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생명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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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이 쓰인 배경에는 A.D.70년대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많은 사회 변동을 겪게 되는데 유대인의 종교적 변화가 있습니다. 사두개파와 엣세네파, 열심당이 자취를 감추고 전통적 학문을 중시하는 바리새파만이 남게 되었고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은 같은 동족으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회당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동족을 버린것과 같이 매도되는 상황으로 벌어졌습니다. 그렇기에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이라는 것과 유대인의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오셨고 유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지만 그분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해야 했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 영지주의로 인해 거짓메시지가 들어오게 되어 교리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들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과 그분이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속죄,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였습니다.또한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과 신비한 지식(깨달음)을 소유한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부터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기독교 교리가 위태해지는 상황이기에 육체로 오신 하나님,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생명)을 얻는다는 참된 복음을 전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역시 복음이 공격을 당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요한복음의 배경과는 다를 수 있지만 쏟아지는 지식과 과학, 인간의 사상주의 등으로 복음은 흔들리고 믿는 성도들을 위협하고 흔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생명(영생)을 얻는 방법,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들어야 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잉글랜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주장에 근거한 격언인데요. 행동을 관찰하고 사색함으로 추측할 수 있는 지식을 정신의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이 넘쳐나고 과학적 돌출 결과가 넘쳐나는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에 검색만하면 수많은 지식을 얻어낼 수 있고 요즘에는 A.I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전 세계에 있는 지식들을 검색 하나에 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불안해하고 걱정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를 떠 안고 떨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비 그리스도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 마저 동일한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청년들과 이야기를 하면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갇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지식이 넘쳐나고 수많은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왜 사람들은 힘이 없고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으로 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참된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마저 왜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로마서10장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분명한 것은 믿음은 들음으로 나는데 이것은 믿음은 지식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들어야 알게 된다는 것이죠. 지식적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를 넘어서는 개념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상적 지식은 계속되어 변화되고 완전성이 없기에 지식(텍스트)속에서 사는 사람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으며 두려움에 갇혀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착각하는 것은 텍스트를 알면 그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지성의 동의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신뢰를 이루는 의지의 행동을 자극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기에 돌처럼 굳은 우리 본성의 마음은 지식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10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듣는 다는 것은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것을 말합니다. 양 무리는 목자가 내는 소리를 알아듣습니다. 많은 설교를 듣고 깨닫는 것이 인격소양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이르는 들음은 머리속에 머무는 들음이 아닌 가슴으로 듣는 들음입니다.
가슴으로 듣는 들음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을 넘어서 깊은 이해와 수용을 통하여 가슴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신호등을 지키는 법은 우리가 전부 지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 자녀들에게 신호등을 잘 지키고 차 조심하라고 하는 부모들 조차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합니다. 이것이 단순히 귀로 듣는 것입니다. 하지만 눈 앞에서 무단횡당 사고를 목격하거나 실제로 사고를 당한 사람은 무단횡단을 하지 않습니다. 신호를 잘 지킵니다. 이것이 가슴으로 듣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들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들어야 합니까?
2.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들어야 합니다.
앞서 로마서 10장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임을 증거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영지주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부정하였고 또한 육체의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부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휩쓸고 있는 다원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는 입장 속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어떠한 것을 하나님이라 주장한다면 그것이 나 자신이 되었든, 사물이 되었든지 전부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립니다. 하지만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데 그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이 태초부터 있었으며 모든 것이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곧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이 이제는 땅에 육신으로 오셨으며 우리와 함께 하셨는데 그분이 곧 예수이시다.
이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1장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이 땅에 죽으시기 위하여 오신 어린양이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골라 듣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기 위하여 오신 어린양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돈 많이 버는 방법, 출세하는 방법, 낚시 잘하는 방법, 캠핑잘하는 방법 등 자신에게 끌리는 세상적인 것들에 더욱 관심가져 합니다.
이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이제 죄에 대해서 쉽게 말씀을 선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인문학적으로 인간의 인격소양으로만 이야기 하지 죄에 대해서는 성도들이 싫어한다는 것이죠.
교회생활 했더니 성공했다. 풀렸다. 고침받았다. 이러한 것들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이러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와 온전한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베푸신 은혜를 통해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자복함으로 회개하길 원하시는 건데 흡사 거지가 구걸할 때 행인이 던져주는 지폐 한장이 고마워하지만 행인과 아무 상관 없는 관계로 만족한다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말씀이 이 땅에 육신으로, 어린 양으로 오신 것은 죄인과 관계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고 사망을 이기사 우리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들을 때, 예수그리스도와 관계할 때 우리는 어떤 것을 얻게 됩니까?
3. 참된 생명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전가받으시고 자신에게 있는 하나님의 완벽한 의를 우리에게 넘겨주시기 위해 부활하였습니다.이것을 믿는 것이 “생명”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 참된 생명,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누리는 복된 생명을 얻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나 실은 다 죽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씀을 전하고 듣고 있지만 실은 죽은 자와 같습니다. 뿌리가 뽑힌 나무가 당장은 살아가고 있는 것 같으나 그것은 생명의 소모, 고갈일 뿐 참 생명이 아니기에 곧 말라 죽어버리게 됩니다. 영원과 단절된 모든 생명 역시 이 죽음 이상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믿는다. 힘 입는다. 얻는다 라는 동사는 일회적인 단순 행동이 아닌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상태를 강조하고 있는 형태로 사용괴독 있습니다. 한번 믿어 고백하고 끝이 아닌 계속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상태를 뜻하며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살아갈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내가 영원한 생명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하기에 육체의 죽음과 상관 없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도마에게 손을 내밀어 몸에 난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시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엎드러진 사울의 질문에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대답하시며 관계를 맺으십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지식정보와 발전되는 과학기술 속에서도 인간은 불안해 하고 두려워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미지의 영역인 죽음이라는 앞날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이름을 힘입는 자들은 생명을 얻게 됨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유한한 인간의 사고와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지식이신 예수그리스도께 속하게 하는 것이요 인간의 힘과 썩어질 것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의 울타리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의 생명을 주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살아감으로 생명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