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논쟁 - 사랑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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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가복음 12:28-34(신약 76쪽)
설교제목 : 계명논쟁 - 사랑의 위대함
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는 ‘가장 큰 계명’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와야 묻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요. 아마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은 그 정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지요. 결론적으로 사랑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서기관의 질문은 순순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정말로 가장 큰 계명이 궁금해서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서기관은 ‘율법학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다른 한글번역성경, 보다 정확하게는 새번역 성경에서는 서기관 대신에 율법학자라고 씁니다. 그러니깐 율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율법학자가 율법에 관해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결코, 순수한 의도는 아닌 것이죠.
물론 율법이 무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613개로 정리하였는데요. 크게 둘로 구분이 됩니다. ‘하라는 율법’‘하지 말라는 율법’으로요. 하지 말라는 율법이 365개이고요. 나머지 하라는 율법이 248개입니다. 이렇게 율법이 많기 때문에 여기서 어느 율법이 으뜸인지를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2장을 계속 살펴보아서 알지만 여기서 벌어지는 논쟁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것뿐입니다. 다시 말해 이 율법학자 또는 서기관은 예수님을 넘어 트리려는 악의로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에 굴하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답변은 매우 위험한 답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의 계명은 예루살렘 성전과 제사장들의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런 상관관계가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웃 사랑을 통해서요.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그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님이 사랑하라고하신 가르침은 단순히 좋은 얘기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뒤흔들만한 위험천만한 얘기입니다.
놀라운 것은 서기관은 예수님이 말씀을 듣고 동의를 표한다는 거예요.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2장 33~34절을 같이 읽습니다.
마가복음 12:33-34(신약 76쪽)
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서기관이 이렇게 말하잖아요.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났다고요. 다시 말해서 제사를 드리는 일보다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저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풀어서 얘기해 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신앙생활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관형 작가라는 분이 있어요. 이분이 ‘바울의 가시’라는 저서를 통해서 자신이 조현병 환자인 것을 밝혔어요. 혹시 조현병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어쩌면,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요사이에 뉴스에서 이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이 사건을 일으켜서 종종 크게 보도된 적이 있지요. 그러다보니 이러한 병을 앓고 있는 분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거나 위험한 종류의 사람으로 보곤 하는데요. 사실은 저도 이분의 이야기를 접하기까지는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제 생각을 조금 조정하게 됐습니다.
이분이 조현병을 앓게된 것은 사실은 폭력으로 물든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에 따른 것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밥을 먹다 소리를 내거나, TV소리를 크게 튼다는 사소한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맞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같은 반 짝으로부터 괴롭힘과 구타를 당했는데요. 주변에서도 이에 동조하여서 언어폭력을 일삼아 왔어요. 폭력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언젠가는 나를 괴롭힌 친구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고 학교에서 뛰어 내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복수심을 가지고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으니 공부로 성공해 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독기를 품고 머리도 삭발하고 잠도 줄이고 친구들과 말도 섞지 않고 지냈어요. 심지어 한 동안은 잠도 안자고 학교 독서실 공원을 왔다갔다하면서 공부를 하기도 했고요. 더 나아가서는 일정 기간을 공원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공부를 하다보니 불면증과 우울증이 오면서 성적이 오르기는 커녕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거예요. 훗날 그와 같은 패배감이 결국 조현병으로 이어졌어요. 조현병이라는 것이 그렇다고 해요. 아침부터 계속해서 과거의 불행한 기억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고 해요.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과거의 괴로운 일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해요. 잠을 자도 악몽의 연속이었어요.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갔는데요. 대학을 갔다고 해서 삶이 달라는 것이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기독교 동아리를 권유받았고 그 속에서 만난 선배들과 정을 나눴어요. 선배들 기숙사에 가서 같이 밥먹고 얘기하고 하는 일상이 전에 해보적 없는 삶이었고 그것이 큰 위로와 힘을 주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삶에 관해 털어놓을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에 시달렸던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요. 그 얘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어느 날은 새벽에 홀로 예배를 하게 되었는데요. 찬양을 부르고 성경을 펴는데, 마태복음에 원수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늘 복수와 미움으로 괴로웠던 삶이 좋은 신앙공동체를 만나면서 변화된 덕분에 그 말씀을 놓고 기도해 보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에 자신에게 폭력을 행했던 아버지를 위해, 학창 시절 자신에게 폭력을 행했던 짝을 위해서요. 기도하면서 아버지의 괴로움들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막노동판에서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또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가 과거에 자신처럼 괴롬힘을 당했다던 얘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 났어요.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루 아침에 용서된 것은 아지만 오래지 않아서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와 친구를 용서하게 되었어요.
이분은 아직 조현병을 앓고 있어요. 약을 먹고 관리를 하고 있죠.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해요. 자신이 만약 다시 태어나서 또 조현병을 앓게 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요. 만약 조현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의지해서 살았을 텐데 그와 같은 약점 혹은 가시가 자신이 삶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다고요. 그러니 조현병에 걸렸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서 자신의 인생이 바뀐 것이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하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대단한 은사를 지녔다고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예수 믿게 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 단지 예수님에 관한 깨달음을 많이 얻어서 일까요? 신앙생활을 통해서 여러 이적을 경험해서일까요? 어쩌면, 내게 예수님을 믿도록 이끈 누군가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요?
생각해보니깐 저는 어린 시절에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자랐는데요. 교회가는 것이 즐거웠던 것은 교회에서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형, 누나들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몇 차례 말씀을 드렸는데요. 제가 목사가 되어야지라고 결심을 하게 해준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 곧 가장 큰 계명에 관한 것인데요. 저는 몇 년 동안이나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늘 믿음에 관해서 목사가 되는 것에 관해서 고민이었고 혼란스러웠는데요. 이 말씀이 제 마음을 꼭 잡아줬어요. 목사가 되는 것은 사랑하는 일이라고요. 아니 신앙인으로 사는 것은 사랑하는 일이라고요. 그만큼 귀하고 값진 일이 또 있을까요?
바라건대, 우리 성도님들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삶에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가 변화했고 다른 사람이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이로써 소중한 이들의 변화를 경험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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