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과부 - 믿음, 헌신으로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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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가복음 12:41-44(신약 77쪽)
설교제목 : 가난한 과부 - 믿음, 헌신으로 살기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이야기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때때로 이 이야기는 헌금에 관한 이야기로 오해되곤 합니다. 다시 말해,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헌금으로 바쳐서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헌금을 아끼지 말고 잘 해야한다는 식의 이야기로 말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헌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이야기의 초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제가 앞서 나온 이야기를 생략했는데요. 40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서기관’입니다. 율법에 능통한 자들로써 ‘종교지도자’입니다. 다시 말해, 가난한 과부는 헌금을 할 것이 아니라 돌봄을 받아야 할 대상임입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 비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거기에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비록 보호받아야할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하는 지경에 이렀지만,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는 두렙 돈 또는 한 고드란트를 헌금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돈으로 약 1,000원 혹은 그보다 더 적은 금액입니다. 당시 헌금을 한 사람 중에서 가장 적은 돈을 헌금하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이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신 것은 이 과부의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기까지는 많이 들어보신 얘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교훈이 숨겨져 있습니다. 앞선 35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와 다윗의 자손에 관하여 가르치시며 논쟁을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는 다윗이 후손이 아니라 다윗보다 높으신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그리스도는 예수님이시고요.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내어주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과도 같습니다. 그의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께 내어 놓음으로 생명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펴본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야기는 이러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종교적인 의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으로 그분께 헌신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이 좋다는 것이 종교적인 열심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가령,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거룩하고 열심있는 신앙생활을 하느냐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그에 따른 헌신이 없다면요.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내 열심을 통해 나는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헌금을 한 사람들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서기관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에게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에 비해 약하고 많이 부족해 보이지만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린 가난한 과부의 헌신에 칭찬하십니다.
인도네시아에서 30년 넘게 선교사역을 하고 계신 최원금 이현주 선교사님 부부가 있습니다. 처음에 이분들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한인교회에 담임목회자로 청빙을 받아서 갔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현지의 요청으로 인도네시아인들을 위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폐쇄된 기차역에서 300명의 노숙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요. 그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시작한 것을 계기로 한인교회를 사임하고요. 인도네시아의 빈민들의 급식사역을 30년째해오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인도네시아 빈민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도 설립해서 운영중에 있는데요.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무렵에는 100인분의 도시락을 만들어서 나눠주는 일을 했습니다. 한인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만 해도 사례비를 받고 했으니 괜찮았는데요. 하나님께서 급식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믿음으로 결단하고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급식 도시락을 받지 못해서 싸움이 일어나는 상황을 보고 두려웠던 적도 있고요.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후원자를 붙여주셨고 현재는 기아대책에 소속되어서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대신할 사람이 없어 거의 30년 동안 쉬지도 못하고 사역에 매진하다보니까요. 여러 고충들이 있는데요. 사역에 열중하느라 두 아들을 소홀히 방치하기도 했답니다. 두 아들이 어린 시절에 인스턴트 음식만 먹어서인지, 아토피로 또 영양부족 때문인지 살도 급격히 빠지는 증상으로 어려움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 두 선교사님도 지병을 안고 살아가는데요. 남편 선교사님은 빈민사역의 여파인지 중금속 중독을 알고 있고요. 아내 선교사님은 위에 종양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할 사람이 없어 제대로 몸을 돌보지 못하고 계속 사역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선교사님 본인들에게도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있지만요. 여전히 사역에 매진 하고 있습니다. 잠깐 한국에 들어와서도 빨리 인도네시아로 복귀하여서 앞으로의 사역을 이어갈 생각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도 있고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하나님께서 나머지 것들에 관해서는 책임질 것을 믿으며 사역에 충성 봉사하고 있는데요. 사역이 마냥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타국에서 빈민들을 섬기며 봉사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함으로 이 사역을 계속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분들을 포함해서요.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저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그 사역에 그렇게 열정적일 수 있을까? 더욱이 그것을 전혀 고생이라 여기지도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사역할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간증을 하시는 선교사님들의 표정이 대부분은 밝다는 것입니다. 남들이보면 ‘미쳤다’고 ‘왜 사서 고생이냐’고 할 일을 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밝은 표정으로 기쁘게 자신의 사역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일임을 자부할 수 있을 때 그와 같은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요사이에 그런 마음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요. 담임목사님과 청년들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데요. 지금은 그 모임의 1기가 마친 상태에요. 6번 만나기로 했고 지난주까지 6번을 만났어요. 이제 다시 2기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 모임이 매주 목요일 저녁에 있었어요. 모임은 오후 6시 55분에 모여서 보통 9시까지 하고 이후에 야식겸 식탁교제를 하고나면, 보통 10시가 넘고요. 제가 차량운행도 하고 뒷정리하고 집에 들어가면 11시 가까이 돼요. 저는 목요일 새벽에 차량운행을 담당하는데요. 차량운행을 할 때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하고 하니깐 사실은 목요일은 다른 날에 비해서 잠도 부족하고 피곤한 상태에요. 그런데 목요일 청년 모임이 늦게까지 하면 당연히 지치고 피곤해야 하잖아요. 제가 체력도 별로 안 좋거든요. 하나도 안 피곤하다면 거짓말이지만요. 신기하게도 생각보다 견딜만했고요. 오히려 그 모임을 통해서 좀더 활력을 얻게 되곤 했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이전까지 제가 청년부 모임을 하면서는 청년들이 그 모임에 집중을 한다는 느낌이 덜했는데요. 사실 그건 청년들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제가 청년들과 어떤 모임을 이뤄가야할지에 관해서 좀 막연하고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제가 알고 있는 성경지식을 전하는 것이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를 돕지 못하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담임목사님과 모임을 하면서요. 이 모임이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아마도 그것이 저에게 늦게까지 모임을 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선교사님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게 되는 것, 또 오늘 성경 이야기에서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께 헌신하게 되는 것이 이와 같은 마음은 아닐까 합니다. 내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진 마음으로 이 일이 꼭 필요하고 정말로 의미있는 일임을 확신함으로써요. 기꺼이 자신의 희생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오늘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