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중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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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views현대 사회에서 "헌신"은 부담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로 여겨지지만, 진정한 헌신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과 양립 가능하다. 예수님 시대, 부자들의 헌금은 자신의 안락함과 명예를 위한 겉치레에 불과했지만,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은 자신의 생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린 진정한 헌신이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부를 드리는 삶이다. 신앙은 종교적 행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특히,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과부와 같은 전적인 신뢰와 헌신이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실질적으로 돕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의 작은 헌신이 마중물이 되어,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결단을 하고,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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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헌신, 불편한 진실 앞에 서다
서론: 헌신, 불편한 진실 앞에 서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한번 깊이 들여다봅시다. "헌신"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까? 솔직히 말해서, 왠지 모를 부담감, 마치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그런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습니까? 마치 누군가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 같은, 혹은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물질, 자유를 빼앗아가려는 것 같은 그런 불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습니까? 특히나 요즘처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헌신", “순종”이라는 말은 왠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유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 삶은 나의 것"이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헌신이라는 단어 앞에서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고, 망설이며, 심지어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과연 이것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입니까?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과연 헌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이 불편한 진실 앞에 정면으로 마주 서서, 진정한 헌신의 의미를 깊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 시대의 헌금 문화: 겉치레와 자기만족의 종교
1. 예수님 시대의 헌금 문화: 겉치레와 자기만족의 종교
막 12:41-44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 헌금함 맞은편에 앉으셔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 자리에는 많은 부자들이 넉넉한 헌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경건해 보였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께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당시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낸 헌금은 분명 성전 운영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되기도 했겠죠. 하지만 그들의 헌금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즉 자신의 안락함과 명예를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진 헌금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지대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적당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종의 '안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약 2:15-16은 이러한 겉치레 신앙의 위선을 신랄하게 지적합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 말씀처럼, 그들의 헌금은 자기만족과 명예를 위한 공허한 행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2. 과부의 두 렙돈: 세상을 뒤흔든 작은 헌신
2. 과부의 두 렙돈: 세상을 뒤흔든 작은 헌신
그러던 중, 한 가난한 과부가 나타나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습니다. 두 렙돈은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고작 몇백 원, 몇천 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매우 적은 금액입니다. 그 돈으로는 빵 한 조각 사 먹기도 힘든, 정말 보잘것없는 액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가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부자보다도 더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일까요? 그녀는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 즉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 아니 당장 내일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전 생애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으로, 그 작은 동전 두 개를 헌금함에 넣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계, 미래, 안전,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목숨을 건 믿음의 결단을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끝났다고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3. 진정한 헌신의 본질: 전부를 드리는 삶
3. 진정한 헌신의 본질: 전부를 드리는 삶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헌신은 결코 금액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이만큼 드렸으니 됐죠? 나머지는 제 마음대로 쓰겠습니다."라는 식의 타협적인 태도로는 그것이 재물이든, 시간이든, 우리의 마음이든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래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4. 신앙의 진정성과 일상의 예배: 삶으로 드리는 예배
4. 신앙의 진정성과 일상의 예배: 삶으로 드리는 예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는 것만으로 신앙생활의 책임을 다했다고 착각합니다. "주일 예배도 잘 참석하고, 십일조도 잘 내니, 이 정도면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거지."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예배와 헌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 행위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성전에서 헌금하던 부자들의 모습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많은 돈을 헌금함에 넣으며 자신의 경건함을 과시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겉모습에 속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도사린 탐욕과 위선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의 일부, 그것도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헌금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이 보잘것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예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풍요 속에서 정작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을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는 무관심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헌금을 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한다 해도, 우리 마음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있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지 종교적 행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경건의 모습입니다.
5. 우리 시대의 과제와 도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입니다. 돈과 권력, 성공과 쾌락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이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바로 이 과부와 같은 전적인 신뢰와 헌신,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믿음의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오해하기 쉬운 이야기인데, 재물이나 시간을 더 많이 드려야 한다는게 결코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가서 이웃, 다른 사람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서 사랑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6.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참된 경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백성답게, 그분의 자녀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배당에 앉아 있는 시간, 헌금함에 돈을 넣는 그 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의 모든 순간, 우리의 숨결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을 대할 때, 가정에서 가족들을 사랑할 때, 친구들과 우정을 나눌 때, 심지어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낯선 사람을 대할 때에도,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눈빛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 흘러넘쳐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시대의 '과부'와 같은 이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 1:27)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가난과 질병,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은 어떠합니까? 그들의 아픔과 눈물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실질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까?
진정한 헌신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회복과 결단으로의 부르심 - 행동하는 믿음
결론: 회복과 결단으로의 부르심 - 행동하는 믿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번 냉철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혹시 우리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머물러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우리의 일부만을 드리면서, 마치 큰 헌신을 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렙돈을 드린 과부의 믿음, 그 순전하고 온전한 헌신을 기억합시다. 그녀의 헌신이 오늘 우리에게 강력한 도전과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다 드림이 마음 속에 다가와야 하고, 또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그렇게 다드릴 밖에 없었던 그 여인의 형편도 우리 눈에 다가와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맙시다. 더 이상 계산하거나 저울질하지 맙시다. 우리의 삶 전체를,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립시다. 우리의 시간, 재능, 물질, 마음, 그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드립시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 때로는 조롱과 핍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맙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과 은혜를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과부처럼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헌신을 통해, 이 세상에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헌신이 마중물이 되어, 메마른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결단합시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립시다. 그리고 행동합시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밉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게 합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