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음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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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3–11 DKV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간음을 하다가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사람들 앞에 세우고 예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여자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들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했습니다.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예수를 시험해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구부린 채 앉아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이 계속 질문을 퍼붓자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제일 나이든 사람부터 하나 둘씩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예수와 거기 홀로 서 있던 여인만 남게 됐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여인에게 물으셨습니다. “여인아, 그들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레위기 20:12 DKV
어떤 남자가 며느리와 성관계를 맺었다면 그들 모두는 죽여야 한다. 그들은 사악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들의 죽음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
요한복음 8:4–5 ESV
they said to him, “Teacher, this woman has been caught in the act of adultery. Now in the Law, Moses commanded us to stone such women. So what do you say?”
서기관은 율법연구에 물두하며 바리새파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서기관에 대한 언급은 율법에 박식한 사람들과 위주로 있었다는 것과 그러한 자들의 율법의 진의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지 암시한다. 이 바리새인들의 의도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공격을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셨고,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보호하시는 것에 몰두 하셨다. 주님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들의 이중적인 삶을 드러내시고, 두 마음을 지적하셨다. 지도자로서 그들의 마음에 중심에는 영혼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시스템을 통해 권위를 행사하는 것에 있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기 위해 안식일에 능력을 행하셨다. 그들이 죄인으로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거리를 둔 세리들과 기생들과 죄인들과 가까이 하시고 아끼셨다. 이를 보다 못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이 시나리오를 연출한 것이다.
예수님을 트랩에 가두려고 의도한 질문을 한다. 여기서 예수님이 돌을 던지지 마라고 하시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주신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반대로 돌을 던지라고 하시면 이 땅에 오셔서 약자를 사랑하시고 죄인과 친구가 되었던 행동들을 부인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향 도전한 것은 자기들이 믿고 행하는 것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율법을 따라 모든 계명을 지킨다고 여긴다. 그들은 죄의 짐이 전혀 무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율법 안에 있는 조항들로 다른 이들에게 적용을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해서는 차단되어 있다. 율법주의적인 사람의 특징이 자기 힘으로 만들어 놓은 경건을 믿는다. 사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의 기준은 자기 영혼이 병듬을 인지하고 나아오는 사람인가에 달려 있다. 나는 죄인됨을 자각하고 영원한 저주 아래에서 진정으로 주님의 도움을 얻기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 힘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한 쪽은 내 힘으로 할 수 없다이며 다른 쪽은 내 힘으로 하고 있다가 된다. 율법주의는 내가 지켜야 할 나에게 속한 이익들을 좆게 된다. 율법의 본질이 되는 자비와 사랑을 간과 하게되어 다른 사람과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선택을 무시하게된다.
주님은 더 이상 그 짐을 들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분이다. 상처받고 마음이 깨어지고 더 이상 그 죄의 짐을 질 수 없는 만큼 영적인 어깨가 망가져 버린 사람들에게 찾아오신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살려 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9:10–13 DKV
예수께서 집에서 저녁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도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너희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어울려 먹느냐?” 이 말을 듣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원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는 말씀은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을 도울 수는 없다는 뜻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의 친구가 되신다. 무거운 짐을 진자들이란 죄의 굴레에서 도을 요청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목마른 자들을 보고 오라고 하셨을 때 목마른 자들과 동일한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다. 자기가 병이 든지 모르는 사람은 주님이 구원하실 수 없다. 죄인임을 느끼지 못하고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의 자비는 주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가까이 하시고 그들의 친구가 되신 이유는 그들은 죄인 됨을 고백하고 주님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가장 큰 짐은 무엇인가? 죄의 짐이다.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아는 사람들은 죄의 짐을 굉장히 버거워 한다. 특히 이 짐을 율법을 의지해서 들려고 할 수록 무거워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바리새인들의 의도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공격을 하기 위함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셨고,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보호하고 ㅜ원하시는 것에 몰두 하셨다. 주님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들의 이중적인 삶을 드러내시고, 두 마음을 지적하셨다. 지도자로서 그들의 마음에 중심에는 영혼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시스템을 통해 권위를 행사하는 것에 있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기 위해 안식일에 능력을 행하셨다. 그들이 죄인으로 사회의 소외계층으로 거리를 둔 세리들과 기생들과 죄인들과 가까이 하시고 아끼셨다. 이를 보다 못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이 시나리오를 연출한 것이다.
요한복음 8:6 ESV
This they said to test him, that they might have some charge to bring against him. Jesus bent down and wrote with his finger on the ground.
예수님을 트랩에 가두려고 의도한 질문을 한다. 여기서 예수님이 돌을 던지지 마라고 하시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주신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된다. 반대로 돌을 던지라고 하시면 이 땅에 오셔서 약자를 사랑하시고 죄인과 친구가 되었던 행동들을 부인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향 도전한 것은 자기들이 믿고 행하는 것들이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이다.
예수님이 무엇이라 쓰셨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분은 그들의 모든 분노가 분출되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는 완전히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래 사이로 그분의 손가락을 움직이십니다...7절, "저희가 고집하여 계속 묻더라. 마침내 예수께서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딜레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며 거룩하신 성품에 합당하다. 예수님도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자비를 베푸셔야 한다.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모세의 율법에 다라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율법의 처벌과 죄인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가? 주님은 모세의 율법대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연인을 앞에 두고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결정을 하셔야만 한다. 율법도 지켜야 하시고, 간은한 여인에게 구원도 베풀어야 하신다. 예수님은 어떻게 정의와 자비를 동시에 충족하실 수 있나?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며 거룩하신 성품에 합당하다. 예수님도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자비를 베푸셔야 한다.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고 모세의 율법에 다라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율법의 처벌과 죄인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을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가? 주님은 모세의 율법대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상황에 있는 연인을 앞에 두고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결정을 하셔야만 한다. 율법도 지켜야 하시고, 간은한 여인에게 구원도 베풀어야 하신다. 예수님은 어떻게 정의와 자비를 동시에 충족하실 수 있나?
요한복음 8:7 ESV
And as they continued to ask him, he stood up and said to them, “Let him who is without sin among you be the first to throw a stone at her.”
만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따르는 의로우심과 공의와 심찬을 충족하시려면 여인은 반드시 죽어야 마땅하다.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용서와 친절하심과 자비하심의 성품을 중족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인은 살아야 한다. 어떻게 상반되는 이 두가지를 동시에 충족시키시는가? 이 세상에서 이 두가지를 어떻게 총족할 수 있는가? 이것은 딜레마다.
이사야 45:21 ESV
Declare and present your case; let them take counsel together! Who told this long ago? Who declared it of old? Was it not I, the Lord? And there is no other god besides me, a righteous God and a Savior; there is none besides me.
아모스 3:2 ESV
“You only have I known of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therefore I will punish you for all your iniquities.
미가서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두 말씀은 모슨이다. 어떻게 하나님은 죄를 벌하시고 동시에 용서하실 수 있는가? 사랑의 하나님이 되시며 동시에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되시는가? 인간 안에는 답은 있을 수가 없다. 주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보자.
요한복음 8:9 DKV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제일 나이든 사람부터 하나 둘씩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예수와 거기 홀로 서 있던 여인만 남게 됐습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쳐라!
양심의 가책
자기도 죄인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맞는가? 그들은 자신의 죄의 실체를 마주하기를 거부한다. 영혼의 목마름을 느끼고 죄에 대한 쓰라림을 직면한다면 오히려 간은한 여인 옆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 정산이다. 이처럼 인류는 범죄한 이후로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영혼의 목마른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죄책을 느끼고 자비를 구한는 한 사람
여기서 오로지 간음한 여인만이 죄책을 느끼고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떠나가지 못하고 주님 앞에 남아 있는 것이다. 주님은 땅에 무언가를 쓰시고 한참 있다가 몸을 펴시면서 묻는다.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주님은 떠나간 다른 사람들 보다 이 여인을 존중히 여기시며 소중히 대하신다. 떠나간 모든 사람들도 죄인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주님은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사람을 존중해 주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더 열심히 하고 사람들에게서 더 입지를 얻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며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죄인됨을 인식하고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사악한 죄인임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께 존중을 받는다. 왜냐하면 죄인됨을 아는 것이 나의 실체를 아는 것이기 떄문이다. “주님은 너를 정죄한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라는 말씀으로 이 여인을 존중해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은 명확하다. 하나님에게 칭찬받고 송중히 여김을 얻는 길도 분명하다. 하나님의 의해 인정받는 사람은 자신에게 속한 능력과 업적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악한 죄의 상태를 진심으로 자백하고 이 죄를 덮어주시는 은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모세율법에 대한 지식을 내세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 보다 권위있는 자리에 왔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사악한 자들아 무슨 권리로 너희가 이 여인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냐? 다시 말해서 심찬은 하나님꼐 달렸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는 이 문제를 법정에 가져올 권리조차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정죄하지 아니하시면 정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죄하지 아니한다고 하신 선포 안에 내포된 내용을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로우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간은한 여인의 죄를 덮으주시려면 반드시 그 죄의 대가를 치루고 용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의미하시는가? 곧 있으면 그 죄를 젊어질 심판ㅇ르 염두에 두시고 선포하시는 선언이다. 주님의 죄사함과 용서는 그저 이루어지는 것들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그 분의 몸에 짊어지는 대가로 죄 사함을 선초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들을 고치실 때마다, 죄사함을 선언하실 때마다 십자가를 기다리는 괴로움의 감정을 겪어야 하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인이 지은 죄는 처벌받지 않고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없다. 그녀의 죄는 그리스도께 전가될 것이며, 간음한 죄를 위해 예수님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주님은 그녀의 간음죄를 위해 기꺼이 죽으실 것이다. 그 분은 당신의 거짓말과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한 것을 위해 죽으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연루된 모든 죄를 위해 기꺼이 죽임을 당할실 것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라”는 말씀은 이 이유 떄문이다. 이 여인은 주님의 선포와 함께 구원을 받은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녀의 죄를 짊어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참 친구이시다. 주님은 죄인들과 상처가 많은 사람들과 마음이 깨진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셔서 그들의 죄 값을 치루시고 대신 죽으셨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죄때문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 10명의 나병환자가 나음을 얻고 예수님께로 돌아와 은혜에 감사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한 명이다. 육체적으로 치료를 받은 사람은 10명이지만 영혼의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이다. 주님 저를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눅5:8
누가복음 5:8 NKRV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세리는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자격없음을 자각하였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처형한 지나온 인생에 대해서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하나님 앞에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한다. 이 모든 자들은 공통적으로 영혼의 갈증을 극적으로 느끼는 자들이었으며, 자신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그 대가를 치루셔야 했던 주님께 한량없는 감사를 가진 자들이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영원 가운데 낙이 되는 일, 가장 가치있게 여기시는 일은 무엇인가?
절대로 깨뜨릴 수 없는 자신의 정의의 법에 의해 무기징역을 받은 악독한 죄인을 대신해서 형벌을 받는 것이다.
절대로 깨뜨릴 수 없는 정의의 대가를 치루시고 악독한 죄인을 살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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