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1) 1장 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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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 감사합니다. 오늘 주께서 우리 영혼의 만족함을 주실 줄 믿습니다. 1992년도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도 다들 기억을 하실 것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 이장림이라는 사람을 주축으로 "다미선교회"라는 사이비 단체를 만들어서 92년 10월 28일에 세계에 종말이 도래할 것이다. 그래서 그 날에 휴거(携擧), 예수가 세상에 왔을 때 신도들이 하늘로 들림 받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종말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런 종말론은 예수님 이후로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종말론에 심취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어떤 철도공무원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퇴직금을 헌납하고, 두 자녀를 데리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합정동에서는 당시 30대였던 주부가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아들을 데리고 경남지역에서 선교를 하겠다고 가출했습니다. 부산에서도 부동산을 팔아서 수 억 원의 돈을 종말론 교회에 헌금을 했습니다. 대구에서도 전세금을 빼서 헌금하고 교회에서 살면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1월에 전라남도 강진군에서는 여고생이 부모가 종말론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음독자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면 수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왔습니다. 삶을 파괴하고, 가정을 망가뜨리고, 건전한 교회와 목사들까지도 도매금으로 넘겨버리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고등학생이 얼마나 힘듭니까? 더군다나 제가 대학 시험을 볼 때는 입시제도가 바뀌는 시점이었습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 바뀌고 첫 번째로 시험을 봐야하는 수능 1세대였습니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등학교에 다닐 때, 연일 뉴스에서 다미선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런 사이비 집단이 다 있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이비인줄 다 알고 있고, 믿지도 않고 있는데, 공부하다가 힘들고 지칠 때는 마음속에서 "저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조금 마음이 끌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어떨 때는 "주님이 저 날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생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10월 28일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검찰에서는 이장림 목사를 사기 및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습니다. 검찰에서 조사를 해보니까 그 당시 20년 전에 6억 5천만원을 갈취했고, 개인적으로 34억을 빼돌려서 사용한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희대의 사기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10월 28일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 날을 기다리던 신도들은 담담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M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어요. 예수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고 오실 예수님 기다렸는데 에러가 났으면 또 오실 예수님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하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에 사람들이 넘어가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삶을 포기하고 매달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을 "손봉호"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기독교가 그 동안 너무 귀족화되고, 세속화 되다보니까 돈 없고 지위 낮은 사람들이 발붙이고 위로를 받기가 어렵게 된 것이 시한부종말론 사건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종말론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성경이 있습니다. 어느 성경입니까?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입니다. 여러분들은 요한계시록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가슴이 답답해집니까? 건드려서는 안 될 성경입니까? 무섭습니까? 이해할 수 없나요? 그렇습니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도 역시 누구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되고 배워야 되고 공부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서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알면 불안할 필요가 없어요. 일주일 후를 알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당장 내일 일어날 일만 알아도 큰돈을 벌수 있는 것이 오늘의 세상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점집을 찾고 앞으로의 인생을 예측하려고 미리 보려고 하는 그런 마음,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하면 이것이 종말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선입관이 생기는 거예요.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것이 일어난다면 언제 일어날 것인가? 이런 생각들을 이단들이 교묘하게 이용을 하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은 뭘 강조합니까? "그 때"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 시간"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렇게 특정한 시간과 때를 강조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현재를 살아가는 이 순간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현실은 다 무의미하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도 필요 없다!" "돈 벌이도 안 해도 된다!"는 논리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되니까 어디로 갑니까? 다니던 직장, 학교 그만 두고 가지고 있는 것 다 팔아서 산 속에 들어가서 소복을 입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삶을 자연스럽게 놓아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주 망하는 거죠? 이런 일들이 한국사회에 구석구석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이단인지, 삼단인지는 관심 없어요. 그냥 기독교가 미친 종교로 보이는 것입니다. 다 같은 교회로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시록을 가지고 그 동안 많은 사이비집단에서 말했던 기억들을 지워버리고, 일단 계시록에 대해서 어렵다는 편견을 버려야 됩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존 칼빈'이라고 하는 위대한 신학자가 있는데, 특히 우리 장로교에서는 더욱 '칼빈'의 사상을 이어받고 있는데요. 칼빈이 26세에 "기독교강요"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26세에 기독교강요라는 책을 읽지도 못하죠? 저는 26세에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칼빈은 26세에 그렇게 두꺼운 책, 3권까지 있는데, 그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이 꽃을 피우고 완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칼빈'이 신구약의 모든 성경을 주석을 했는데, 딱 하나 '요한계시록'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안했을까요? 그렇게 똑똑한 분이 왜 안했을까요? 어려워서 안 했을까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칼빈'이 워낙 겸손해서 손을 안 댄 것이다." "계시록은 너무나 어려워서 해석이 안 된 것이다."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칼빈이 활동하던 1500년대에도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수많은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학자들마다 무수한 말을 쏟아내면서 자기 말만 하며, 옳다고 주장을 하고 큰 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칼빈까지도 거기에 가세를 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시끄러워지겠죠? 그렇게 시끄러워질 것 같으니까 손을 안 댄 것입니다. 그 만큼 계시록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 책이 되어 버렸고 최근까지도 그렇게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최근에 계시록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복음주의적으로 해석을 하고, 균형이 잡힌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심판이고 멸망이고 음산하고 무서운 책이 아니라, 이 안에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과 보석과도 같은 은혜가 감춰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성경의 다른 말씀들을 통해서 계시록의 말씀을 보면, 이 말씀은 혼란을 주는 말씀도 아니고 더더욱 모든 삶을 다 내팽개치고 산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말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소망을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1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뭐라고 운을 떼면서 계시록이 시작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가 무엇입니까? 계시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진리나 신비가 신 등의 초월자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비밀은 뭐예요? "정보를 일정한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 공유하는 것을 말하며, 되도록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알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어 공개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계시와 비밀의 차이"는 뭡니까? 1절에서 뭐라고 합니까? 계시를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여기서 그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시고 끝냈습니까? 주면 끝나요? 주면 끝나는 것은 '비밀'입니다. 보여주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은 비밀이에요. 하지만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를 보냈습니다. 그렇죠? 이해가 되시죠? 천사를 보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계시는 보여준다고 해서 알아요? 몰라요? 모릅니다. 그 계시를 주신 하나님이 알게 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열어주셔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의 특성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시작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계시록은 쉽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기 바랍니다. 아멘이십니까? 이전에 계시록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편견과 지식을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바랍니다. 복잡한 환상과 상징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묵시문학의 형식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의 정황이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수요 예배라고 해서 교회에 나와서 앉아있을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철권통치 아래에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민주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걸리면 죽는 거예요. 죽지는 않더라도 죽는 것보다 더 힘들게 살아야 했습니다. 황제를 숭배하지 않으면 국가가 조직적으로 차별과 핍박을 하는 거예요. 황제숭배를 하면 장사도 자유롭게 하고 돈도 잘 벌 수 있는데, 황제숭배를 거부하면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불합리한 일을 당해야 하고 육체적 고통까지도 감당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런 기간이 무려 3백년이 이어져 간다고 하면 단지 신앙 하나만으로 버틸 수 있겠습니까?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다는 이유로 전기와 가스를 끊고, 수돗물을 1리터에 만원씩 내고 먹으라고 하면 견딜 수 있나요? 그렇게 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런 감당하기 힘든 일을 당하고 있는 당시의 성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붙잡을 수 있는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장래에 도래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표현한 문학의 형식이 묵시문학입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은 계시록을 볼 때는 이게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상징 언어와 그림 언어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게 되니까, 신천지가 천국의 입장권 갯수라고 떠들고 있는 144,000명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이것도 상징입니다. 그런 표현이 묵시 문학입니다. 그래서 묵시문학의 형태로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는 대부분 어떤 시절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기의 고통 속에 있을 때 쓰여 졌습니다.
포로생활을 오래하고 있는데 삶은 변화가 없습니다. 점점 짓누르는 삶의 고통 때문에 좌절하고 포기할 쯤에... 그래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을 통해서 묵시문학의 형태인 말씀을 주십니다. 그들로 하여금 지치지 않도록... 관심을 끌게 하시고, 새 힘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장래 일어날 일들을 상징적인 언어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책이 "다니엘, 스가랴, 에스겔"과 같은 책들입니다. 이 책들은 전부 뭐가 나와요? 환상들이 많이 나옵니다. "섬광... 구름 등"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듯한 상징들이 많이 나와요. 이런 책들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와 같은 묵시문학의 대표적 성경이 기록된 배경도 언제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독한 고난 가운데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민족 시인들이 가슴에 맺힌 울분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많은 시들이 있지만, '이상화 시인'"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가 있어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빼앗긴 들"이 상징하는 것이 뭡니까? 이 조국입니다. 일제가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고대하는 "봄"은 뭘 상징합니까? "조국의 독립"입니다. 반일(反日) 민족의식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 시안에 "비탄과 허무, 저항과 애탄"이 깔려 있어요. 대놓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은 느낌이 옵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감동이 오는 거예요. 비록 나라는 빼앗겨 얼어붙어 있을망정, 봄이 되면 민족혼이 담긴 국토, 즉 조국의 대자연은 우리를 일깨워준다는 것입니다. 국토는 일시적으로 빼앗겼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봄은 빼앗길 수 없다는 몸부림, 즉 민족의 비애와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는 거예요.
성경의 "묵시문학"이 이와 비슷한 것입니다.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고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통치의 주권이... 나를 억압하는 것들이... 정치, 경제, 문화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주관자는 "여전히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2절을 보면 뭐라고 합니까?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미래를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왜 알아듣기 쉽게 이해하기 쉽게 서술로 하지 않고 그림으로 보여주셨을까? "섬광과 그림, 일곱별과 금 촛대"를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성으로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은 너무 황홀해서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거예요. 믿으십니까? 추상화를 보세요. 그냥 물감타서 뿌려놓은 듯한 그림인데, "피카소"라고 하는 화가의 그림은 가격이 몇 십억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림은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그림에 담고 있는 의미가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림을 잘 아는 해설가들은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단지 그림만 보고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피카소의 삶을 알아야 되고.. 피카소의 초기 그림과 중기 그림을 알아야 되고.. 피카소의 사생활도 알아야 됩니다. 그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서 해설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문자들로만 해석을 하면, 이상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계시록에 등장하는 환상과 그림 언어들은 요한에게만 보여주셨던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의 다니엘과 에스겔, 아모스와 같은 선지자들에게도 이미 보여주신 그림들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해석하고 이해를 할 때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들여다봐야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 계시록을 볼 때는 구약성경을 많이 찾아 볼 것입니다. 구약에서 이미 다 보여주신 것들입니다.
이처럼 복잡한 환상과 상징, 묵시적 표현들이 나오지만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3가지입니다. 먼저 세상에 종말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오게 되는 종말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종말의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종말이 온다고 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종말이 와야 그 다음에 우리가 고대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입니다. 종말의 이유를 잘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만이 들어가는 나라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면 종말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생기게 됩니다. 이 종말은 언제부터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아주 기초적인 질문이지만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 누구여야 "종말"이 말이 되고 앞뒤가 맞는 거죠? 하나님의 아들이어야 종말이 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을 "기독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종말을 약속한 그 분이 이 땅에서 승천하시면서 남겨놓은 것이 무엇입니까? 뭘 남겼습니까? 제자들을 남겼어요? 그렇죠... 12명의 제자, 사도들을 남겨서 뭘 만드셨죠? 교회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12사도들을 통해서 교회가 생겼어요. 가룟 유다의 자리에 '맛디아'가 들어와서 사도가 되었지만 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12'이라는 숫자가 중요합니다.
12사도를 통해서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믿으시죠? 이 교회의 머리가 누굽니까? 그렇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교회의 머릿돌이 되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이 땅의 교회를 향해서 주시는 귀한 메시지가 계시록에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시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엄청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종말론"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기독론"이 해결이 되고, 거기에 더불어서 "교회론"까지 다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시작하는 첫 설명처럼, 말씀은 계시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해서 다 알게되고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알 수 있죠?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알게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어지고 알게 된 말씀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3절의 말씀처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성령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종들을 통해서 주시는 모든 말씀이 밝히 보이고, 그 말씀이 우리 삶의 등불이 되고 천국의 소망을 더욱 더 굳건하게 만들 수 있는 생명의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계시록의 결론 부분을 살짝 보고 마치겠습니다. 21장...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제 그 날이 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우리는 종말을 생각할 때 종말은 부정적이고, 가능하면 늦게 오는 것이 좋겠다는 소극적인 태도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입고 있는 육신, 이 육신을 죽음이라는 것으로 끝을 내지 않으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말"은 겨우 구원받고 끝나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인 개념으로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지옥에 안 가는 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7절에서 말합니다.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아멘!" 그래서 이 말씀을 붙잡고 오늘도 살아가는 하루 가운데 예수님을 고대하며, "마라나타!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고백하면서 승리하는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감사합니다.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뜻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호흡하며 살지만 오늘도 우리가 바라보면 사모하는 나라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께서 오시는 그 날을 고대하며 살게 하시고 땅의 것이 아닌 위엣 것을 바라보면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축도>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오늘 선포된 말씀을 붙잡고 세상의 삶 가운데 승리하기를 원하는 주의 백성들 머리 위에서 저들의 가정과 사업장과 직장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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