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1: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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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장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정원미 권사
오늘 본문은, 입다가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 임하게 되고 그 전쟁에서 승리를 얻은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으며,
더불어 입다가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 임하기 전 여호와께 서원했던 모습과 그 결과의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입다는 오늘 본문에 나와 있듯이,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 임하기 전에 여호와께 서원 한가지를 합니다.
그 서원의 내용은 30-31절에 나와 있듯이 여호와께서 입다에게 암몬자손을 넘겨주시면, 승리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올 때, 입다 자신을 영접하는 자를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 서원의 결과, 입다의 딸이 번제물의 대상이 됩니다. 입다는 이를 보고 참담함 속에 놓여 있게 되는데, 입다의 딸은 입다가 여호와 앞에서 이미 서원하였고, 암몬 족속에 대한 승리의 약속도 허락하셨으니 자신에게 그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서원한대로 딸에게 행함으로써 결국 입다의 비극적인 결말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내용인데,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신앙적 교훈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주목할 것은, 이야기의 흐름상 사사 입다가 결국 사사로서 암몬 족속과 싸울 때 어떻게 싸웠고 결국 그 전쟁에 대한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사기 다른 본문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듯이, 사사의 개인신상을 소개하고, 이방족속과 싸우기 전의 과정을 자세히 다루면, 이방족속과의 싸움 과정과 결과도 자세히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그러나 입다의 경우, 암몬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면서 암몬 족속과 싸우기 전까지의 과정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자세한 싸움과정은 생략되어 있으며, 전쟁의 결과는 오늘 본문 32-33절에 나와 있듯이 단 두줄로 요약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사기 기자는 암몬 자손과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다가 갑자기 입다의 서원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중간에 삽입하여 그 쪽에 집중하도록 이야기의 흐름을 환기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사사기 기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사기 전체 흐름을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기드온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된 기점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에 사사가 세워지는 패턴에는 차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는 악을 행하면, 이스라엘 민족을 이방의 손에 넘겨주시고, 압제 속에 있다가 다시 여호와를 찾으면, 여호와께서 사사를 친히 세우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게 하는 패턴이 기드온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비멜렉 이후로 일어난 사사들은 여호와께서 친히 사사로 세우셨다는 내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없이 스스로 일어나 사사가 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방식으로 패턴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패턴은 삼손에 이르러서야 깨지게 되는데, 입다도 이러한 패턴으로 세워진 사사 중에 한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근거로 앞서 10장 16절 이후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셨다라는 표현은 나오지만, 친히 입다에게 찾아가셔서 사사로 세우셨다라는 내용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입다는 먼저 장로들로부터 조건이 걸린 제안을 받았고, 입다는 그러한 장로들과 협의하에 여호와께서 이들을 넘겨주신다는 조건으로, 어떻게 보면 스스로 사사가 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사기 기자가 입다 전의 다른 사사 돌라나 야일, 입다 뒤에 나온 입산이나 압돈은 간략하게 소개한 반면, 입다만큼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로는 아마도 29절에서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였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사기에서 여호와의 영이 임한 사사는 입다를 제외하고 대표적으로 옷니엘과 기드온, 삼손이 있습니다.
옷니엘과 기드온은 아비멜렉 이전에 나타난 사사들로써, 여호와의 영이 자신에게 임하자 그 영의 실재와 임재를 경험하며 인도하시는대로 전쟁에 임하였고,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입다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였으나 바로 전쟁에 임하기보단 자신감이 결핍된 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무모한 맹세를 하게 됩니다.
27절에서 입다가 암몬 자손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판결하시옵소서’ 라고 당당하게 외친 것 만큼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서원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는 모습은 매우 아이러니 합니다.
결국 그 외침은 정말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단순히 적들을 동요하기 위함이었음을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미 여호와의 영이 자신에게 임함으로 인하여 신적인 도움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입다는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영적인 수준은 입다의 서원한 내용을 통해 드러납니다. 31절에 ‘나를 만나는 자’라고 한 것처럼 동물의 희생 제사보다는 사람의 희생 제사를 암시하는 듯한 내용이 본문을 통해 드러납니다.
보통 번제는 드리는 자의 죄와 관련하여 드려지며, 또한 사람의 생명이 아닌 짐승의 생명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칭찬받을 목적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결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신명기 12:31 을 보더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인신제사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이기에,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마땅히 금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다는 그러한 서원의 내용을 지금 암몬 자손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승리라는 명목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서원이라는 것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여호와께 구별하여 바치는 약속 또는 맹세를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입다는 그러한 의도와 목적이 아닌, 오히려 어떠한 대가를 바라고 맹세하고 있다는 불순하며 교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원의 결과가 결국 전쟁의 승리의 주역인 입다의 집안에 불행을 가져다 주게 되었다는 점을 사사기 기자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입다는 앞서 암몬 왕과의 논쟁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임을 잘 알고 있는 자임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머리로 지식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에게 임한 여호와의 영의 실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영적인 의미들을 잘 알지 못하기에, 세상이라는 암몬 족속을 마주하니, 두려움 속에 무모한 맹세인 서원을 하는, 심각한 영적인 수준을 보입니다.
비록 오늘 본문 32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입다의 손에 넘겨주셨다라고 기록하고는 있지만, 사사기 기자는 입다라는 대표적인 인물을 통해,
당시 사사시대의 영적인 수준과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지적하고 고발하고자 오늘 본문에 입다가 서원한 내용을 삽입하여 주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버지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도 오늘 본문의 입다와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혜사이시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우리는 그분의 거하실 처소가 되어 지금도, 앞으로도 그분의 임재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라고 하는 자들 중에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나,
실제로 주어진 삶의 자리 가운데 성령님께서 임재해 계심과 실재를 영적으로 느끼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입다처럼 세상을 향하여 아버지께 역사하여 달라고 입술로는 부르짖지만, 성령님의 실재를 경험하지 못하기에 정작 세상을 마주하면 두려움과 아버지를 향한 의심이 마음가운데 가득합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채, 입다와 같이 잘못된 의미의 서원을 아버지께 하는 교만을 범할 우려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아버지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실재를 머리로만 알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늘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가야 함이 마땅합니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성령님의 임재와 실재를 영적으로 경험하고 늘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더이상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의 도움 되시는 성령님께서 가는 곳곳마다 함께 하시기에 담대함이 생기며, 세상에서 승리하는 역사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 계속 펼쳐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실재와 임재가 영적으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연약하며 형편없는 영적인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령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함께 계신다는 사실과 더불어
아버지께서는 입다에게 암몬 족속에 대한 승리를 허락하신 것처럼, 세상에 대한 승리의 약속을 이 세상이 다하는 마지막 날에 반드시, 약속의 자녀들인 우리에게 성취하실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약속을 위해 지금도 앞으로도 신실하게 일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바라기는 지금도 우리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계시는 성령님의 임재와 실재를 절실히 경험하고 느끼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상에서 담대히 승리하는 역사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절실히 느끼고 경험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따라 세상에서 담대히 이겨내는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가득하기를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서,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해 달라고 함께 기도해주시고, 동역하는 부교역자들을 위해서도 동일한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주시고
2025년 새해 새음교회에 맡겨진 모든 사역을 주신 은혜에 따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아픈 환우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