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넝쿨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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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설교>
요나 4:6-11
“박넝쿨의 주인”
2025. 1. 10
조 정 수
오늘 본문을 놓고 “박넝쿨의 주인”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안 좋은 일도 있습니다. 인생이 어떻게 평탄하기만 하겠어요? 때로는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처박히기도 합니다. 쨍하고 해뜰 날이 있는가 하면, 깜깜하게 흑암이 내리는 날이 있어요.
선지자 요나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기쁘다가 슬프고, 슬프다고 기쁘고. 좋다가 나쁘고, 나쁘다가 좋고. 굉장히 굴곡진 인생을 살았어요. 특별히 요나서를 보면, 짧은 기간 안에 엄청난 굴곡이 있죠.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치다가 바다에 빠지고, 물고기 뱃속에도 들어갔다가, 다시 땅으로 올라와서 니느웨까지 가서 말씀을 전하고, 또 그 뒤에는 화가 나서 하나님을 원망해요.
어떻게 이것이 선지자의 인생인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파란만장합니다. 우리가 요나서를 통해서 그의 굴곡진 인생여정을 쭉 살펴봤잖아요. 그가 추락하다 못해 저 깊은 바닷속 밑바닥까지 떨어진 것도 봤고, 그가 감사를 회복하고 순종하는 것도 봤어요.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인생여정 가운데, 하나님이 요나와 항상 함께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다 밑바닥에 처박혔다고 해서 그가 버림 받은 것이 아니었어요. 그곳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도 함께하셨고, 니느웨에 갔을 때도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요나가 니느웨 성읍 동쪽에 앉아 있는 지금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자, 그런데. 요나가 지금 니느웨 성읍 동쪽에 앉아 있어요. 요나가 니느웨에서 사역을 다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니느웨 가기 싫다고 가기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정작 일이 다 끝나고 나니까 니느웨를 안 떠나요. 왜 안 떠나느냐?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보려고 안 떠나는 겁니다. “내가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봐야겠다. 니느웨 망하기 전까지는 나 집에 안 가.”
이것이 지금 요나의 마음이에요. 하나님한테 서운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지금 반항을 하는 겁니다. 요나서 4장 1절을 보면, 지금 요나의 마음상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을 냈어요. 지난 시간에 “매우 싫어하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라아 가돌” 이라는 말이라고 했죠. 가돌은 크다는 말이고, 라아는 악하다 라는 말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요나가 지금 크게 악한 상태인 거예요.
본래는 니느웨가 악했는데, 니느웨는 회개를 했죠. 그래서 재앙을 피했어요. 그런데 지금 요나가 악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라아 가돌. 그냥 악한 게 아니라 크게 악해요.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반항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요나가 이토록이나 악하게 구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요 정말로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요나에게 긍휼을 베푸셔요. 오늘 본문 6절 말씀, 같이 봐 볼까요? 6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아멘.
요나가 성읍 동쪽에서 땡볕에 앉아 있으니까 그게 불쌍해 보이셨는지, 그에게 박넝쿨을 예비하시고 박넝쿨 그늘을 드리워주셨어요. 박넝쿨이 정확히 어떤 식물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늘을 드리울 정도면 키가 크고 이파리가 넓은 식물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성서식물을 연구한 학자들은 박넝쿨이 아마도 아주까리였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ppt) 사진을 한번 띄워 주실래요? 저게 아주까립니다. 줄기가 단단하고 잎이 넓죠. 이스라엘에서는 최대 4미터까지도 자란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박넝쿨이라고 번역을 하기보다는 아주까리, 혹은 아주까리의 정식명칭인 피마자 나무라고 번역을 하든지. 하다못해 나무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박넝쿨은 자기 혼자 서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에 달라붙어서 자라잖아요.
어쨌거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예비하셨어요. 예비하셨다는 말이 요나서에 총 4번 나옵니다. 첫번째는 요나서 1장 17절에 나와요. 요나서 1장 17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첫번째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 이때 “예비하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마나” 라는 말인데, 이 말은 “지정하다, 임명하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니까 요나가 바닷속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요나를 삼킬 물고기를 그 즉시 임명하신 겁니다.
임명이 뭐예요? 임무를 맡기기 위해서 지명하는 거죠.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지명하실 때, 그 물고기에게 임무가 주어졌어요. 그것은 요나를 삼켜야 한다는 임무였습니다. 작은 송사리가 사람을 삼킬 수 있습니까? 사람을 삼킬 수 있을 만한 큰 물고기이기 때문에 지명을 하신 거죠.
마찬가지로 박넝쿨에게도 임무가 있어요.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는 임무죠. 이것 역시도 작은 잡초 갖고는 안 돼요. 사람 키보다 더 크고 잎이 넓은 나무여야 되는데, 그것이 아주까리였다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요나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을 쳐도, 원망을 하고 반항을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긍휼을 베푸시고, 우리를 위하여 많은 것들을 예비하십니다. 큰 물고기와 같은 돕는 자를 예비하시고, 또 내가 괴로울 때 그 괴로움을 면할 수 있는 비밀한 일들을 예비하십니다. 올 2025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많은 일들을 예비하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주시기도 하셔요.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서.
그래서 요나에게도 고난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총 네 가지를 예비하셨는데, 그 중에 두 가지가 요나를 돕는 선물이었다면, 나머지 두 가지는 고난입니다. 그 중에 첫번째 고난이 7절에 나와요. 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아멘.
하나님이 요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첫번째 고난은 벌레였습니다. 이 벌레가 중요한 임무를 맡았는데, 그 임무는 박넝쿨을 갉아먹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새벽에 땡볕을 막아줄 박넝쿨을 다 갉아먹어 버렸어요.
그리고 이어서 두번째 고난을 주셨는데요. 8절 말씀도 다같이 읽겠습니다. 8절 시작,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아멘.
하나님의 두번째 고난은 뜨거운 동풍이었습니다. 땡볕을 막아줄 박넝쿨도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왔어요. 그러니까 요나가 일사병에 걸렸는지,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영어성경으로 보면 ‘He was faint, 그가 어지러웠다’, 라고 번역을 했어요. 그가 어지러웠다. 그가 정신이 혼미했다.
그런데 그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뭐라고 말을 합니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3절에서 이 말을 한번 했었죠. 그런데 또 한번 하는 거예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여러분, 요나는 지금 박넝쿨도 사라지고 뜨거운 동풍까지 불어와서 육신까지 괴로운 상탭니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가만히 보면, 요나가 원망을 쏟아내는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나오거든요. 자, 오늘 본문 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9절 시작,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요나의 마음을 꿰뚫어보셨죠. 요나가 성내는 이유, 그것은 바로 박넝쿨 때문이었어요.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박넝쿨 때문에 요나가 죽고싶을 만큼 화가 난 겁니다. 더워서 화가 난 게 아니에요. 더위는 요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을 뿐이고, 진정으로 화가 나게 만든 것은 박넝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박넝쿨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무 대가 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요나는 박넝쿨에 대해서 아무런 지분이 없어요.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박넝쿨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엄밀히 따지면, 요나는 박넝쿨을 임대받은 것 뿐이에요. 아무런 보증금도 없이, 월세도 없이 공짜로 박넝쿨 그늘 아래 세들어 있었을 뿐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갑자기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돼요. 계약서도 없고, 내가 돈을 낸 증명도 없는데 뭘로 반박을 할 겁니까? 나가라면 나가야죠. 요나는 박넝쿨에 대해서 아무것도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가 뭐라고 화를 냅니까?
오히려 고마워해야죠. 하루라도 내가 그늘 밑에서 쉴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해야 돼요. 그리고 그 뒤에는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야죠.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해주시면 자기 뜻을 꺾을 때도 됐잖아요.
아들이 아빠한테 삐져서 놀이터에서 집에 안 들어오길래, 아들이 추울까봐 이불을 갖다 줬더니 진짜로 집에 안 들어올라 그래요. 그래서 다시 이불을 집으로 갖고 왔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때 아빠의 의도는 뭘까요? 왜 이불을 줬다가 다시 뺏을까요? 아들이 미워서는 아니죠. 미웠다면 애초에 이불을 안 줬을 거예요. 아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불을 줬다가 뺏는 겁니다.
밖에서 추울까봐 이불을 덮어줬어요. 그래서 하룻밤을 보내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거예요. 하루동안이야, 밖에서 머리도 식히고 화도 가라앉히라고 밖에 둘 수 있죠. 하지만 계속 안 들어오고 밖에서 노숙을 하면 애가 어떻게 되겠어요? 감기라도 걸리면, 부모 마음도 무너지는 거예요.
그런데 아들이 이불을 의지하고 계속 안 들어오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그 이불을 뺏는 겁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오라고.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라고. 그가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난을 주는 거예요.
이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요나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벌레를 예비하시고,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신 겁니다. 그런데 요나가 아버지의 뜻을 거역해요. 처음에 뜻을 거역하고 도망쳤을 때처럼, 지금도 뜻을 거역하고 원망을 합니다.
그런데 그 원망의 이유가 박넝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줬다 뺏은 박넝쿨. 하나님이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주신 은혜가 한때는 그의 큰 기쁨이었지만, 이제는 원망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주실 때는 기뻤는데, 그것을 다시 거두어가시니까 원망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로 원망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은혜는 언제나 감사의 대상이에요. 나를 일으키시고, 나를 회복시키시며, 나를 형통케 하실 때도 감사해야 하고. 반대로 나를 낮추시고, 나를 괴롭게 하시며, 나를 실패하게 하실 때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사람인 이상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겠어요? 힘들 때는 낙심할 수도 있고, 원망이 나올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곳에 계속해서 눌러앉아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털고 일어나야 돼요.
요나서 3장 6절을 보면, 니느웨의 왕이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어요. 니느웨 온 국민이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를 하니까, 왕도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았어요. 재 위에 앉았다는 것은 회개의 자리에 앉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니느웨 왕이 그랬던 것처럼, 회개의 자리에 앉아야 합니다. 원망이 길어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원망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회개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망의 자리에 눌러앉아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돌아오기를 원하셔요. 그런데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돌아올 수밖에 없는 고난을 주시겠죠.
그래도 안 돌아오면요? 요나가 그래도 안 돌아갔거든요? 돌아올 수밖에 없도록 박넝쿨을 없애버리고 뜨거운 동풍으로 요나를 치셨는데, 요나가 그래도 안 돌아가고 버텼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최후통첩을 하십니다.
자, 오늘 본문 10절, 1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10절, 11절 시작,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아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니느웨를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본래는 니느웨를 아끼지 않으셨거든요. 하나님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이유는, 니느웨를 아껴서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이스라엘을 아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편협한 선민의식을 깨트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열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그래서 그들이 제사장 나라로서 온 열방을 대표하는 위대한 나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요나를 니느웨에 보내신 겁니다.
그런데 요나가 그것을 거부했어요. 니느웨에 가라는 명령 이면에 진정으로 그들을 향한 커다란 축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내가 하기 싫은 명령에 마음이 상해서 불순종 한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는 아껴요. 박넝쿨을 주셨을 때,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아꼈어요.
하나님이 보실 때, 그 박넝쿨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겁니다. 그것을 위하여 수고할 필요도 없고 재배할 필요도 없이, 그냥 하룻밤이면 자라는 일개 식물에 불과해요. 하나님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축복을 주시려고 예비해놓으셨는데, 박넝쿨 하나만 아끼고 있어요.
그게 뭐라고,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그것 때문에 원망해요. 나에게 유익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그 유익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마음이 돌변하는 겁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내가 니느웨를 아끼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박넝쿨을 네가 아끼듯이, 나 역시도 본래는 나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었던 니느웨를 아끼겠노라. 말씀하시는 겁니다.
니느웨는 본래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곳을 주목하셨더니, 그곳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나 있고, 가축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는 어린아이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성인까지 다 합치면 최소 60만명이에요. 일반적으로 어린아이 곱하기 5를 전체인구로 보니까. 12 곱하기 5는 60이죠. 최소 60만명입니다. 그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아끼셔야 하는 이유가 된 겁니다.
요나는 박넝쿨을 아낄 것이 아니라, 박넝쿨을 주신 하나님을 아꼈어야 합니다. 박넝쿨에 기뻐하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의지했어야 합니다. 잠깐 화가 나서 집밖을 뛰쳐나갔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회개의 자리로 나아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회를 놓쳤더니, 하나님께서 더이상 요나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요나의 원수인 니느웨를 아끼셔요. 요나를 위해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예비하신 많은 축복이 올스탑 되고, 반대로 니느웨를 향하여 이전에 없는 축복들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점점 쇠약해지고, 니느웨는 점점 강성하여 졌습니다. 그리고 불과 삼사십 년 뒤에, 이스라엘은 니느웨에 의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앗수르 군대가 몰려와 이스라엘을 쳐서 완전히 멸망시켜버린 거예요.
요나가 박넝쿨 하나를 아꼈더니, 그 결과가 멸망으로 돌아온 겁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뚜렷한 경고의 메세지를 줍니다. 그것은 첫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예비하여 주시든,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번째로, 받은 것에 얽매여 거기에 몰두하지 말고, 그것을 나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년에 기쁨이 많으셨습니까? 괴로움도 많으셨습니까? 그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이제 2025년이 되었습니다. 작년에 받은 것은 작년에 남겨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2025년 새로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번 2025년 한 해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많은 것들을 예비하신 줄로 믿습니다.
올해에도 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고 괴롭고,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가도 기가 막힐 웅덩이에 처박히는 인생의 굴곡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여, 기쁠 때 감사하고, 괴로울 때는 더 큰 감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우리의 영이 성장하고, 우리의 교회가 부흥성장하는 아름다운 한 해를 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