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1장 산소망, 말씀으로 거듭난, 썩지 아니한 자가 되었으니, 2장에서 본격적인 새 출발 1.작게 시작하라(갓난아기처럼, 신령한 젖) 2. 편한생활(선한 일이 편하고, 악독은 불편해야 한다) -고난도 편하게 생각해라. 예)요셉, 야곱, 악한 자들을 통해서도 '축복'하심. 편하게 여겨라. -결말을 안다. 그러나 결말을 믿지 못함에 문제 3. 예수공간으로 들어가라. 만회하려 하지 말고, 산돌이신 예수 안으로 들어가라. -바리세인의 외식- 그들의 우상숭배가 아닌, 외식, 예배를 책망히신 예수님
지혜로운 첫 걸음
베드로는 자신의 청중이 성장할 필요가 있는 미성숙한 신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그의 비교는 긍정적인 것이다. 칼빈(Calvin 2010, 63)의 진술이 이것을 잘 보여 준다: “여기서 젖은, 끊임없이 배우지만 결코 진리의 지식에 도달하지 못하는 초등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양육받기 위해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새 출생의 향기를 갖게 되는 생활 양식이다.”
베드로전서 2:1–3은 주변 사회 안에서의 “새로움”의 특징들(“der Neuheitscharakter”)을 사용하기까지 하면서 새로운 삶이 얼마나 독특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한다(Brox 1979, 93). 이것은 예수가 사랑을 특징으로 하는(예, 요 13:35) 그의 새로운 사회의 독특한 특징과 관련해서 가르쳤던 것과 공명한다. 이것은 신약에 국한되지 않는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도 사랑의 공동체를 특징으로 해야 했다(레 19:17–18).
베드로전서 2:4–10은 구약과의 매우 풍성한 상호본문성을 가지면서, 유대인 성경의 세 부분(토라, 시가서, 선지서) 모두에서 본문들을 폭넓게 가져온다. 베드로가 자신의 신학을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이 본문들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부주의하게 본문을 교정하지 않는다(어떤 구절을 그것의 더 넓은 본래 문맥에 대한 주의 없이 전용한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그는 그 인용들의 본래 문맥들을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구약의 신학적 주제들을 적절하게 반영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참고, Jobes 2006a, 332). 베드로는 스스로를 자기 앞에 있는 본문들의 주인으로 여겨 자신의 뜻에 맞추기 위해 그것들을 왜곡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베드로전서 1:10의 선지자들과 흡사한 무언가로 여기면서 구약이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를 보기 위해 부지런히 살핀다.
이 본문에서는 두 가지 정경적-신학적 주제가 드러난다. 첫째, 예수를 돌로 보는 개념은 앞서 언급된 특정 본문들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온다. 노먼 힐리어(Norman Hillyer 1971, 58)는 이 개념이 또한 구약 전체에 걸쳐 발견될 수 있는(예, 사 51:1; 단 2:34; 슥 12:3), 그리고 참된 신이든 거짓 신이든, 신을 가리키는 데 사용될 수도 있는(신 32:31) 반복되는 모티프에서 가져온다고 지적한다. 70인역은 종종 히브리어 단어 ‘쭈르’(tsur, “바위”)를 “하나님”으로 번역한다(Hillyer 1971, 58). 또한 이 주제는 신약 전체에 걸쳐 저자들이 메시아를 “돌”로 밝히면서 지속된다(예, 눅 20:17; 행 4:11; 롬 9:33). 그래서 베드로는 메시아를, 그 위에 교회가 세워진 “바위”로 보고, 이것은 그가 구약의 핵심 본문들이 어떻게 예수를 가리키는지와 관련해서 “점들을 연결하는” 일을 돕는다. 힐리어의 아티클은 이 주제에 대한 좀 더 면밀한 논의를 제공하고 랍비들이 이런 “돌” 본문들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주목한다.
둘째, 베드로는 자신의 청중이 지닌, 불신자들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것은 신약, 특히 바울의 글들에서 종종 교회에 적용되는 주제다(예, 엡 2:11–22; 빌 3:20에서 핵심 단어 ‘폴리튜마’[politeuma]를 사용하는 빌 3:17–21). 베드로는 이스라엘을 묘사하는 구약 본문들을 사용하는 일과 그것을 자기 청중에게 적용하는 일에 대해 거리낌을 보이지 않지만, 이것이 반드시 대체주의 신학 자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아래의 이스라엘과 교회를 보라). 그것과 상관없이, 베드로전서 2:9에서 이사야 43:21이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베드로전서는 새 시대의 하나님 백성의 목적이 옛 시대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 목적은 온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곤살레스(Gonzalez 2010, 58)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새 백성을 형성하기 위해 하나님께 선택되었고 이 택하심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이 세상의 창조자와 구속자이심을 증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제사장 백성이 되어, 세상을 대신해 그들과 하나님을 중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