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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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62편 / 믿음에 대한 간증
시작을 보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복음성가로 잘 알려진 시편이다. 1-2절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노래하고 3-4절은 ‘원수들의 행동‘에 대해서 그리고 다시 5-8절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9-110절은 인생의 모습을 다시 살핀 후 11-12절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구성을 갖고 있다.
1-2절에서 기자는 ‘나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반석‘, ’나의 구원‘, ‘나의 요새’라고 표현한다. 3절을 보면 ‘넘어지는’, ‘죽이려고‘, ’공격하기를’ 처럼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을 흔들고 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자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렇듯 공격 당하는 곳이다. 물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이긴다. 때론 넘어가기도 하지만 뭔가 확실하게 평안과 안정을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한다. ’언제까지’ 라고 말이다. 특히 요즘 시국은 ’대한민국‘이 아프다. 양분된 정치 이념 때문에 아프고 뜻하지 않는 참사로 인해 아프다. 이 땅은 희망을 둘 곳이 아니다. 허망하기까지 하다. 그러다보니 함께 아파할 힘 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상한다.
5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고백한다. 가수 김민기씨는 ‘금관의 예수’라는 제목의 노래에서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라고 노래 했다. 계속해서 사람들은 ‘무얼 찾아 헤매이나‘라고 노래하며 이렇게 간구한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라고 말이다. 평안할 때 시편은 우리에게서 멀다. 사실! 그러나 개인적인 아픔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분노가 썩인 좌절 더 나아가 집단 더 나아가 나라의 운명까지 흔들릴 때 우리는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젊은 세대가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분을 삯였지만 참사가 벌어진 오늘에는 함께 울고 애도할 수밖에 없다.
’오직‘(6) 하나님만이 진정한 위로가 되신다. 그럼에도 때론 이웃을 손을 빌려 쓰다듬게 하신다. 눈물을 보내신다. 그렇게 한 걸음을 옮길 때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로 향할 수 있다. 고통 받는 자들이 반석과 피난처로 옮겨지기 쉽지 않다. 손을 내밀고 대신 울어주고 함께 가야 한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2024년의 다사다난함은 아직도 계속이다. 내일이 25년이라고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희망’과 ‘소망’을 건내듯 우리는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마음을 토하‘는 시간임에는 분명하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라는 통찰을 기억하자. 생로병사의 삶임을 기억하자. 위험천만의 세상은 결국 ‘포악을 의지’한 ’탈취한 것으로’, ‘재물이 늘어도’ 그런 자들에 의해 하나님은 도전을 받으신다. 우리조차도 ‘거기에 마음을’ 두려하지 않는가?(10) 이런 자들은 12절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신다. 앞서 ‘그의 앞에 토’(8)한 고통의 한 숨을 전능자 하나님은 들으신다. 듣고 끝나지 않으신다. ‘주의 인자함‘이 결코 그런 자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고통 당하는 모두를 반석과 피난처로 이끄시기 위해 우리를 향하여 고개를 돌리신다.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악인의 꾀를 좇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구원은 소망을 담고 있다. 다사다난한 시절을 사는 신자에게 ‘소망‘이 없다면 ’반석’과 ‘피난처’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결국 소망을 잃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 살길을 하나님을 붙잡는 가? 아니면 세상을 붙잡는 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서 의지하기 위해서 신자는 ‘마음을 토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한다. 앞서 시편은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말로 살려는 자들이 보이지 않는가? 위로를 건내면서도 마음에는 자신의 이익에 혈안이 된 자들을 보면 알지 않는가? 세상의 법은 피할지 모르나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구원은 동전의 양면처럼 신자를 향하여 구원을 세상을 따라 사는 자에게는 심판을 한 면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신비‘이고 이것을 ’오직‘ 하나님만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나라가 위난에 빠졌다. 그런데 덮친 격으로 참사가 일어나 우리 모두의 마음이 녹아 내린다. 다시 간절한 노래 소리가 절규로 들린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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