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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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28:1-9(구약 820쪽)
설교제목 : 도움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십시오.
다윗의 시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도움을 구하는 시인데요. 시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오늘 시편 1절 하반절인데요. 제가 다시 읽어드릴게요.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쉽게 말하면, 시인은 자신의 처지가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을 놓고 시인은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고 있어요.
이렇게 오늘 시편에 나타난 도움에 대한 주제를 묵상하다가요.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어요. 어쩌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것이요. 그래서 우리는 한편으로 도움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거나 앞으로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아리송한 이야기로 들리실 텐데요. 한번 차근차근 풀어서 말씀을 나누도록 하지요.
제가 예전에 약 한 달 정도 애를 써서 어렵게 일자리를 얻은 적이 있었는데요. 생각해보니, 그렇게 힘들게 얻은 일자리는 지금껏 없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저는 한국이 아니라 호주에 있었는데요. 제가 호주에 갈 때 ‘워킹홀리데이비자’라는 것을 받아서 갔는데요. 이것이 있으면 호주에서 1년 동안은 일하면서 머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일자리를 구하는데요. 영어실력이 많이 부족하니깐, 일자리 얻기 어려운 거예요. 그래도 같이 타향살이하는 한국 분들을 곁에 있다 보니 여러 도움을 얻을 수 있었는데요. 영어실력이 좀 부족해도, 좋은 조건으로 일할 수 있는 어떤 공장을 소개받았는데요. 거기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자주 교체가 되기도 해서, 버티다보면, 꼭 자리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곳을 매일 찾아가서 사장님한테 인사하고, 일자리 없냐고 물어보기를 반복했어요. 중요한 건 이걸 영어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거긴 호주고 사장님이 호주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영어가 유창하면 모르겠는데, 몇 개의 문장들을 외워서 어설픈 말들을 쏟아놓고 오기를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사실은 그곳 사장님도 저 같은 한국인들이 종종 오니깐,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계속 간을 보는 거예요. 그리고 혹시라도 영어를 좀 더 잘하는 친구가 오면, 그 친구에게 먼저 기회를 주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 같았으면, 그냥 자리 없다고하면, 알겠다고 하고 다른 곳으로 찾으면 될 것을 다른 방법이 마땅히 없으니까, 매일 같이 출근해서 얼굴도장 찍으면서 일자리 달라고 하는 제가 스스로를 얼마나 처량하게 느꼈겠어요.
이를 놓고 누군가에 도움을 구한다는 것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고요. 그것은 한편으로 처량함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야 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상대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하잖아요. 그것은 어쩌면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고요. 자신을 처량하게 만드는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와 같이 자신을 낮출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도움을 구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당연히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관련해서, 한 가지 신대원 다닐 때, 배웠던 이야기가 하나 기억이 나는데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들 때 하와를 아담의 돕는 베필로 만드셨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어쩌면, 남자보다 여성이 더 우월한 존재로 창조되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돕는 자는 도움을 받는 자 보다 우월한 존재이니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도움을 구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상대를 높이는 것이라고요.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결국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통해 시작이 되어질텐데요. 그것은 달리보자면, 자신을 낮추는 것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을 온전히 낮추지 못하면, 우리는 도움을 구할 수도 또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도 없다는 것이지요.
한편 저는 자존심 버리고 한 달을 매달린 끝에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어요. 고생한 보람이 있었던 것은 조건이 여러 가지로 좋았어요. 사실 처음 호주에 도착해서 시작한 일은 한인타운 있는 곳이었어요. 아무래도 영어는 장벽이 되다보니, 일단 급한데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고요. 그곳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어요. 주방에서 이른바 잡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는데요.
그때는 당시 호주의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받아야 했어요. 그런데, 후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약 한 달을 고생한 끝에 얻은 일자리는 그에 비할 바 못됐죠. 시급도 가장 높았고, 그 외에 연금을 비롯한 휴일수당 등의 복지혜택도 있었어요. 사실 타국에서 말도 잘 못하는 사람이 현지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를 놓고 생각하는데요. 도움을 구할 때는 상대가 우리에게 반드시 그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할 거예요. 제가 한 달을 고생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곳 사장님이 분명 저를 고용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죠. 아마 믿음이 없었다면, 의심이 들어서는 순간에는 더 이상 그 일을 반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이 믿음이라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우리가 119에 신고를 하죠. 응급상황에 대해 119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 악기가 고장 나면 악기점을 가지, 시장에 가지는 않지요.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도움을 확실해 해결해 줄 이를 찾는다는 거예요. 달리 말하면, 오직 그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하나님만을 우리의 도움으로 믿고 고백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 우리는 하나님만 믿는다는 것이지요. 다른 어떤 것을 믿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있을 수 있어요. 놀랍게도 시장에서 악기를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여러 신들 중의 하나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요. 유일하신 신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대체 불가능한 분이시니까요.
오늘 시편에 보면 이러한 구절이 나와요. 8절과 9절인데요.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방금 읽은 구절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이 ‘그들의 힘’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 ‘그들의 목자’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하나님은 나의 도움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도움이심을 말하는 것인데요. 바로 앞인 7절까지만 해도 시인 계속해서 나를 도와달라는 것으로 하나님을 ‘나의 도움’으로 나타내고 있었는데요. 8절과 9절에 이르러서는 시인은 나의 도움을 넘어서 우리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확장해서 말하는 것을 보게 돼요.
저를 이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거예요. 결국 나에게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그것을 공유하고 자랑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지요. 제가 호주에서 어렵게 얻은 일자리는요. 저처럼 한국에서 와서 고생하는 분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어요. 어차피 제가 여기서 영영 있을 것도 아니고요. 되도록이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도움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요. 그래서, 저는 직접적으로 그 일을 하진 못했지만, 그곳에서 종종 한국인들 사이에 좋은 일자리들이 있으면, 일종에 물려주는 경우가 생기곤 했었어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과정이 저는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좀 해보게 되는데요. 아마도 그것의 시작은 자기를 한계를 발견함으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과정을 통해 이뤄졌겠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도움이신 하나님을 경험했을 것이고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됐을 것이고요.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그 기쁨을 결국 사랑하는 이들에게 공유하고픈 더 나아가서 세상에 자랑하고픈 마음이 생기게 될 거예요.
오늘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시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시지요. 저는 우리 성도님들께서 이와 같은 하나님을 만나셨기를 또 만나게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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