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논쟁-하나님은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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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가복음 12:13-17(신약 75쪽)
설교제목 : 세금논쟁-하나님은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어쩌면 요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방송은 뉴스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평소에는 잘 들여다 보지도 않던 뉴스를 하루가 멀다하고 보게 됩니다. 그러다 눈길이 가는 뉴스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임영웅이라는 가수가 이번 계엄령에 관해 어떤 입장인지를 팬이 묻자, ‘자신은 정치인이 아닌데, 목소리를 왜 내냐고 답해서’요. 그 일이 뉴스를 타고 이런저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데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에 정치적 발언이라는 것이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고 때로는 문제를 삼는 것은 아닌가 해요. 그러니 정치인이 아닌 공인들 특히나 연예인들이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에 조심스러워하고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해요. 사실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비슷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일전에 어떤 분이 제게 그런 질문을 했어요. 이번 계엄령과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종교계 특별히 개신교에서는 이에 관한 입장발표가 늦거나 통일성을 갖추지 못한다고요. 그것은 사실이지요. 우리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교가 그나마 개신교 안에서는 진보적이다 평가를 받고 있어서 정치적인 문제에 앞장서서 의견을 표명하곤하는데요. 보통은 교회에서 정치얘기하면 안된다는 둥 정교분리가 어떻다는 둥의 이야기로 종교와 정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하곤 해요. 그러다보니 종교 보다 정확히 우리 개신교에서 이런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고 또 이를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정교분리 곧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못한 이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요. 성경을 좀더 깊이 들여다 보지 못해서 생긴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우선 정교분리라는 것은 정치와 종교가 서로 간섭을 해서는 안된다거나 서로 무관심해야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본래 이것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미국으로 온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서로 공존하기 위해서 관용적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과거에는 개신교와 로마가톨릭 달리 말하면, 성당과 교회가 피 터지게 싸웠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서로를 죽이며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로부터 서로 함께 공존하고 서로를 용납하자는 차원에서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이죠. 가령, 만약에 국회위원이나 대통령을 뽑는데, 그가 성당을 다니냐 교회를 다니냐 관계없이 그가 해당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놓고 평가하자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을 뽑는데 가게 주인이 교회 다닌다고 불교나 이슬람교 직원을 종교적인 이유로 뽑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 어떤 종교에 속해 있느냐가 그 사람을 차별하고 그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교분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함으로 차별의 벽을 허무는 일이 되는 것이죠.
한편, 오늘 성경 이야기도 그것을 깨닫게 해줘요. 흔히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이야기를 세금논쟁이라고 해요. 다시 말해 당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를 예수님께 묻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물음이 아니라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는 악의를 가진 질문이었어요. 왜냐하면,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예수님을 로마 황제에 반역죄로 몰고 갈 수 있었고요. 반대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율법을 범한 것으로 종교적인 문제로 몰고갈 수 있어요.
세금 내는 문제가 종교적인 문제가 되었던 까닭은 이러한데요. 로마에 바치는 세금은 로마 황제 그림이 새겨진 동전 곧 데나리온으로 바치게 되어 있었어요. 이 동전에는 당시 로마 황제를 ‘신의 아들’ 또는 ‘대제사장’으로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는 로마 황제를 신과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것에 동조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결과가 되었어요. 또한 동전에 새겨진 상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을 위반한 것이고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그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당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하는 지를 묻는 것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려서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매우 악의적이고 교묘한 질문이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모르지 않으시죠. 이를 간파하셨고 이에 관해서 그 유명한 답변을 하시죠. ‘가이사 곧 로마 황제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이지요.
간혹 사람들은 이 말을 오해합니다. 예수님이 수사학적 기교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해서 위기를 모면한 것은 아니냐고요.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예수님의 얘기는 결과적으로 세금을 바쳐도 된다는 것이지요. 다만 세금을 바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얘기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빼앗지 않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세금을 바치는 일종의 정치적인 문제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것에 관계된 것만 우리의 관심사여야 한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앞서 말한 정교분리에 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에만 관심하라고 얘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문제에 관해 예수님은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했거나, 이 문제를 피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 바치라고 하시면서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거은 로마 황제를 섬기라는 것이 또한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뒤에 덧붙이는 것은 우리가 더 관심할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것이 더 관심할 문제라고 말씀드리냐면요. 하나님의 것은 로마 황제의 것보다도 더 크고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하나님의 것은 무엇일까요? 쉽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에서 가이사의 것은 어떤 것입니까?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이사의 형상이 세겨진 동전을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것입니다. 성경은 누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니깐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오늘 우리의 목숨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니 동전보다 더 귀한 것이 우리의 목숨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가이사의 것에 관심하기보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 스스로에게 관심해야 하는 것이지요. 제가 말을 좀 복잡하게 했는지 모르겠는데요. 이렇게 정리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에 나오는 세금논쟁에 관한 예수님의 답변은 이런 것입니다. ‘세금은 내라,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가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생명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에서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고요. 성경은 정치적인 문제 이상으로 소중한 것이 우리의 삶에 있음을 가르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오늘 성경 이야기는 말해줍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정치적인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관여하지 않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은 우리의 삶에 있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성경이야기를 통해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고자 악의적인 질문을 던진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려 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생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에 넘어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것인 생명을 지켜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달리 보면, 생명을 귀히 여기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생명과 곁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살 것을 일깨워주시는데,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스스로의 삶을 비관하거나 삶을 저주하거나 문제 삼고 있지는 않나요? 이렇게 하나님의 것을 소중히 지켜내기보다 스스로가 위협하고 있지 않나요? 혹은 내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러 대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훔려하고 있지 않나요? 이는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는 죄가 됩니다. 바라건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빼앗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그 생명을 잘 지킬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