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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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1:1–6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에 감옥에 있었을 때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때가 61-62년경인데,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한 노예 오네시모를 골로새(혹은 그 인근)에 살고 있던 빌레몬이라는 주인에게 돌려보낸 일이 있었습니다.이 미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동역자인 두기고(골 4:7-9) 편에 빌레몬서와 오네시모를 보냈고, 그 참에 골로새의 모든 교회에 그 곳에 등장하기 시작한 거짓 가르침에 대하여 경고하는 골로새서를 썼습니다.
이들이 로마에서 골로새로 가기 위해서는 에베소를 통과 했을 것으로 보는데,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 빌레몬이 거주하고 있었거나 그 주변 지역이었던 골로새에 편지를 쓴 것처럼, 한때 복음을 전했던 에베소를 이들이 지나가니까 에베소 교회에도 편지를 써서 두기고 편에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서 라는 ‘ ’ 이름의 이 편지는 원래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을 주요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1절에 나와 있는 ‘에베소에 있는’이라는 표현이 없고, 에베소에 있는 이라는 표현은 후대에 추가가 된 부분입니다. 또 다른 몇 가지 특성들이 있어서 에베소서는 에베소에서 골로새로 가는 여행에서 두기고가 지나갔을 지역들을 포함하는 교회들을 위해 썼으리라는, 교회들을 위한 회람용 서신으로 씌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다른 서신들과 달리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의 문제들을 다루지 않습니다.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에서 다뤘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여러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알려주기 위해 바울은 교회에 있는 성도,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당시 여러 교회의 성도들에게 어떠한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면 이 글을 읽는 오늘날의 교회 성도들도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와 그 뜻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는 대상인 것이고, 동일하게 그 말씀을 듣고 이해해서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주는 말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방향성 안에서 에베소서 말씀을 보기를 원하는데요, 최근에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사람을 본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잠깐 떠올려 보시겠습니까?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얼굴에 감격과 기쁨과 같은 감동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던 것을 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가 어떻든 간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대해 느끼는 감동과 감격이 그 옆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글을 곡조를 담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찬양이라면, 바울은 지금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면서 글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중입니다. 보통 내가 잘 알고 지내고 있고, 신앙으로 잘 통하는 사람에게 글을 쓴다고 한다면 잠깐의 인사를 나누고 본론부터 이야기를 하지, 본론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자기가 지금 너무 기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밝히지는 않지 않습니까?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이제는 성도가 되었고, 바울은 그들과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나눌만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상황을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거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도 될 만큼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공동체가 없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내면의 상태를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3절에서 6절까지를 보면,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시냐면.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라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지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데, 어떤 근거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셨던 분이십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 말미를 보면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현재형처럼 번역을 했지만 헬라어 성경을 보면 ‘우리에게 주셨던’이라고 이미 단 한번으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의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령한 . 복은 영적이면서 성령과 관련이 있는 복을 말하는데요, 모든 영적인 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영적인 복의 실체는 아직 모르겠지만 글의 뉘앙스를 보면 영적인 복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영적인 복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미 주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요즘 맥도날드에서 음식을 사면 스티커가 나옵니다. 스티커를 다 모으면 거기에 해당되는 경품들을 받게 되는 건데, 경품들 중에서 유독 suv차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집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사주면서, 제가 아이들을 재밌게 해주려고, 차에 해당되는 스티커를 다 모으면 진짜 차를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주니까 아이들이 난리가 났었습니다.
햄버거를 사먹고 차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에 소리를 지르면서 햄버거를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차가 자기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는 실질적으로 알지는 못하는 것이나, 그 선물이 자기들에게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만약 꿈에서나 받게 될 것 같은 커다란 선물을 정말로 현실 안에서 받게 된다고 한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너무 기뻐서 기쁨의 소리라도 지르지 않겠습니까? 이런 선물을 누군가가 나에게 줬다고 한다면, 그 선물을 준 사람에게는 평생 고마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그것을 만끽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는 의미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인데, 이런 영적인 복을 모두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복을 실제로 이미 주셨기 때문에 받은 자는 이 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가상의 복을 주신 게 아니라 실체가 있는 복을 주셨기 때문에 이 복이 무엇인지 받는 사람에게는 발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복을 발견하는 자, 곧 깨닫는 자는 이 영적인 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놀라서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복을 주신 분, 곧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셨던 이 놀라운 복의 실체를 깨달았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찬송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이, 그 분이 주셨다고 하는 이 영적인 복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4, 5절은 두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을 먼저 보면 우리를 택하사와 5절을 보면 우리를 예정하사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기도 전에 우리를 택하셨던 것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우리를 예정하신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양자로 삼기 위해서 우리를 예정하셨던 것이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이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4절에 우리를 택하사와 5절에 우리를 예정하사도 3절에서 우리에게 주시되와 마찬가지로 현재형으로 쓰여 있어서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이루신 일인 것에 대한 의미를 쉽게 놓칠 수 있습니다. 이 두 문장도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일이라는 의미에서 헬라어 성경에서는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기억하고 놓치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오늘 우리가 믿는 것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모든 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 . 믿음이 있기는 있는데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물어봤을 때 그 근거가 불분명하거나, 없다고 한다면 확신에 거한 믿음을 가지기란 어렵습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모든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일을 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만큼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듣고 행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세상에서도 믿음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근거가 없이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뭔가를 믿고 있는데, 무얼 믿고 있는가 물어보면 그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가 없는데도 믿는 믿음을 미신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무조건 믿는 경우입니다. 그 사람을 신뢰하든, 어떤 신을 신뢰하든 그냥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맹신이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근거가 하나만 있기 때문에 하나만 믿으면 되는데, 두 개도 믿고, 세게도 믿고 계속 더해서 믿고 더 세게 믿고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믿음은 광신입니다.
아무 근거도 없고 무조건 믿고 더 믿고 더 세게 믿고 이런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되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은 근거가 있어서 그 근거를 토대로 확신을 가지고 믿습니다. 세상의 믿음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믿음이지요. 그래서 근거가 중요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믿어야 하기 때문에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 근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모든 일을 말합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어렵거나 피하고 싶은 것은 빼고,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다 알고 싶지는 않아서 몇 가지만 믿고 있고 있는 것에 충부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일을 다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만큼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반응까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입니다.
4,5절을 보면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려고 우리를 이미 예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 예정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해 놀라움이나, 기쁨이나, 감동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머리로 지적인 동의를 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인 것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정말로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면 하나님께 진실하게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태중에 있기도 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선택하셨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면 생각 할수록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고 하는 사실이 ‘신비로움’ 그 자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내가 우주의 기초가 놓여지기도 전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은 존재라고 하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생명이 잉태하는 것이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그런데 어머니의 뱃속에 생명이 잉태하는 것보다 그 생명이 태중에 있기 전보다, 우주의 기초가 놓여지기도 전에 하나님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신비 중의 신비가 아니지 않습니까? 신비 중의 신비가 바로 나, 우리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들입니까?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서 복음을 듣고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예정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삼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기로 예정하셨던 것 또한 신비중의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우리에게 이런 신비를 행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이 일에 놀라지 않을 수가 있으며, 우리를 신비로움 그 자체로 여기신 하나님께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창세전에 계획하시고 행하신 하나님께 놀라워하며, 우리를 위해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모든 일을 다 받아들이고 그 이루신 일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거저 주신 것이 은혜고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무엇이 은혜입니까? 6절에서 말하는 은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아무런 자격이 없는데도 거저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은혜의 내용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6절에서 ‘거저 주시는 바’는 우리에게 거저 주셨던 것으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던 것과 우리를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복을 우리에게 거저 주셨다는 겁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땅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고 한시적으로 받은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바로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이고, 이미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은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를 받아들이고 깨닫는다면,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에 대해서, 이 은혜의 영광에 대해서,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드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6절을 보면 우리에게 거저 주셨던 은혜라는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셨던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 거저 주셨던 이 은혜, 이 은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에 감격하며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이루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반응해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이렇게 인격적인 관계가 회복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미 주셨던 은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이 은혜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놀랍도록 나를 향해서, 우리를 향해서 기쁨을 가지고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심정까지 알게 되면서 하나님께 감격하고 하나님께 깊은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의 참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누구보다 그 선물을 준비하셨던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은혜를 거저 주신 하나님께 깊이 찬송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셨던 것과,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 우리를 예정하셨던 이 영적인 , 복, 이렇게 하늘에 속한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셨던 하나님께, 감동과 감격과 놀라움과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이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고통하고 있는 이 세상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결국 전쟁의 내면에는 남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자기중심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남보다, 옆 나라보다 더 힘을 가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불공평함과 억울함과 피흘림이 있습니다. 이 땅은 정의의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정의를 찾기 위해 진통하고 있습니다. 지진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기후변화로 인해 이 땅은 여전히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죄를 하나님께서 정의와 사랑으로 심판하시고 용서해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죄로 물든 세상에서 이 세상과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용서해주시도록, 이 땅을, 인간을, 모든 피조세계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어하고 고통하고 있는 교우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복음 전하고 있는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교회 되게 해주시고,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의 길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교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기억하며 하늘에 속한 영적인 복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개인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를 택하셨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로 예정하셨던 복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이 은혜를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저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고 . 하는 사실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 육신의 정욕과 성령을 따라가야 하는 길목에서 성령을 따라갈 수 있는 힘이 되게 하시고, 하늘에 속한, 오는 세대에 속한 이 놀라운 영적인 복을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이 영적인 복을 누려가며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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