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 에베소서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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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286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기도
사랑의 주님! 오늘도 이 새벽, 영육의 강건함으로 주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새벽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저희의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어떠한 순간에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저희를 채워주시고, 저희의 마음에 늘 주님의 평강과 긍휼이 임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 앞에 귀한 예물 드립니다. 이 예물드린 손길을 축복하여 주시사 저들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뜻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 에베소서2:4-7
우리는 에베소서2:1-절에서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전혀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존재였고 스스로 살아날 가망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곧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되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이유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어버린 우리를 그리스도를 살리실 때 함께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긍휼에 풍성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풍성하신 긍휼을 가지셨습니다.(4)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적 표현입니다. 긍휼의 헬라어 ‘엘레에이(ἐλέει) 는 히브리어 헤세드(דםח/ 인애)와 상응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충실히 지키며 사랑을 베푸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본질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 구속의 은총이 바로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긍휼이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할 힘이 없어 힘에 부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향해 가지는 동정심, 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불우한 사람을 만나면 연민의 정을 느끼며 크고 작은 도움을 베풉니다. 이러한 마음은 때로 원수에 대해서도 일어나며 극악한 범죄자에 대해서도 일어납니다. 모든 인간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기에 비록 타락한 세상이지만 자체 정화작용이 일어나며 각박한 세상을 순화시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긍휼의 마음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무한 자비한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교만한 마음은 이러한 긍휼함에도 숨어 있어서 자기의 유익에 크게 손상이 간다든지 자존심이나 우월 의식이 침해를 당하게 되면 단호히 긍휼한 마음을 내버립니다. 긍휼한 마음은 마음의 여유의 폭과 비례하며, 재정적인 능력 등에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는 이러한 인간의 자비와 크게 다릅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십니다. 하나님의 품은 한이 없어 넓어서 세리도, 창녀도, 살인 강도도 용납하시며 일흔 번씩 일곱 번을 범죄한 자도 용서하십니다(마18:22).
예수께서는 자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한 베드로도 용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힘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내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께서 사랑하는 힘을 주셔야만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원수를 용서해 주거나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기고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의 그 용서와 사랑을 생각하며,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자격이 있고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내 자신이 죽는 고통과 괴로움을 갖기 전에는 참으로 남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면 용서와 사랑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대신해 그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웃지 아니하시고,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긍흘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셨습니다. 주님께 죄 사함을 받은 체험이 있으신가요? 그러면, 주님의 방법대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긍휼의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두번째로, 사랑에 기인한 동기를 가졌습니다.
4절말씀 하반절에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인간의 긍휼한 마음의 동기에는 순수한 일면과 함께 매우 불순하고 온당치 못한 면도 있습니다. 곧 그것은 불우한 이웃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느끼는 우월 의식입니다. 눈앞에 있는 불우한 사람보다 자신이 낫다는 우월 의식이 여유를 가져다 주고 여유 있는 마음이 동정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긍휼한 마음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무의식층에 숨어 있는 우월 의식의 표출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일반적으로 지대한 불이익을 초래할 때는 긍휼한 마음을 거둬들인다는 사실은 그것이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표출된 것이기보다는 우월 의식에서 표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의 동기는 인간의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동기는 사랑입니다. 인간을 고귀한 인격으로 보고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긍휼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13장 1절에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말씀하시고, 빌립보서 2 장 8절에서는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말씀합니다.
사랑은 실천이며, 희생입니다. 우리가 베푼 사랑은 반드시 하늘에 배달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그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인간들을 사랑하셨고 인간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까지 참고 기다리십니다.
마지막으로 허물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긍휼이 연민의 정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값싼 동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삶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그 사람이 온전한 한 인격체로서 당당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참으로 긍휼을 베풀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긍휼은 이러한 종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긍휼을 입은 자들은 과거의 죄와 허물을 벗어버리고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납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 삭개오, 바울 등은 예수님을 통해 변화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만남으로 인생의 질적인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죄의 사유가 있었고, 예수께서 생을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존재했습니다. 완전한 긍휼이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살린 것입니다. 인간의 긍휼과 삶에 있어서 미미한 변화를 가져오지만 그리스도의 긍휼은 전폭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통해 변화시키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변화되었습니까?
통계적인 수치로 따지면, 한국 사람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크리스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쉬지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매주 주일을 지켜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이들은 아마, 이전까지의 삶으로부터 크게 변화되지 못한, 미숙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미숙한 그리스도인, 다시 말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 생명으로 인해 삶이 변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향해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닙니다. 왜냐면 주님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숙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영적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표시가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게 변화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보십시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와 순간순간 교제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따를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말하는 것보다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변화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십니까? 우리 자신이 변화하기 시작함으로써, 우리가 속한 세상의 한 귀퉁이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키시면, 우리는 분명 변화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전보다 나은 사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일에 소망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가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함으로써,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바르게 행하며 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함께 주만 바라볼찌라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바르게 행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일 마지막 특별새벽기도회에 전성도가 함께 참여하여 은혜받는 시간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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