 ‘실존’임을 자처하면서 살아가지만 그것은 영의 눈으로 볼 때 산 것이 아니요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 청년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 장례를 염려하는 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마8:22)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묘사하는 본질적인 인간의 영적인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은 모습입니다. 즉 허물은 ‘파라프토마’(paraptoma)라는 말로 ‘미끄러져 넘어지다’ ‘정로에서 떨어지다’라는 의미로 자범죄요 율법의 위반이며 부주의의 죄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부주의로 길을 잃는다든지 바른 길에서 떠나 있을 때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진리를 붙잡지 못했거나 진리로부터 떨어진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죄는 문자적으로 일종의 ‘하마르티아’(hamartia)라는 일종의 사격 용어로 ‘과녁에서 벗어나다’는 의미로 아담의 유산인 원죄요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고의적인 죄입니다. 즉 죄란 삶의 표적을 잘 못 맞힌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란 우리가 되어야 하는 대로 또는 될 수 있는 대로 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런 면에서 죄란 보편적인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는 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둑, 살인자, 소매치기, 주정뱅이, 깡패 같은 사람들을 죄인들이라 할 때 우리는 쉽사리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마음 속으로부터 나는 죄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일 지옥 갈 죄인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분개할 것입니다.
따라서 허물과영원히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즉 허물과 죄는 우리가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으며 또 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릇된 길을 걷는 것을 말합니다. 또 우리가 알아야 하는 진리를 잃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허물과 죄란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인 하늘 나라를 가는데 있어서 실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가장 중심적인 개념은 실패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못 들어가도록 합니다. 신앙의 길을 가는데 제대로 못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막습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은 이 두 가지 양태의 죄를 가지고 있으며 허물과 죄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그들 가운데 섞여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러한 죄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함께 2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새 생명의 시작은 이 세상 풍조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왜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죽은 자였습니까? 죄는 순결을 죽입니다. 죄는 우리의 이상을 죽입니다. 그리고 죄는 우리의 의지를 죽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사탄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자는 결국 그 영이 미혹되어 사탄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 풍조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세상의 온갖 거짓 신앙, 거짓 진리, 거짓 영의 활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은 우상 숭배와 미신, 그리고 음양 사상에 따른 사주, 관상, 운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이러한 사상 속에서 하나님을 가장하여 나타난 사탄의 유혹에 빠져 그것들을 좇음으로 얼마나 속박 당한 채 노예 생활을 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모두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이 이 세상 풍조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노예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새 생명의 시작은 이것을 끊어버림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이것을 장사지냄 없이 새 생명의 시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이 부리는 이 세상 풍조를 성령의 능력으로 장사지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의 시작은 육체의 욕심을 떠나는 것입니다.(3)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욕심이란 자기의 분수 이상을 소유하려고 정상궤도를 이탈한 마음이요, 또 남의 것을 비정상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탈취하려고 안달하는 마음으로 이에 사로잡히게 되면 큰 파멸을 당하고 맙니다. 황소의 거대한 몸짓을 본 개구리가 황소처럼 되어보겠다고 바람을 마셔 배를 부풀게 하다가 그만 배가 터져 버렸다는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 라](야고보서1:15)고 경고하셨습니다. 죄란 [빗나갔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욕심에 사로잡히면 비뚤게 생각하고, 비뚤게 행동하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맙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욕심입니다. 빨리 거두겠다고 익지도 않은 벼를 뽑는 농부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하며 순리를 좇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모든 일에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무엇이든 긁어모으고 소유만 하는 것이 참 삶은 아닙니다. 참된 삶은 많든 적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참으로 잘 누리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단 한번의 기회입니다. 이 한번 주어진 삶을 단지 물질만 많이 끌어 모아 소유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발버둥치다가 뜬구름 같이 사라져 버리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현재 가진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간에 가진 것을 누리며 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현명한 삶입니다. 인생을 하나님께로부터 감사함으로 받아서 그 삶의 모든 과정을 진정으로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후회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은 우리의 마음을 휘어잡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도록 유도해 왔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립니다. 육체의 일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시작하려는 자들은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세상 풍조을 끊어야 하며 세상 욕심 또한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2-24)’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이러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곧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믿음의 삶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 교회에 가득 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함께 믿음과 삶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육체의 욕심을 떠나 세상 풍조를 끊고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