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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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자유

61편을 살피면서 61~63편은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내는 고백임을 기억하자고 시작을 했다. 계속해서 드러났던 ‘두려움’이 63편에서는 사라진다. 우리가 ‘확신한다’라고 할 때의 상태이다. 그러니 ‘두려움’이 사라진 기도자는 어떠한가를 63편에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를 대입해서 ‘내가 이렇게 기도하는가?’, ‘할 수 있는가?’ 돌아보고 그렇지 않다면 ‘두려움’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 61편으로 돌아가는 기도자의 훈련 코스를 밟아야 한다.
먼저, 1~4절은 갈망과 신뢰를 기도자는 고백한다. ‘내가 간절히’, ‘주를 갈망하며’, ‘주를 앙모한다’라는 기도자의 간구는 절실하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2절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처럼 성소에서 주를 바라본다’라는 고백이다. 기도자는 늘 하나님의 성소를 향하는 삶, 성소에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원하는 삶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성전의 시대에 눈에 보이고 제사 중심의 모습은 어쩌면 지금의 교회라는 이미지와는 크게 다르지만 기도자는 성소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예수님께서 ‘복되다’라고 하셨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보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있지만 말이 그런 것이다.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듣는 믿음’에 오해와 부정적인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듣고 싶어 하는 깊은 갈망이 온전하게 듣는 것을 막는 경우이다. 세상에 귀를 즐겁게 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 교육’하신다. 분명 좋은 것이나 듣기에는 거칠고 그리인해 마음을 어지럽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도자를 보라!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라는 고백을 통해 그는 3절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기의 생명보다 나음을 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우리의 변화는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때론 어르고 달래는 아이에게 말하듯 속삭이시지만 대부분은 마음을 헤집는다. 마치 의사가 발라주는 빨간약 처럼 당시에는 얼마나 따갑고 쓰라린가!
5~8절에 기도자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묘사한다. 이런 고백을 기도자들은 얼마나 원하는가? 정말로?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일치하는가? 대체로 나 필요할 때에 요술램프에서 부르면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을 대하지는 않는가? ‘먹음과 같이…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양하고’ ‘나의 침상에서… 새벽에…’ 그런데 실상은 말씀을 책상 한쪽에 펼쳐놓은 성경책처럼 대하지는 않는가. 기도자는 ‘주야로 묵상하며’라고 했다. 이는 결국 시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인의 삶’의 모습이다. 기도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이 ‘성소’에서 나온다고 고백하고 방향성을 삼는 삶을 살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럼에도 삶에서 ‘두려움’을 만난다. 그럴 때 오히려 더 깊이 말씀을 갈망한다. 우리는 그런 두려움에 깊이 빠지기 전에 삶을 돌이켜야 한다. ‘너 그러다 혼난다’, ‘너 그렇게 살면 후회할 날이 온다’는 일상의 말이 닥쳐오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기도자는 두려움이 사라지자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삶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린다.
이어지는 9-11절은 두려움의 원인인 원수들의 운명을 묘사 한다.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우리는 안다. 나의 영혼을 멸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이는 건강일 수도, 자녀일 수도, 돈 일수도, 공부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심하면 옆에서 숨만 쉬는 동료나 가족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가!
오늘 기쁨으로 살아보려 했지만 말 한마디에 상처를 잎고 ‘칼의 세력에 넘겨’지는 나의 모습 때문에 화나고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비난의 화살은 ‘너 때문에’라고 뺕어내지 않는가? 그렇게 ‘두려움’에 휩싸이지만 결국은 하나님과 함께 걸어갈 때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다. 11절에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다윗은 왕이라는 신분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자 대적하던 원수가 오히려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내가 대적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회복되자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기게 하는 삶으로 인도하신다. 마치 부모가 자녀와 함께 하고 싶어 자녀의 일을 해결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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