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8. 수요설교 (요 4:19-26,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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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1. 할렐루야! 특별새벽저녁기도회 /
수요예배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인사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참된 예배자입니다”
2. 우리 다같이 찬송가 446장을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찬송가 550장,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3. 이 시간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예배/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될 수 있도록/
다같이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4. 대표기도 - 김승현 권사님
5. 광고 -
6.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4 장 19-26절입니다.
신약성경 147면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9-26절 말씀! 함께 교독하겠습니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1. 서론
우리는 지난 주일(5일) 부터 / 특별새벽저녁기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첫째주의 주제는 “예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하는 성령 충만한 예배자”입니다
라는 주제로 첫째주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가복음 7 장과 1장 본문 말씀으로 /
예배가 무엇인지? 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1) 누가복음 7 장 36-50절 본문을 보면/
죄를 한 여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예수님께로 나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향유를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
예배가 “거룩한 낭비”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 담임목사님께서 /
거룩한 낭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 예배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자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내어주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누가복음 1 장 46-50절 본문/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에서/
예배을 이렇게 정의 하였습니다.
예배 = “어떤 환경 가운데에 있더다로, 우리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누가 “예배가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네/ 예배는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내어주는 것이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 입니다.
4) 적용 )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예배자인가?
라는 질문을 매 순간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 우리가 예배당에서 헌금과 시간을 드립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정작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자기 자신을 내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참된 예배자가 아닐 것 입니다.
ex) 우리가 예배당에서 찬양을 할 때에는/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주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참된 예배자는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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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 요한복음 말씀으로/
"참된 예배”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 보겠습니다.
[먼저 사진을 좀 보고 가겠습니다.]
1)첫번째 사진 - 예루살렘 / 세겜/ 갈릴리
배경 -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이제 예루살렘 성전을 가셨다가/ 다시 갈릴리로 가시는 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세겜까지 약 70km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걸어서 가면 2-3일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4장 6절을/ 예수님께서 피곤하셨다. 지치셨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2)두번째 사진은/ 세겜 사진 입니다.
여기는 사마리아 여인이 살고 있었던 동네이고요.
그리심 산과 에발산이 있고/ 야곱의 우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우물가에 지금 오신 것 입니다.
3) 세번째 사진/ 야곱의 우물 교회라고 지금 그리스 정교회 소속 건물 지하 1층에 우물이 있습니다.
여기에 70km를 걸어서 온 예수님/
지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사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 명이 있었고/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은 자기 남편이 아닌/
아주 인생이 순탄하지 않은 여인이 있습니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모두 지쳐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다릅니다.
1) 예수님은 표면적으로 먼 길을 걸어와서 지쳐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고/ 그것이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육신의 약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 이라는 것 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하였습니다.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을 선택한 것 입니다.
이것이 선악과 사건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으로 다시 우리를 예배자로 회복하신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 지쳐있는 것? 피곤해하고 있는 것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은/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 대한 애뜻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7 장 에서/.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버린 우리들을 / 부모를 떠난 자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남편을 떠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여인은 왜 목말라 하고 있습니까?
15절에 보면/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사마리아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을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달라고 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목마름에 지쳐 있는 여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찾아가신 이유는?
세상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려고 간 것이 아니고/
바로 근본적인 목마름을 해결해주려고 가신 것 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참된 예배자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가신 것 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살아보겠다고 아무리 우물을 파도/
켤코 거기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ex) 저도 한때는 스스로 판 우물에 만족을 기대하고 살았지만
그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질때에/ 하나님 없이는 결코 만족을 얻지 못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 생수의 근원 되시는 주님으로 부터/
날마다 은혜를 공급받아서/ 그 은혜 안에 거하는 / 참된 예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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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또 다른 대조를 우리는 요한복음 3/4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굉장히 체계적으로 / 굉장히 짜임새 있게 기록된 책 입니다.
사도 요한이 단순히/ 어떤 사건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책을 구성 했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오늘 4 장 말씀 /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보는데요/
3장 말씀은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장과 4장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요. 어떻게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까?
1)니고데모는 유대인 중에서도 남자이고/ 또한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요즘 말로하면 니고데모는 국회의원 이었습니다.
2)하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들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게다가 결혼을 5번이나 하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는 남편도 아닌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왜 결혼을 5번이나 하였는지 이유는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여인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두 사람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을 의도적으로
각각 3장과 4장에 배치하여서/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1)신분이 좋은 지도층에 있었던 니고데모도 예배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2)신분이 낮은 사마리아 여인도 예배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구약 성경 전체를 가지고 있었고,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율법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동물 제사를 지내는 것을 예배라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예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야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입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예배자가 되는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인간도 스스로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우리를 새로 태어나도록 하셔야/ 우리가 예배자가 된다는 것 입니다.
2) 사회적으로 멸시 받았던 사마리아 여인도 / 니고데모와 마찬가지 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모세오경과 조상들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라/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시면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0절에서 “ 이 산”은 그리심산을 말하는 것 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가 어떤 특정 장소 (그리심 산)에서 드려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편견)
이렇게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세겜이라는 곳이/ 굉장히 역사적인 장소이고/ 예배와 관련된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창세기를 보면/
1) 아브라함이/ 바벨론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서/ 하나님께 처음으로 예배를 드린 장소가 세겜이었습니다.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2) 그리고 야곱이 외삼촌 집에 살다가 가나안 땅에 돌아오서/ 예배를 드린 곳이 바로 세겜 입니다.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3) 그리고 여호수아 서를 보면/ 모세의 명령을 따라/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 예배를 드린 장소이고/
또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언약을 맺은 곳이 세겜 입니다.
그러니/ 사마리아 여인이 / 모세 오경을 따라/
세겜의 그리림 산에서 예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인 또한 예배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배의 중심은 어떤 특정 장소가 아니고/
참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2장에서 /예수님이 바로 참된 성전이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처럼/ 사도 요한은/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2 인물의 대조를 통하여/
어떤 인간도 예배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이고요.
또, 어떤 인간도 스스로 예배자자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예배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
예배의 시작은 삼위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성부 아버지의 선택과 성자 예수님의 구속과 성령 하나님의 임재로 예배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의 주체가 아니라 예배의 객체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신 것 입니다.
예배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어떤 장소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매 순간 순간 예배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를 예배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21절 보시면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무슨 말입니까?
1) 이것은 예수님께서 동물 제사의 끝을 알리는 말씀이고/ 참된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줌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예배자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알리는 말씀입니다.
2) 그리고/ 이제 모든 유대인이던/ 사마리아 사람이던/ 어떤 혈족에 상관없이
성령 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 상관 없이/
예수님의 대속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 말씀을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마태복음 27 장 5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숨을 거두실때에/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로 찢어졌다고 말합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들만 그것도 1년에 한 번 /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셔서 이루신 것 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예배자로 회복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우리는/ 구약 시대의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 이제 참된 예배의 의미를 알고/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된 예배가 무엇입니가?
24절에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영은 = 성령을 말하는 것이고/
진리 =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 입니다.
참된 예배가 무엇입니까?
1)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드리는 예배입니다.
2)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예배 입니다.
참된 예배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입니다.
적용) 우리 모두 성령이 임한 자들입니다.
성령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른다고 했습니다.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육체의 욕심과의 전쟁 중에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예배는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거스르고 +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나오는 마음과 삶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예배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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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말씀으로/ 우리 삶에 적용하길 원합니다.
1. 우리는 어떤 목마름으로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파도 파도 채워지지 않는 우물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이미 예수님께서 해답을 주셨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만족시켜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2. 예배는 어떤 특정 장소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배당에서 예배 드리고/ 세상에서는 예배를 안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예배는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줄 알았습니다.
예배가 설교 말씀을 듣고 + 찬양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 입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 예수님 안에서 / 예수님을 배워서/
내 마음과 내 삶을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세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풀리지 않는 인생의 허기로 인하여/
어쩌면 더 장소에 한정된 예배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배는 철저히 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영도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성령 충만으로/ 자기 욕심을 내려 놓고/ 예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나를 버리고 / 나를 낯추는 참된 예배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로마서 12 장 1 절을 같이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 I appeal to you therefore, brothers, by the mercies of God, to present your bodies as a living sacrifice, holy and acceptable to God, which is your spiritual worshi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