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엡 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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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엡 2:11-13)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라는 정도의 말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 받게 된 사실을 다시 태어난 사건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과거의 나는 죽고 예수님의 영으로 다시 살게 되는 정말로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과거보다 좀 더 나아졌다. 라든지... 성경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라는 정도의 가벼운 말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5:24에도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지는 것, 또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마귀의 자녀였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것이 곧 구원의 놀라운 은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함으로써 의로워지려고 하는 마음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예수님만 온전히 바라보고 살기로 마음속에 결단해야 합니다. 더 이상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겠다고 하는 분명한 결단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꼭 필요합니다.
더 이상 세상적인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믿음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에 새롭게 결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조금도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기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도 항상 은혜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마음속에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오직 예수님으로만 충만해지는 그런 특별한 은혜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바울은 달리기 선수가 골인 지점을 향해서 한 눈을 팔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처럼 목표를 정해 놓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냥꾼이 목표물을 정해 놓고 집요하게 추격하는 것처럼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은 항상 애를 쓰면서 살아간다. 라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바울이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바울처럼 목적을 가진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평생 어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루하루 물고기를 잡으면서 그냥 평범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 대한 분명한 목표도 없이 그냥 그럭저럭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 삶이 변해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새로운 목표를 정해놓고 그 목표를 향해서 전력질주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또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시절에 인생의 꿈을 접어버리고 나이 80에  들에서 평범하게 양을 치면서 살던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는 사명을 받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전력질주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사명을 단순히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섬기라고 하는 명령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8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섬김의 삶은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섬김의 삶은 시간이 남으면 살짝 스케줄에 끼워 넣는 선택사항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고 우리를 심판하실까요? 롬 14:12에 보시면 “...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내가 했던 일을 직접 고백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나 자신을 위한 일을 한 것 밖에 없다면, 남을 위해서 내가 별로 한 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여러 가지로 이유와 변명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돈을 열심히 벌다가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이들 키우느라 여유가 없었습니다.” “노후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손주들 돌봐주느라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도 복음서에 보면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8:35, 마 10:39; 16:29, 누가복음 9:24; 17:33에 보시면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심각한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내 목숨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것을 확실하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의 삶이 섬기는 삶이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세상에 단지 존재하고 있일 뿐입니다. 그것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지음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사명을 부여받은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 얼마나 우리의 위치를 변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11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마크 트웨인이 쓴 ‘왕자와 거지’라는 이야기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비슷한 나이의 왕자와 거지가 같은 나라에 있었는데, 거지는 왕국 안에 있는 왕자가 되어 보는 것이 꿈이었고, 왕자는 왕궁 밖에 나가서 자유롭게 놀아보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거지가 왕궁까지 와서 안을 기웃거리다가 왕자를 보게 되었는데 그만 문지기들에게 쫓겨났습니다. 그것을 본 왕자는 거지를 왕궁 안에 들어오게 해서 자기와 옷을 바꿔 입게 했습니다. 왕자는 거지 옷을 입고 왕궁 밖에 나가 거지들과 어울리고 거지는 왕자 옷을 입고 왕궁에서 왕자 노릇을 했습니다. 왕자는 와궁 밖에서 거지들의 기막힌 형편을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왕자가 거지 옷을 입고 왕궁 안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이 왕이라고 주장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자신이 옥쇄가 어디 있는지 안다고 말했씁니다. 하지만 왕자가 말한 곳에 옥쇄는 없었습니다. 거지가 옥쇄인지 모르고 그것으로 호두를 까먹고 다른데 두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왕자는 옥쇄를 둔 곳을 기억해 내어 영국의 왕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전의 우리의 영적 신분이 어떠했는지 설명하고 있씁니다. 우리는 육체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지의 신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혀 나아갈 수도 없고 긍휼을 받을 수도 없으며 기도할 수도 없고 말씀을 받을 수도 없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이 세상을 살면서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조금 더 나아 보이는 쓰레기였습니다. 이 세상에 대단하게 보이는 계획도 결국 보면 쓰레기였습니다. 이 세상에 대단하게 보이는 계획도 결국 보면 쓰레기 재활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인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 같아 보여도 결국 재활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 쓰레기만 실컷 뒤지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올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으 쓰레기와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쓰레기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쓰레기 중에서 조금 멋진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쓰레기통에 버렸던 것을 도로 끄집어 내어 써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는 뒤집어 썼던 먼지를 씻어 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거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궁 안에 정정당당하게 초청되어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 안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것도 하나님의 왕궁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지성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와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거지요 쓰레기 줍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지성소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변화된 신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성소 안에서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았던 이야기는 그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할례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정품이 아니고 불량품이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에 대해 전혀 생각이나 인식이 없었습니다. 우리 속에 전혀 하나님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습니다. 이것은 영적 생명이 완전히 죽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식물인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 오는지 또 미래에 얼마나 엄청난 것이 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언약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엄청난 약속의 보물인지 몰랐습니다.
성경은 보물 덩어리입니다. 아직도 많은 교인이 성경의 가치를 모르고 거의 인간의 만담 같은 지식을 추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복 밖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의 백성입니다. 이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지닐와 축복과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진귀한 좋은 축복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괄호 밖의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축복에 있어서는 아예 후보에도 끼지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쉬운말로 표현하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자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술이나 마시고, 욕이나 하고,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런 사람들이 영광의 백성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보통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새까맣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오직 모세만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말씀을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우주선을 타고 태양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아무리 우주선이라 하더라도 태양 속에 들어가면 녹아서 흔적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시내산도 통과하고, 태양도 통과해 하나님 앞에까지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 결정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온 세상이 뒤집어지고 나라가 변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것은 날마다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소멸하시는 불을 넘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 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쓰레기 줍던 거지 아이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것은 자꾸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일을 하려는 것보다 영광의 하나님께 자꾸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세상의 먼지를 다 씻음받고 영광의 하나님 앞에서 울고 웃으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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