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21:20-28-주일(18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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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종말, 말세의 시간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긴 기간입니다. 말세가 긴 이유는 이 기간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면 세상은 반드시 그것을 거부하고 공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세에 세상으로부터 성도들이 핍박을 받을 것이 예고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뿐 아니라 심지어는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까지 하나님 나라 확장을 거부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하십니다.
20-28절은 예루살렘이 당할 환난과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예언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환난과 인자의 오심(20-28절) (20)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빌라도 총독 이후에 이스라엘에 온 총독들은 실정(失政)을 거듭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급기야 66년경에 전국적인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AD 67년에 네로 황제는 이스라엘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장군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강한 저항과 험한 지형 구조로 인해서 예루살렘을 정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해서 굶기는 아사(餓死) 작전을 썼습니다. 베시파시아누스에 이어서 온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서 예루살렘은 70년에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같은 엄청난 일을 겪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난 후에도 일부의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도망가서 끝까지 항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강한 로마군에 의해서 대부분 진압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마사다 요새’였습니다. 이것은 헤롯대왕이 염해(사해) 서쪽에 세운 성이었는데 절벽에 3층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거의 공격이 불가능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피했던 사람들은 3년을 버텼지만, 거기에서 항전의 마침표를 찍어야 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유대인들은 1948년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까지 무려 1,875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전 세계를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이 말씀은 ‘임신을 하는 것과 출산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로마 군인을 통해서 모든 백성에게 동일하게 임합니다. 그래서 그 화를 면하고 싶으면 산으로 도망가고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피난을 가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불리한 사람 중에 한 부류가 임신한 여인들과 젖먹이를 가진 여인들입니다. 빨리 도망을 가야 조금이라도 화를 덜 당할 상황에서 그런 빨리 도망가기 힘든 사람들이 겪게 될 고난을 안타까워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징계의 말씀이 아니라 따뜻한 배려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시던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5-27)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당시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이 말씀의 진의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비록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평안한 때였습니다. 불과 40년 후에 예루살렘이 무너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다시 오심이라니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을 보면 이 세상이 망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고, 그때에는 주님의 재림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환란과 죽음과 같은 단어가 빨리 와 닿지 않다가, 아주 친한 친구나 직장의 연배가 비슷한 동료가 갑자기 죽었다는 부고를 들으면, 종말이라는 말이 굉장히 가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오늘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엄청난 사건이 다가올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우리 삶의 상황이 우리를 짓누를 때, 또 주위에서 엄청난 사건과 사고들이 일어날 때,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 그런 때에는 절망해야 할 것 같고, 좌절해야 할 것 같고,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머리를 들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소망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 ‘주님의 속량-주님의 건져주심’을 경험하셨습니까? 인생이 아주 잘나갈 때였습니까?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가정이 아주 평안할 때였습니까? 더 이상 내 능력과 지혜로는 머리를 들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를 손으로 잡으시고, 얼굴을 들게 하셔서, 당신의 눈과 우리의 눈을 맞추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 숨을 쉬게 되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를 가장 잘 대비하며 사는 것은 주님 앞에서 ‘홀로와 더불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해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해 주시는 주님을 힘으로 삼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그 누구도 예루살렘과 성전의 무너짐에 대해서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의 미래를 보시며 안타까워하시고, 종말을 대비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단 한 번도 힘이 모자라서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되거나 멸망 당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음과 우상숭배의 결과로 그런 국난을 맞았음을 압니다. 하나님 우리가 평생 쌓아온 삶의 성과 우리의 인생 성전도 언젠가는 무너질 때가 있음을 기억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날을 내가 정할 수도 없음을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각자의 삶이라는 성과 인생 성전이 하나님을 외면하다가 함락되는 일이 없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과 다른 것을 겸하여 섬기다가 무너지는 일도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짓누르는 것 같아도 우리의 머리를 들게 해 주시는 주님 앞에서 ‘홀로와 더불어’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코로나19도 이기고, 우리를 함몰시키려는 것으로부터도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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