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

요한일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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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밀양, 한국의 알프스, 얼음골 사과 , 날 좀 보소(밀양 아리랑), 영남루에 올라 밀양강을 내려다 본 기억
영화 밀양(빛이 빽빽하게 모인 곳, 비밀스러운 햇볕)
서른 세 살. 외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 남편을 잃은 그녀는 아들 준과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가고 있다. 이미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피아니스트의 희망도 남편에 대한 꿈도...
이 작은 도시에서 그 만큼 작은 피아노 학원을 연 후, 그녀는 새 시작을 기약한다. 신애가 외출간 사이 아들 준이 사라짐, 유괴범의 전화, 유괴범의 요구대로 돈을 마련하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 그런데 유괴범은 아들이 다니는 학원 원장.
그러나 관객은 이내 곧 연약한 애벌레처럼 웅크린 그녀의 등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던지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어요?...”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그녀의 모습.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신애는 교회를 찾아갑니다. 신애는 신앙으로 고통을 극복하며 마음에 평안을 찾습니다. 이런 고통을 받으며 찾아온 사람을 교회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본론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5절)?
사귐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선포합니다.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운 선포입니다.
빛은 어떠한 어둠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진리이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대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내 안에 있는 죄와 그로 인해 나오는 악한 생각, 말, 행동이 떠올라 가까이 하기 꺼려집니다.
하나님 좋고 성경도 좋은데 기독교는 왜 회개한답시고 울고 불고 짜느냐?
교회는 부담스럽다.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고 속 사정을 나누면 돌고 돌아 나에게 와서 나의 평판이 좋지 않다. 비밀이 없다. 당황스럽다.
개인주의가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는 두 가지 양면성이 있습니다. 극히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립니다. 또한 그로 인해 외롭습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전하는 면에 있어서는 좋지만 적당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사귀면서 친해지려면 3가지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첫째, 밥을 함께 먹어라. 둘째, 목욕탕을 함께 가거라. 셋째, 잠을 함께 자거라.
진짜 괜찮은 사람인지 알아보려면 어렵고 극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알아보아라. 취중진담이라고 술을 먹여 보면 자신의 이성을 해체하고 감정이 올라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알아보아라.
2.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입니까(6,8,10절)?
오늘 본문에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귀려면 3가지 장애물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1) 위선(6절), 빛 가운데 있다면서 어둠에 행하는 것, 거짓말을 함
요한1서 1:6 NKRV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위선은 선을 가장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은 의로우며, 신앙생활 문제없이 잘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천국에 훨씬 가까운 자라고 확신하며 자랑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보다 못한 몰상식과 무례함, 불의를 행하기를 아무런 감각 없이 하는 그런 위선적 신앙을 가리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새벽에 기도하고, 20일, 40일 작정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하며 직통계시를 받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이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며 덕을 세우며 이웃 사랑을 위한 희생의 본이 되지 않고 오히려 온갖 거짓말과 악덕, 탐욕과 다툼을 일으키는 어둠의 열매를 맺는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 하는 사람입니다.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 내가 잘못했습니다. 말하지 않음.
유-죄를 많이 짓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죄인인 자신을 드러내는 삶을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속을 모르겠어. 이것은 빛 가운데 사는 삶이 아닙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탕자들(큰 아들과 작은 아들), 사울 왕(예배 핑계)과 다윗 왕(살인, 간음-고백과 기록),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지 알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진정성 있는 삶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진정성이 있습니까?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것을 말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귀려면 3가지 중 두 번째 장애물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 기만(8절)
요한1서 1:8 NKRV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기만입니다. 거기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이 지금 요한일서를 쓸 때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십니까? 영지주의자들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을 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의 가현설을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태어나거나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일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혼은 특별하고 신비한 지식으로 구원을 받았고, 육체는 어차피 버려지는 것이니 육체로 무슨 죄를 짓든 그것이 이미 구원을 얻은 나에게 무슨 해가 되며, 무슨 죄가 될 것인가? 이것은 오늘날 구원파 이단에서 찾을 수 있는 태도입니다.
구원파 이단은 구원의 확신은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증거가 없습니다.
당신은 몇 년 몇 월 몇 일에 구원 받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면 구원 받지 못한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하지만 그들의 삶은 윤리적으로 잘못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오히려 주장합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위해서라면 모략을 써야 한다. 개인 정보를 빼내서 다 알고 있는 척하고 신령한 사람인 척하며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 사람이 교회에서 나와서 자신의 단체로 와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구원 받는 무리 십사만사천에 들기 위해서라면 학교에 다니는 일, 직장에 다니는 일, 가정 생활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전도 점수가 높아야 합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 받으려는 태도입니다.
기만, 속이는 태도에서 벗어나려면 책임감 있는 삶이 중요합니다. 사귐은 인격적인 일입니다. 인격적인 것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밀양 영화 이야기 계속>
신애는 신앙으로 고통을 극복하며 살인자를 용서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교도소에 찾아가 면회를 하는데 오히려 살인자는 자신도 믿음을 갖게 되었다며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신애는 갈등합니다. 자신은 이리도 아픈데 죄지은 사람은 오히려 죄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하다는 말에 빡칩니다. 그리고 신애는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셨어. 그러니까, 너한테 한 잘못은 없는 거야. 너의 용서가 필요치 않아. 하나님이 다 용서하셨거든. 이것은 비인격적인 태도, 책임감이 없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사귐을 파괴합니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다 용서가 됩니까? 진리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말한 사람은 개선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할 말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책임 없는 고백은 위선을 넘어서서 기만입니다. 책임 없는 고백은 인격적인 관계를 파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귀려면 3가지 중 세 번째 장애물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3. 왜곡(10절)
요한1서 1:10 NKRV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빛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왜곡된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왜곡은 가장 극심하게 관계를 망가뜨리는 일입니다.
이 모습은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처음 보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2:22–23 NKRV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자신의 아내를 극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하와의 범죄와 그것을 방관한 아담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세기 3:12 NKRV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책임을 누구에게 떠 넘깁니까? 자신의 아내, 하와와 그 하와를 주신 하나님입니다.
애초부터 하나님이 나에게 그 여자를 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 자체를 공격하는 왜곡입니다.
<밀양 영화 이야기 결말 스포, 계속>
신애는 위선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사람들의 실체를 먼저 드러내는 일을 합니다.
신애가 다니는 교회, 그 안에 속한 가정들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신애는 하늘을 향하여 비웃고 삿대질하며 하나님을 욕합니다. 왜곡된 태도입니다.
“하나님 내 말이 맞고, 당신 말씀이 틀렸소!”하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고, 해체하고, 파괴하려 듭니다.
사실 이런 태도의 시초는 마귀입니다. 그는 타락한 천사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거짓말쟁입니다. ‘거짓의 아비’입니다.
창3장 1-3절에 확대(모든 것 먹고-하나 먹지 마라를 모든 것을 먹지 말라더냐), 축소(반드시 죽는다-죽을까 하노라; 의심의 틈을 비집고 들어옴), 왜곡(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처럼 된다. 이것을 숨길 뿐이다.)
왜곡에서 벗어나려면 수납성이 필요합니다.
수납성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진리이시고 절대적인 선이시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이십니다.
나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진정성:내가 잘못했습니다.
책임성: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수납성(겸손):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3.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은 어떻게 가능합니까(7,9절)?
요한1서 1:7 NKRV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둠이 되실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둠에 있음을 깨닫고 빛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칠흑같은 어두운 밤, 매우 차갑게 얼어붙은 허허벌판에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멀리서 모닥불이 보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빛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빛은 여러분에게 있는 어둠 속에 있는 모든 추하고 더러운 것, 마주 대하고 싶지 않은 수치와 상처, 죄악들을 모두 밝히 비춥니다.
우리는 어둠이 익숙하기 때문에 이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두렵습니다. 그래서 위선과 기만을 행하고 심지어 왜곡된 태도를 취하려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깨닫고 두려워 숨습니다. 이것이 어둠의 본성입니다.
환한 모닥불 가운데로 다가갈 용기만 있다면, 자신을 노출 시킬 용기만 있다면,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과 몸을 녹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어둠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만 빛 가운데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러면 그 사귐으로 인하여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요한1서 1:9 NKRV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자백합니다. 이것은 진정성을 가지고 책임질 수 없는 나를 예수님께 의지하며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병든 나 자신을 의사의 손에 믿고 맡기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내 어둠, 죄악을 드리고 예수님은 빛, 곧 죄 용서와 의로움과 거룩함을 주십니다.
이것이 이중 전가입니다. 거룩한 교환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회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목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온 몸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옷입니다. 큰 의미의 회개입니다.
둘째는 손과 발을 씻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목욕을 한 사람은 수시로 손과 발을 씻으면 됩니다. 이것은 작은 의미의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의 발을 씻으라고 한 것은 섬김의 모습으로 세족식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 관계 속에서 죄 용서를 그때 그때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자신의 발 뿐 아니라 서로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맨날 죄 짓고 회개하는 것을 염치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은 자주 있어야 합니다.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 가운데 있어야 내가 죄인 임을 깨닫습니다.

결론

4. 죄를 자백함으로 하나님과의 사귐을 경험하셨습니까(9절)?
골방기도, 예수동행일기-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삶을 드러냄, 속 마음을 드러내는 삶
말과 더불어 기록에 남기면 진정성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경험하고 싶습니까? 실천해 봅시다. 하면 할 수록 좋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과 더불어 교회의 사귐이 일어납니다.
나를 성장하게 하고 서로를 성장하게 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 빛의 자녀들인 교회의 사귐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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