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 / 요한복음 1:14-18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9 views
Notes
Transcript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393장 오 신실하신 주
그리스도의 영광 / 요한복음 1:14-18
우리 사람에게도 영광이 있습니까? 아마 사람들마다 한창인 때는 있겠지요. 그러나 한창인 때가 있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영광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한창이 예외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무엇인가 특출나게 잘했을 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고 칭송을 받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이 사람에게 영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사람보다 더 특출난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교제해 본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특별한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놀라운 영광이 예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14절을 하반절 말씀을 보시면,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보았다고 하는 것은 직접 체험하고 겪어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직접 만나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을 보았을 때 그분에게는 특별한 영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은 유명한 운동 선수의 영광도 아니요, 특별한 귀족의 혈통을 자랑하는 영광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고 행동하시는 데에는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신성과 영광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특출난 데가 있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이 그분의 육신안에는 가득하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말씀을 하시지 않고 가만히 계실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데가 조금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조용히 움직이셨을 때 그에게서는 우리 인간에게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이 흘러나왔습니다. 조금 비치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풍성하고 충만한 하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영광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
요한이 본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는 것입니다.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너무나도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말씀부터 보게 됩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표현은 의역입니다. 직역을 하면 장막을 친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것입니다. 장막을 친다고 표현할 때 요한이 생각하고 있는 바는 무엇일까요? 요한은 지금 구약성경과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시기 위하여 장막에 거하셨습니다.
모세로 하여금 성막을 만들게 하시고 그 안의 지성소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셨습니다.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보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들을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셔서 친히 그 가운데 사신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고, 그들을 친히 이끌고 다니시면서 그들에게 친히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시면서 그들에게 친히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다가 일정한 곳에 도달하면 그곳에 치고 또 움직일 때는 걷어야 하는 장막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으나 이제는 친히 육신으로 함께 거하신 것입니다.
요한이 그 영광을 보았다고 해서 예수님의 모든 영광을 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요한과 몇몇 제자들은 높은 산에서 예수님께서 변화되신 놀라운 영광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친히 목격하고 체험한 하나님의 신성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성품과 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 이분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지상에 계신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분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지혜와 신성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찌 이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나셨습니다. 그런데 그 영광이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도 구약의 성전처럼 가만히 있고 움직일때는 다시 철거해야 하는 그런 영광이 아니라 살아 있고 직접 움직이며 함께 교제하는 영광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직접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우리가 다음으로 볼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입니다. 이것은 단지 육신을 뒤집어썼다거나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람의 몸을 뒤집어 쓴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셨습니다. 그는 육신이 되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원한 신성이 육신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 무한한 신성과 제한되어 있는 육신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신앙이 성숙되어져가는 상태인데도, 거듭난 영혼과 이 육신 사이에 큰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전부 다 하고 싶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육신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막습니다. 정반대 되는 방향으로 나를 끌고 갑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 있던 많은 논쟁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는 이 부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어떤 분은 육신이 신성에 완전히 흡수되어 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그는 육신이 그 뛰어난 신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그대로 존재했습니다. 전혀 신성에 흡수되거나 터지지 않고 끝까지 존재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신앙 인격 때문입니다. 그분은 끝까지 육신이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육신이셨습니다. 하늘에 올리우실 때에도 육신으로 올리우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도 이 육신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거기서 영원한 대제사의 임무를 감당하고 계시며, 우리도 육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씀으로 하나님이 육신이 되신 것은, 우리 죄를 그 몸으로 담당하기 위해서, 또 우리를 온전하게 이 육신을 가진 채로 하나님 앞에 영원히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육신이 그의 영광을 가리워서 그의 찬란한 영광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분이 움직이실 때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과 영광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이 제자로서 직접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 경험한 하나님의 신성을 어떤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은혜와 진리라고 말하고 있고, 16절에서는 요한복음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고 말하고 있고, 17절 끝에는 요한복음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창조자로 말씀할 때에는 그의 무궁한 능력과 광대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무궁하심입니다.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데 있어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시지 않습니다. 인자하고 성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의 시편에는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이 수없이 찬양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인자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하여 진실하십니다. 요한이 말하고 있는 은혜와 진실은 바로 구약 성도들이 노래했던 인자와 성실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인자하심을 맛보았습니다. 인자와 성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것입니다. 인자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에 대하여 사랑을 먼저 베푸시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받을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심팜받아야 할 원수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인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항상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그들을 찾아오셔서 설득하셨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이스라엘 백성 자신이 하나님을 찾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하여 신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약속하신 것은 생명을 걸고 지키셨습니다. 항상 이 은혜는 하나님쪽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그 희생을 감당하셨지 한 번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이 그물을 깁고 있을 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좌절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셨을 때 이 백성이 얼마나 절망 가운데 있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찾아오셔서 말씀으로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죄인이 돌아오는 것을 부끄러워하시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비난하고 입을 삐쭉이는 가운데서도 한 번도 이들을 부끄러워하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미워했지만 예수님은 계획을 변경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양떼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양떼들을 죽음을 자리로 내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실실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지시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실제로 보고 경험했던 것입니다. 이 영광, 구약성경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놀라운 인자와 신실을 이분의 삶을 통하여 실제로 목격하고 체험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능력은 무한하셨습니다. 그는 성난 파도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요한은 그 놀라운 능력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는 창조나의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이 예수님께 대하여 증거하고 싶었던 것은, 그가 지니신 무한한 은혜와 신실이었습니다. 이것이 너무나도 그에게 인상적이었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성난 파도를 잠잠케 하신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이 죄인에 대한 그의 태도였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아들의 죄를 자신이 스스로 짊어지신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왜 이것이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이 모습이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동일하게 은혜로우시며 진실하십니다. 찾아오는 죄인들을 부끄러워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끝까지 신실하십니다.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지키십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약속을 지키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이미 스스로 책임을 지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일단 사람들을 불러모아 놓은 후에 생각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시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다 생각해 놓으셨고 우리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책임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시는 분입니다. 다른 선생들은 영혼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책임질 수 없는 교리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강도요, 절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그 진리는 책임질 수 없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나를 따라오라고 할 때 이미 우리의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때에도 그것에 대한 대책을 다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실 때부터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계획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이 그가 행하신 그 엄청난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거대한 자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보다 더 엄청난 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자라면 세례요한과 모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뛰어는 말씀 사역자였습니다. 모세는 수백만 영혼의 목회자였고 율법의 선포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보다 훨씬 탁월하신 분이십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육 개월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자기보다 앞선 자라고 말했씁니다. 앞섰다는 것은 선재하셨다는 뜻입니다. 요한이 나기 전부터 예수님은 계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은 아브라함이 나기전부터 있었다고 말씀하셨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보다 먼저 계셨습니다. 그것도 조금 앞선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는 큰 부흥과 회개를 일으켰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들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으로 내려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주님을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에 대한 길을 예비할 뿐이지요. 아무도 성령으로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안을 새롭게 하시는 분은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죄인들을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셕고 또 영원히 계십니다.
예수님은 모세와도 다른 분이십니다.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모세는 율법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이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줄 수는 있었지만 스스로 지키지 못할 때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먼저 사랑해 주는 힘이 율법에는 없었습니다. 죽기까지 ㅊ택임지는 성실이 율법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은혜와 진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의 죄를 책임지셨고, 자기 생명을 걸고 이들을 살리셨습니다.
모세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죽어 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모세가 그런 기도를 드린 적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하자 모세가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주시고 이들을 구원해 달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똑같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을 다 합쳐도 그리스도의 생명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책임지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1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버지 품속에 있는 하나님이 무슨 뜻일까요? 지금까지 감추어진 분이란 뜻입니다. 이분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분이십니다. 비밀입니다. 이분만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아십니다.
그런데 이분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 깊은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씁니다. 이분만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는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품속 깊은 곳에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인자와 성실이 아니면 우리는 다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깊은 가슴 속에 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아들을 통하여 직접 이 인자와 신실을 보이고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듣는 이 복음은 어떤 위대한 사상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감추인 비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믿고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아들과 사귈 수 있습니다. 이분은 지금도 우리에게 인자와 신실을 보여 주십니다. 죄인들을 부끄러워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신실하시며,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며, 우리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여 사명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합심기도제목
날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여 사명감당할수 있도록
대심방으로 은혜 풍성한 시간 되도록
19일(주일) 오후 다드림공동체 특별행사에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여 풍성한 시간 되도록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