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_하단_250125
0 ratings
· 13 views제자도: 추종이 아니라 헌신
Notes
Transcript
제자도: 안락함을 포기하고, 부르심에 반응하라.
제자도: 안락함을 포기하고, 부르심에 반응하라.
성경 구절: 마태복음 8:18–22
성경 구절: 마태복음 8:18–22
결혼 후 1년 쯤 지났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열이 40도 가까이 올랐는데,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습니다. 열이 오르다보니 두통이 24시간 지속 되었고, 이러다 낫겠지 했지만 상태는 점점 더 심각해졌습니다.
며칠 고생하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링거를 통해 영양제와 해열제를 투입했습니다. 그리고 혈액검사를 통해 열이 왜 오르는지 원인을 추적했습니다.
그렇게 5일 정도 입원 치료를 하면서 열이 점점 떨어졌고, 몸은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끝내 고열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2천 년 전에 베드로의 장모님이 저와 비슷한 고통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고열의 원인을 본문이 밝히지는 않지만, 심한 증상으로 베드로의 장모님이 위중했던 것 같습니다.
나병환자를 치유하고, 백부장의 하인을 치유하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베드로의 장모님을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심한 열병으로 앓아 누워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아주십니다. 그러자 즉시 열이 떠나가고, 베드로의 장모님은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이처럼 신속하고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날이 저물자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마태는 이러한 치유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선포 된 예언의 성취라고 전합니다(17절):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마태가 인용한 이 말씀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예언한 이사야서 53장 4절 말씀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치유하신 것은 단지 아픈 사람을 고쳐주신 정도가 아니라, 당신이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1. 안락함을 포기하라
1. 안락함을 포기하라
이 일 후에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쌌습니다. 너도나도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자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무리를 피해,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길 원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뵙길 원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는 신비로운 분이기 때문일까요? 예수님 곁에 있으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대감 때문일까요?
예수님은 기적을 보고 예수님께 달려드는 맹목적인 무리와 진지하게 예수님을 따르려는 제자를 떼어놓기 위해 건너편으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저는 30년 전에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롯데리아는 꽤 고급스러운 식당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햄버거를 만들 생각으로 롯데리아에 지원했고, 제 생애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날은 한 평 정도 되는 사무실에 앉아서 롯데리아와 관련한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롯데리아에서 하게 될 일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부터는 일주일 내내 홀 청소를 했습니다. 테이블을 행주로 닦고, 넘치는 쓰레기통을 발로 밟으면서 쓰레기를 꾹꾹 눌러주고, 쓰레기가 꽉 차면 비닐을 갈아주고, 홀 바닥을 수시로 대걸레질 했습니다.
닦고, 닦고, 또 닦았습니다.
그 시간은 정말 지루하고 재미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드디어 주방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햄버거를 만드는 건 아니고 감자튀김을 튀겼습니다. 튀기고, 튀기고, 또 튀겼습니다. 감자튀김만 2주 정도 튀겼습니다.
햄버거를 만들 줄 알았는데, 거의 한 달 동안 햄버거를 만드는 그릴 쪽은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롯데리아의 분위기를 몸에 익히며 한 달 정도를 지낸 후에 드디어 그릴을 잡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햄버거부터 시작했습니다. 많이 서툴렀습니다. 시간이 날 때 어떤 소스를 몇 그램씩 넣어야 하는지 되새기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습니다.
햄버거를 만드는 일도 이처럼 기본기를 다지고, 그것을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호언장담한 서기관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목적지는 기적을 베풀며 백성들의 박수를 받는 갈릴리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백성들의 아우성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사람들의 인기 몰이를 하는 게 아니라, 박해와 고난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원한다면 헌신과 희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면 때로 불편함과 부당함을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세상의 안락함을 포기해야 합니다.
2. 부르심에 반응하라
2. 부르심에 반응하라
서기관과의 대화 이후에 어떤 제자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앞서 서기관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지만, 이 제자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릅니다. 이 제자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장례사역을 그 어떤 사역보다 중요한 사역으로 여깁니다. 조가팀 권사님들은 하루에도 두세 차례 장례식장을 오가면서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교구를 담당하는 목사님들도 장례사역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단 장례가 나면,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다 중단하고 장례사역에 모든 시간과 관심을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먼저 아버지의 장사를 허락해 달라는 제자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 …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
이 제자가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옵소서”라고 할 때, 그 말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경우: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3일 장을 치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장례를 일주일 정도 진행했습니다. 만일 이 제자의 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셨다면, 제자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한 셈이 됩니다.
둘째, 1차 장례를 마치고 2차 장례를 기다리는 경우: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서 장례를 진행합니다.우선 죽은 자를 무덤에 안치합니다. 우리처럼 땅에 묻는 게 아니라, 동굴 같은 곳에 시신을 안치합니다. 그곳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한 것과 같은 장소입니다.
그렇게 1차 장례를 마친 후 대개 1년을 기다립니다. 1년이 지나면, 뼈를 제외한 시신의 모든 부분이 썩어서 없어집니다. 그 때 남은 뼈를 추려서 가족 무덤에 안치합니다.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서 장례절차를 진행합니다.
만일 이 제자가 1차 장례를 마치고 2차 장례를 기다리는 중이라면, 첫 번째 경우보다는 훨씬 긴 시간을 기다려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하는 셈이 됩니다.
셋째,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조만간 돌아가실 것 같은 경우:
이 경우는 아버지가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 제자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아버지의 장례를 기다려달라고 예수님께 부탁한 셈이 됩니다.
이 세 가지 경우 중 이 제자가 어떤 경우에 처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입장은 단호하고 분명합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이 말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들”, 즉 “제자의 길을 걷지 않는 자들”에게 죽은 자의 장례를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중하다 해도 장례절차는 가족으로서 감당해야 할 마땅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기본적인 의무마저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기본적인 의무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우선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정리 및 적용
정리 및 적용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떠나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자 하시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몰려드는 무리와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를 제자를 구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어서 두 명의 제자도 지망생을 소개합니다: 한 명은 서기관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제자였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불렀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누구로 인식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자기가 생각한 제자도랑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자는 세상에서 보장하는 어떠한 안락함도 포기해야 합니다.
두 번째 지망생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미 제자 그룹 안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아버지의 장례를 기다려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제자는 가족의 의무보다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우선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처럼 제자도에 대한 예수님의 요구는 극단적이고 충격적입니다. 이는 제자도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인 헌신이라는 점을 나타냅니다.
세상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의무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우선적으로 반응하는, 그렇게 제자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