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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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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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첫번째 금요찬양예배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지난 해부터 에베소서 강해를 시작하여 1장을 끝내고 새해부터 2장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선 처음에 드렸던 말씀을 다시 상기해보고 에베소서 강해를 계속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는 특별히 교회에 관련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가 공동체로서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공동체로서 세상에 드러나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에베소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는 만큼, 앞으로 교회를 위하여 우리가 어떠한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기회로 삼자고 했었지요. 에베소서 강해를 마칠 때 즈음에는 지금도 교회를 많이 사랑하시지만, 이전보다 더욱 더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또 이전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교회 공동체를 섬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것보다 교회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 혹은 지체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일입니다. 또 다시 그리스도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는 것이며, 손과 발을 못받는 일이며, 채찍으로 몸을 때리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것입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신포도주를 먹이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누가 그런 일을 합니까? “내가”
아직 우리가 완전히 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는 우리의 현실적인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뭔가 앞으로 나아가자 혹은 뭔가 순종하자라는 교훈을 드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찾아보자는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하루만 생각해볼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지속적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알게 되고, 구체적으로 회개하게 되고, 은혜 가운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음으로, 육신의 호흡은 살아 있어도 우리의 영은 죽어 있다는 뜻입니다.
영이 죽어 있으니, 하나님께 아무런 관심도 없고 또 하나님께 다가갈 수도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필연적인 결과가 무엇입니까? 육신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세 가지를 표현합니다.
첫 번째는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세상 풍조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세상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하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공동체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는 일들에 관심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 관심이 없는 사람이 사는 방식에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곳을 여행하거나 어떤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않됩니다. 저는 그런 것을 하지 말라는 금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이러한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좋은 곳을 여행하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목적이 분명하면, 때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맛있는 음식, 혹은 좋은 곳을 여행하는 것을 포기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에서 많은 성도님들이 그렇게 삶의 목적을 허물과 죄로 죽었던 때에 가졌던 것을 여전히 품고 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제가 목사를 하는 것은 목사일이 즐겁기 때문이거나 이 일이 나의 가족을 부양하는 나의 직업 때문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불행할 것입니다. 그런 목사를 삯꾼 목사라고 부릅니다. 끊임 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고난의 길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사탄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대적하고 다른 사람을 원수로 삼고 미워하고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자기를 위하여 사는 방식이 바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삶입니다.
자기 희생이 없는 삶이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위하여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삶입니다. 권력을 가지고 자기를 주장하는 삶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선거철에는 국민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표를 받아가고서는 당선이 되고 나면 정당의 이익, 특히 국회의원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만 활동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았습니다. 그것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즉, 그 사탄을 따라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짓거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짓거리는 앞으로 에베소서를 강해해 나가는 가운데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갈 것이므로 그 때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3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풀어서 기록되어 있는데요.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일들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마음에 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과정 속에 만들어진 마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에게 편리한 것들만을 추구하려는 마음입니다.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만약에 그렇게만 산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고난 길, 좁은 길, 가시밭 길을 걸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날이 특히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때입니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 라는 질문보다는
“무엇이 효과적이냐, 무엇이 좋으냐 싫으냐”라는 질문이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나에게 좋다면 그른 일도 그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싫은 일이라면 옳은 일도 옳지 않다고 하니다.
자기 스스로가 판단하는 자가 되어서, 함부로 그건 아니다. 그건 틀렸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따져보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분노하고 거부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육체대로 산다고 할 때에 이런 의미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배가 고프면 예민해지는 사람이 있으십니다. 혹은 잠을 잘 못잤거나 몸이 피곤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육체대로 사는 것이지요. 그런 것은 짐승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인간이라면 성숙한다는 의미는 그런 것들로부터 인내심을 발휘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바울은 구원받기 전 진노의 자녀 시절의 태도라고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