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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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7:1-17(구약 807쪽)
설교제목 :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13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
14 악인이 죄악을 낳음이여
재앙을 배어 거짓을 낳았도다
15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16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저는 지난 주 화요일 오후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 잠이 많고 저녁에 정신이 맑아지는 저로서는 보통때와 다르게 일찍 잠자리에 든 것입니다. 아마도 보다 앞선 주간에 새벽기도회를 일주일 동안 인도하였고 감기로 약을 먹었던 것이 평소보다 일찍 잠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새벽에 저는 충격적이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지난 밤에 잘 주무셨냐는 담임목사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밤 사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가 있었고 수요일 새벽 1시에 해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뉴스를 확인하고서 새벽에 있었던 일에 관하여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뉴스보도에 따르면 45년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또 계엄령이라는 것이 사전적으로는 ‘내전, 반란, 전쟁, 폭동과 같은 국가적 재난과 같은 비상 사태로 국가이 일상적인 치안유지와 사법권 유지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과 같은 국가 원수가 군대를 동원하는 조치라고 합니다. 지난 화요일 저녁에 얼마나 중대한 국가위기가 있어서 45년 동안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계명령을 대통령은 발휘한 것일까요?
국민들 대부분은 그것에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여러 기관들에서 심지어 우리가 속한 교단에서까지 이것의 부당성에 항의하고 규탄하는 목소리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태통령 탄핵을 논의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치라는 것이 참 이상하게도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가 봅니다. 탄핵에 관한 투표가 어제 부결되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보면서 2022년에 들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을 보면서 정치로는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가 발전적이라기보다는 퇴보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정치에 관한 관심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목회자로 또는 한 시민으로써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결코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권력자의 독주를 방관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그 이전까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정치인이 나라를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에게 소망있는 삶을 선사해 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예를 들면 경제, 외교, 정치 등에서 정치가 가장 으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치가 가지고 있는 큰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힘이 과연 기대만큼 올바르게 사용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너무 큰 힘을 남용하거나 오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계엄령 사태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무엇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시편이 우리에게 그것을 답해줌을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애가라고 해서 슬픈 노래라고 분류가 되는 시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인은 괴롭고 힘든 중에 이 시편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시편의 내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절과 2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
2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 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
방금 읽은 구절을 통해 시인은 말합니다. 자신을 쫓는 자들이 사자와 같고 그들이 자신을 찢고 뜯을까 한다고요. 다시 말해 시인은 죽음의 공포에 놓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 시인이 이것이 억울하기도 해서요.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시편의 3절에서 5절을 같이 읽습니다.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4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5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셀라)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죽음의 공포가 자신이 삶과 무관하다는 것을 항변합니다. 그리하여 원수들의 심판을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6절에서 8절을 같이 읽습니다.
6 여호와여 진노로 일어나사 내 대적들의 노를
막으시며 나를 위하여 깨소서
주께서 심판을 명령하셨나이다
7 민족들의 모임이 주를 두르게 하시고
그 위 높은 자리에 돌아오소서
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저는 그것이 한편으로 인간 안에 있는 보편적인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복수를 꿈꾸는 마음 말입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복수를 계획하던지 아니면 복수를 대행해 줄 수 있는 어떤 이나 단체를 의지하게 됩니다. 달리 보자면 그것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사실은 제가 과거에 정치에 가졌던 마음도 이와 비슷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우리의 삶을 변화킬 수 있는 것이 정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오늘 시편의 시인은 이런 결론에 이릅니다. 오늘 시편의 마지막 구절인 17절을 같이 읽습니다.
17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시를 마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기 때문입니다.세상에 어떤 것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구원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주님께 내어 맡기고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세상에 관심을 끄고 사는 방법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을 바꿔가는 일이 됩니다.
설교의 시작에도 얘기했고 잘 아시다시피, 어제 탄핵투표에 관한 투표는 부결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투표 자체를 진행하지 못한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게 하셨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으셨습니까? 꼭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요. 우리가 삶을 살면서 부조리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대체로 우리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 열심이 보상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 열심으로 문제가 일어날 때가 그렇습니다. 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몸에 남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이고 삶의 소망은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해 집니다.
우리가 그 문제에 갇혀 있을 때, 문제는 우리에게 영원한 고통을 줄 뿐입니다.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 문제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구원이고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무턱대고 만사오케이고 아무쪼록 믿기만하면 모든 불행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시편의 시인에게서 문제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어떻게 마지막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까? 내 눈 앞에 문제가 더 이상 문제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달리 보는 것입니다. 문제가 사라지거나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하나님께 문제를 내어드리고 문제를 더이상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언젠가 나눴던 이야기인데요. 어떤 목사님이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답니다. 신학교에 갈 것을 결단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더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리가 고침 받기를 기도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리를 고쳐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음으로 그분은 자신의 다리가 낳았다고 얘기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분에게 다리를 저는 문제는 그대로 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을 통해 더 이상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불안한 상황들이 연속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문제가 해결되고 안 되고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늘 찾아오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삶이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문제로부터 넘어서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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