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논쟁: 담을 높이 쌓고 있지 않습니까?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6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마가복음 11:27-33(신약 74쪽)
설교제목: 권위 논쟁: 담을 높이 쌓고 있지 않습니까?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를 흔히 ‘권위논쟁’이라고 부릅니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팔던 사람들을 내쫓고 환전해 주던 사람들의 상을 뒤엎은 일을 벌이셨는데요. 이를 성전정화사건이라고 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에 예루살렘 성전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장로, 서기관이 나와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대체 무슨 권위로 이러느냐고 말입니다. 좀더 쉽게 표현하면 ‘당신이 누군데 이러느냐, 당신 이럴 자격있냐, 당신 몇 살이냐’하는 상황입니다.
그 질문을 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관심은 이런 것입니다. 당신 그 일에 책임질수 있느냐 또는 당신이 과연 우리보다 높은 사람이냐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관한 질문으로 맞받아치지만요. 그 이야기속에 숨은 의미는 이렇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오늘 성경 이야기는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교훈해줍니다.
제가 이러한 권위에 관한 주제를 놓고 생각하며 자료를 찾다가 발견한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재 부산에서 낮은울타리교회를 담임하시는 강신욱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원래 검사를 꿈꾸셨는데요. 부산대 법대에 진학해서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기도를 하는데요. 기도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고 해요. 가족들과 이 부분을 놓고 상의하는데요. 가족들도 다시 기도해보자고 하셔서 기도원에 가서 가족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데요. 기도원장님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돼요.
본래 검사를 꿈꿨던만큼 실력도 있고 한편으로는 야망도 있었던 분인데요. 서른 셋에 남서울평촌교회에서 담임목회자가 됩니다. 17명의 개척맴버로 시작한 교회가 현재는 1만 명이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하였는데요. 어찌보면 젊은 나이에 담임목회자가 되면서 스스로에게 가한 채찍질이 공황장애로 찾아오게 됩니다. 처음에는 체력문제인줄 알았으나 극복이 되지 않았고 당연히 목사니깐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완전히 해소가 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갔더니 자신의 내면에 여러 문제들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담임목회자로써 성실해야 했던 모범생 컴플렉스와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천사 컴플렉스 그리고 성도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야한다는 메시아 컴플렉스가 복합적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담임목회자로써의 모습으로 살아가려다 보니 억눌려야 했던 자기모습과 그에 따른 압박이 공황장애를 일으키게 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강단에서 고백하면서요. 어떤 성도의 소중한 고백을 듣게 되었다고 해요. 자신도 사실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요. 차마 교회에서는 그런 얘기를 쉽게하지 못했는데, 담임목사님의 얘기를 듣고서 그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목회가 안정적으로 흘러가던 무렵에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연락이 왔답니다. 동창 중에 하나가 말기암으로 얼마 살지 못하는데, 너가 목사니까 한번 만나주면 좋겠다고요. 가고 싶었지만 당시 몸살감기를 앓고 있어서 가지 못했고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30년 만에 고인이 된 친구의 빈소에서 동창들을 만났답니다. 그런데 자신을 대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어딘지 불편해 보였다고 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친구들은 그를 마치 박수무당처럼 생각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친구가 교회를 가본적이 없고 기독교에 관해 제대로 듣거나 접해본 적이 없다보니 목사도 무당과 같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그러면서 그런 고민이 들었다고 해요. 친구들이 과연 복음을 접할 수 있을까? 40대가 넘어서 친구들이 전도지를 받게 될 일도 거의 없을 뿐더러 받지도 않으려 할테지만, 전도지를 받더라도 복음을 듣고자 교회에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요. 그리고 목사로써 자신이 살아온 삶이 어쩌면 잃은 한마리 양을 찾는 길이 아니라, 아흔아홉마리 양들을 붙들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던 가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함을 통해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교회밖에 비신자들을 전도하는 사역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큰 뜻을 품고 고향 친구들이 있던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했으니 그동안 잘하고 있던 교회 사역도 내려놓고 왔는데요. 친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답니다. 카톡을 보내면 읽었다는 표시는 있는데 아무런 답장이 없는 이른바 읽씹 상황이 계속 되는 겁니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을 사역에 아무런 진척없이 보내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암에 걸렸던 동창의 소식을 전한 친구에게 어렵사리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친구들이 자신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박수무당’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친구들의 오해를 풀고 간격을 좁히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였답니다. 친구들을 만나서 밥을 먹는데요. 전도를 하고 싶지만 일절 기독교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답니다. 오랫동안 그 일이 계속되자 친구들 쪽에서 먼저 궁금증을 나타내보였다고 합니다. 그 친구들의 첫 궁금증이 흥미롭습니다. ‘교회 헌금은 목사가 다 가지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이 나오면 설명을 해주고 궁금증을 해소해 주면서 기독교에 관한 오해를 풀어가고 관계를 돈독히 세워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던 중에 한 달에 한번 정도 다른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 기회를 얻어서 행하고 있었답니다. 자신이 비신자들을 위한 사역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서요. 설교하려 갔던 어떤 교회에 속한 성도가 주변 지인들 중에 전도하고 싶은 비신자들이 있다고 그들을 소개해 주더랍니다. 오랜 기간 사역의 물꼬를 트지 못한터라 기쁜 마음으로 그분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쏟아지는 이야기는 교회에 관한 부정적인 것들이었답니다. 이 또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것이 일종의 떠보기였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이렇게 말해도 받아줄 수 있는 목사인지를 시험해 본 것이지요. 그런데 이분이 지혜롭게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에 관해 인정하고 그 점을 대신 사과했답니다. 그러자 모인 이들ㅇ 마음이 풀어지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그렇게 비신자들을 여러 방식으로 만나고 전도하며 목회를 하고 있는데요. 확실히 신자들과 비신자들을 목회하는 것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성경공부를 하러 모임을 하면요. 목사님이 옆에 있건 없건 그냥 자기 얘기를 하면서 잡담을 나눈답니다. 그렇게 막 이 얘기 저 얘기 잡담을 하다가 간식이 떨어진다던지 화제거리가 떨어지면 그제서야 목사님 얘기를 듣는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2시간 교육인데 1시간 30분을 잡답하다가 30분 교육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절대로 중간에 끊지 않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보통 교회에서 그렇게 잡담을 많이하기 어렵잖아요. 그렇게 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정말 잡담보다 교육에 더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강신욱 목사님은 낮은울타리교회로 현재까지 비신자들을 만나 목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분의 이야기를 듣고서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우리가 교회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었나하고 말이지요. 요즘에 교회는 처음 하나님을 믿는 사람보다 전부터 믿었던 사람들이 수평이동한다고 해요. 새로운 신자들 이른바 비신자들이 교회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지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울타리를 높게 쌓아서 문턱을 너무 높여 놓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것이 어쩌면 교회 안에 있는 잘못된 권위의식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본래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은 계급이 아니 잖아요. 그런데 실상 우리는 이 직분을 교회 내의 계급처럼 여길때가 많이 있죠. 그러다보니 때로는 어떤 격이나 형식에 매여서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높은 담장을 쳐버린 것은 아닌가 해요. 진정한 권위는 어떤 직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이 교훈하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지요. 우리가 제도와 형식과 관습에 얽매여서 하나님의 권위는 잃어버리고 사람의 권위를 세우는 것에 힘썼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돼요. 그러면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권위를 따르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못 쌓아버린 높은 담을 낮추고 허무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권위를 따르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세워둔 높은 담장을 낮추어서고요.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진실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