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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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난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 왔고 겪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 어떤 고난이었습니까? 그 누구도 고난이나 환란을 좋아하거나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 군대에 가면 부대마다 붙어 있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네 어짜피 해야할 것이라면 즐기면서 하라는 것이지요. 제가 공수훈련을 받을 때 정말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리는 훈련, 착지하는 훈련만 3개월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해도 막상 강하하기 위해 강하장에 가면 겁도 나구요. 두렵기도합니다. 처음 강하는 기구에서 뛰어 내려요. 약 320m정도 올라갑니다. 올라가면 사람이 개미만하게 보여요. 그런데 여기까지 올라가서도 겁에 질리고 두려워서 못 뛰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냥 내려 옵니다. 예전에는 냅다 밀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양반 군대라 얌전히 내려옵니다. 그리고 내려와서는 혹독하게 얼차려 받지요. 그리고 또 태워 올라갑니다. 뛰어 내릴 때까지 올라 갔다 내려 오기를 반복해요.
그렇게 3번의 기본 강하를 하면 비로서 특공부대 마크인 독수리 날개를 왼쪽 가슴에 달아줍니다. 특공부대에 오면 예외가 없어요. 다 받아야 하는 훈련입니다. 이 훈련을 통과한 친구들의 눈빛이 달라요. 그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듯합니다. 아무나 하는 훈련이 아니거든요. 혹독한 훈련을 받고 난 이후의 결과가 자신의 가슴에 붙어 있거든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훈련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즐기라는 것입니다. 네 진장한 특공부대원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하십니까? 내가 겪어 왔던 그리고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무엇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본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고난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에서 고난이라는 단어가 무려 21번 등장합니다. 베드로전서를 통해 고난의 주제를 계속 다뤄 왔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당했을 고난의 정도를 가늠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심각한 고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목숨을 위협받는 일은 없잖아요. 이에 비해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모욕을 당하고 심지어 생명을 위협받고 죽임을 당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인생을 바친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고난을 받았습니까? 오늘 본문의 저자인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X자형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빌립과 바돌로매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바돌로매는 피부를 벗겨서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마태와 도마, 다대오 유다는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야고보는 돌에 맞고 목이 잘려 죽었구요. 시몬은 몸을 톱으로 잘라 죽였습니다. 제자들만 이런 고난과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니ㅏㅁ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고난에 처했었습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이렇게 고난을 당하고 처참한 죽음을 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내가 지금까지 겪어 온 고난,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이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었습니까?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정도의 고난은 아니지만 고난의 원인이 복음 때문입니까?
베드로 사도가 있었던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당하는 고난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고난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감내해야 할 삶의 방식이자 목적이 된다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고난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인가요? 오히려 행복과 편안함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라면 나도 좋고 전도하기도 좋을 텐데 말이지요. 전도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교회 나와. 그리스도인이 되면 고난이 삶의 방식이 된다. 이 말 들으면 누가 교회 나오려고 하겠어요. 그러나 이것이 서실입니다.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을 “불시험”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불시험을 하나님은 왜 하는가? “너희를 연단하려고”하신답니다.
금을 얻는 데는 불이 필요합니다. 금은 불에 많이 넣을수록 순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뜨거운 불에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순도가 높아지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가 걸어가는 삶의 모든 길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우리의 삶과 인격이 연단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득불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송한 말씀이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모두 진짜 찐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받는 고난이 고난이라고 말하는 모양만 성도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여러분들도 보셨을 것입니다. 시련의 시간, 불시험의 어두운 시간은 순금과 찌꺼기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시간입니다. 핍박이 올 때, 고난이 찾아올 때, 이 고난 앞에서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본문 13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 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천국 복음을 전하시면서 당하신 육체의 고난, 비난과 모욕등을 말합니다. 이런 육체의 고난, 지금 우리는 당하지 않습니다. 비난과 모욕도 그렇구요. 하지만 우리에게 오는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올바른 판단과 생각과 뜻을 살아갈 때 이 복음을 왜곡 시키는 것과의 싸움으로 오는 고난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없는 고난입니다. 복음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과 역경의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참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져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느 시기가 되면 태풍이 몰아칩니다. 크고 작은 태풍이 어김없이 찾아 오는 시기가 있지요. 그런데 태풍이 일년 내내 오지 않습니다. 그 시기가 있어요. 태풍이 지나간 다음의 하늘은 대기 중의 먼지가 가라 앉은 터라 얼마나 맑은 날씨가 되는지 모릅니다.
본문 14절에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가 주님의 영광에도 참여 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영광에도 참여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용하신 고난에 참여하면서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케 하는 거룩함을 덧입혀주는 도구가 되어집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 승천이 후 붙들고 살아갔던 말씀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붙들고 살아가야 할 말씀입니다.
본문 17-19절에서는 심판에 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말하는데, 심판의 시작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심판이라는 단어가 최후의 심판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심판은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이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현재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교회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 19:2,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거룩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정금 같이 만드시기 위해 불로 연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과정이자, 신자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먼저 거룩케 하시고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기 위해 심판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나의 그 어떤 것도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구원입니다. 본문 18절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겨우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바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그 시간에 다가 올 시간을 계획하라구요. 네 그렇습니다. 지나간 고난의 시간은 벌써 미래의 발판으로 다져졌습니다. 다시 꺼내고 싶어도 꺼낼 수 없구요. 바꾸고 싶어도 바꿔지지 않습니다. 네, 내가 불로 연단된 시간이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금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몇번 더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리를 만들어 자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에 합격할 때까지 말입니다.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우리를 포기 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지시고 이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다시 일어나 서시고 우리가 함께 앞을 바라보며 인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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