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 : 정체성의 변화 2025 0111 창32: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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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창세기 32:24–31 (NKRV)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진퇴양난에 빠진 야곱
앞으로는 에서. 뒤로는 라반. 이전처럼 하란의 라반에게 도망갈 수도 없다.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
오로지 살 길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얍복에서 거의 처음으로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함. 벧엘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을 다급하게 찾음. 그 약속에 근거함.
창세기 28:13–15 (NKRV)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32:9–12 (NKRV)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그런데 기도하고 최선을 다한다고 많은 예물을 준비함. 그 최선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님. 여기서의 예물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도 아님. 왜냐하면, 그의 기도에 따른 하나님의 침묵이 그에게 있어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게끔 만들었기 때문.
그래서
창세기 32:20–21 (NKRV)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다. 대면한다. 나를 받아준다. 등 이 두 구절에서만 얼굴이라고 하는 단어가 5번이나 쓰임.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다라는 것을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아카프라 파나브 바민카’. 그의 얼굴을 예물로 덮는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덮다라는 카파르라는 단어가 용서하다라는 뜻이 있다. 욤키푸르. 방주에서 카파르 덮다. 속죄소 카포레트. 즉 그의 얼굴에 예물을 덮어서 나의 잘못을 못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형의 얼굴을 선물로 도배하려 하는 야곱. 이전보다는 나아진 모습이 좀 보인다. 그의 이름따라 속이고 잔머리 굴리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용서받고 싶은 마음으로 행한 전략. 성경의 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략적으로 이 얼굴이라는 단어를 관용어로 사용해서 용서받고자한 야곱의 모습을 표현했다. 왜냐하면, 이후에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해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얼굴’, 파님을 보았다고 해서 이름 붙이 지명이 ‘브니엘’이 되기 때문이다.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 파님.
그러니까 자신이 용서받고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서의 얼굴을 예물로 덮으려 했던 것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하나님의 얼굴, 프니엘.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오로지 하나님과 야곱과 1대1의 시간만이 존재한다.
브니엘은 정체성의 변화를 일으키는 곳이었다. 하나님과의 씨름에서 야곱은 그동안의 교만, 속임수, 공격적인 모습, 잔머리 등을 굴리지 않고, 정공법으로 대치한다. 하나님을 끝까지 붙든다. 에서의 손에 자신이 죽지 않기를 바랬던 소망은 하나님의 얼굴, ‘파님’ 브니엘을 보고서 확신을 갖게 된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고 산 것처럼, 에서의 얼굴을 보고도 살게 될 것을 직감한 것이다.
교만->겸손,
속임수->정직함,
공격적->온유함
그의 이름이 바뀜. 야곱. 야아코브. 속이는 자. 발 뒤꿈치를 잡고. 남을 속이고. 힘을 썼던 사람. 그 힘의 근원이었던 환도뼈가 내리쳐지자 영적인 힘을 그제서야 쓰게 됨. 하나님을 붙듬.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에 있다. 세상의 복을 갈망했던 야곱은 이제 하늘의 복을 갈망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창세기 32:26 (NKRV)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야곱은 어떠한 축복을 원하고 있었을까?
씨름하던 모습을 상상해보라. 붙들고 놓지 않고 있는 모습. 축복이 필요한 야곱. 그런데 무슨 종류의 축복인가?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의 듯과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지리 않고 자신의 것을 얻어냈다.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뺏을 때도, 라반에게서 라헬을 얻을 때도, 재물을 모을 때도 정말 억척같이 살아왔다.
이제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자신에게로 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예전같으면, 그 400명을 이길 수 있는 어떤 물리적인 힘. 지금 자신을 압도하고 있는 천사의 물리력을 얻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에서의 위협에서도 자신을 지켜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그는 환도뼈가 부러지고 다리를 절게 되었다. 예전과는 달리 낮아지고 겸손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진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가 내 승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살 길이다.
예수님도 낮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인 나를 사랑하기 위해 친히 이 땅에 당신도 동일한 모습으로 오시고, 그 사랑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부활하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