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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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176, 180.
찬176, 180.
에베소서 5:21–33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본문 21절에서 바울은 누구에게 명령하고 있는 것일까요? 21절만 보면 명령을 하는 대상을 알 수 없지만, 21절은 15절부터 죽 연결되어 있는데요, 15절을 보면 ‘너희’가 나옵니다. 바울은 ‘너희’에게 명령을 했고, 21절에서도 마찬가지로 너희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어떤 명령을 했는가에 앞서 명령을 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성도들을 말하고 있고, 이것은 곧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5장까지 메세지를 전개해 오면서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설명해왔습니다.
바울이 교회에 명령을 했기 때문에 먼저 교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교회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새롭게 구성지어진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공동체에게 속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자 하나라고 강조하면서 하나의 몸, 한 몸이 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라는 말인데 이 에클레시아를 당시 로마 그리스시대에서 단체, 동호회, 협회와 같이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에 맞게 자발적으로 모인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했습니다.
무역과 관련된 사람들이 서로 무역에 관한 협의와 논의를 하기 위해서 모이면 그런 무역에 관련된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 무역에 관련된 에클레시아라고 불렀고, 도시에 있는 자유시민들의 선거인단도 에클레시아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특징, 저런 특징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에클레시아라고 했습니다. 에클레시아는 단체, 협회, 동호회와 같은 사람들의 모임 그 자체를 지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에클레시아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왜 모였느냐, 모여서 저 사람들은 뭐하냐, 그런 모임의 성격이나 특징이 더 중요한 것이죠.
기독교인들도 서로 모이는 모임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시민들의 눈에는 기독교인들의 모임도 다른 모임들처럼 모임중에 하나로 봤습니다. 그러나 저들만의 특징이 있는 모임이었던 것이죠. 기독교인들은 단순히 모였다 흩어지는 모임이 아니라 세상의 모임들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정체성에 대해서 분명히 해야했고, 왜 자기들의 모임이 교회인지를 서로 분명히 알아야 했습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게 된 사람들이 서로 하나님을 같은 한분 아버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가 새로운 공동체인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공동체라고 말씀을 했고,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께 죄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은 새로운 공동체에 속하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가 되게 한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살았을 당시 예수를 주인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의 모임에서 여러 많은 모임들과는 구별되는 다른 특징이 있다고 한다면 ,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한 몸인 공동체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에클레시아와 아주 다른 특징이었습니다. 다른 에클레시아들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모임에 참여하거나 참석하는 것이었다면, 교회라는 모임은 잠깐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모임들과는 달리 새로운 공동체가 되어 살아갔고,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하나가 되어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교회가 생기기 시작하는 무렵 처음부터 공동체적인 소속감을 가지고 공동체적으로 살아갔습니다. 공동체적으로 살아간다는게 무엇이었냐면, 무역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무역을 위해 함께 정보를 공유하거나, 서로의 무역적인 이익증진을 위해 만났겠지만, 그들은 한 몸을 이루고 공동체로 살아가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삶은 각기 따로 살되 같은 관심사인 무역에 있어서에 관해서 일반적인 모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에클레시아는 서로를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삶을 공유하고, 한 몸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같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공동체로 시작을 했고, 공동체로 살아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에클레시아와는 다른 교회만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공동체인 교회가 어떤 공통의 목표들을 가지고 공동체적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뜻하는 ‘너희’는 곧 교회를 지칭하는 것이고, 교회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가족이 된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써, 한 몸으로써 살아가라는 것이죠. 성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곧 교회가 공통으로 같은 삶의 목표들을 공유하고 같은 목표를 이루로 사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 한 몸인 공동체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현대에 와서는 성경의 교회의 개념이 변질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공동체성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개인주의가 들어섰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교회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가족 공동체로 말하고 있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는데, 현대의 교회에서는 힘써 지켜야 하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신앙만 남아있습니다. 어느샌가부터 교회에서 ‘우리’의 개념이 빠지고 ‘나’라는 개인만이 강조되어 있는 것이 현대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닌다, 출석한다처럼 서비스를 이용하며 다니는 듯한 말이 교인들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우리는 공동체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목적이 같은 공동체입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서로를 책임지는 사랑하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라는 말을 거의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라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가족 그리고 한 몸이 되었으니, 공통적으로 상정하고 함께 따라 살아야 할 같은 목표가 있다고 말합니다. 21절에서 바울은 그것을 현재명령형으로 말했습니다. 현재 명령형은 한 번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그렇게 지속적으로 하라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교회라는 공동체는 서로 복종하는 것을 지속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복종하다라는 말은 아래에 두다라는 어원적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자발적으로 상대방보다 아래로 내려가라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라는 에클레시아는 세상의 모임들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모임들에서도 나름의 질서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상부의 구조를 만들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도출하는 여러 질서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서로 자발적으로 상대방보다 아래로 내려가고자는 질서를 보면 일반적인 모임에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기준입니다. 이렇게 했다가는 의견을 모으고 이익을 증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질서를 보면 처음부터 이런 저런 이익과 관심사로 모인 집단들과는 달리 공동체로 살아가데 필요한 질서를 제시했습니다. 다른 모임들은 서로 살아가는 모임들이 아닙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잠깐 만나는 모임이죠. 그러나 교회는 한 공동체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가 공동체로 살아가는 곳임을 알았기 때문에 공동체라는 전제 위에 공동체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언급을 한 것입니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이 서로 복종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남들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고자 했던 사람이 성경에서 누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자라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 나라의 대한 지식,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등에서 모든 사람보다 뛰어나셨지만 예수님은 가르침과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복종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그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남들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보여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21절에서 교회라는 공동체는 세상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따라살아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니 예수님께 기준을 두고, 예수님이 가르치고 보여주신 것을 따라서 교회는 지속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라. 그래서 서로 상대방보다 낮아져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라고 했던 것이죠. 세상은 힘과 능력이 우선시 되는 곳입니다. 세상에서는 힘이 있으면 대우을 받고, 능력이 있으면 선망을 받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힘과 능력이 아니라 섬김과 복종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섬김과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가셨던 예수님을 따라 서로 낮아짐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질서로 살아가는 것이 교회라는 우리들의 큰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지키고 배우게 되는 질서는 곧 하나님 나라에서 필요한 질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3년 동안 전하시면서, 섬김과 복종으로 낮아지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은 힘과 능력으로 서로를 다스리는 곳인 반면, 하나님 나라는 서로에게 낮아짐으로 겸손과 복종이라는 덕목을 가지고 상대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는 곳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힘과 능력이 우선시 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지 않고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속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서로를 다스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죠.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낮아짐으로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야 하며, 낮아지므로 서로 섬기고 서로 복종하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배워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속해서 지금부터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이 땅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속해서 서로 낮아짐으로 하나님께 다스림을 지금부터 받아가며 지금부터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서로 복종을 할 때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 어떤 정도로 해야할지를 구체적으로 세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부와 관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주인과 종과의 관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로 복종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22-33절에서 부부관계에서 어떻게 서로 복종함으로, 서로 상대보다 낮아짐으로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부부관계에서도 당연히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돈을 더 잘 벌면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돈을 더 잘버는 쪽으로 힘의 기울기가 생겨서 힘의 질서가 부부관계에서도 생기게 됩니다. 한국과 같은 동양권의 나라에서는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나이의 높고 낮음에 따라 손윗사람과 손아랫사람이 구분되고, 손아랫사람은 손윗사람에게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더 든쪽에 힘과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돈이든 나이이든 세상의 방식 즉 힘의 논리가 적용되지요. 그러나 성도들은 세상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우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성도들의 부부관계에서는 힘의 관계가 아닌 스스로 자발적으로 낮아지는 관계를 맺어가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부부관계에서 어떻게 서로 낮아져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어떤 관계 맺고 있는지를 잘 보고 부부관계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기준을 잡으라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먼저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아야 하고 교회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23 하나님은 모든 물질세계를 충만하게 하시는 근본이시고, 예수님은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성경은 물질세계를 가득 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모든 물질에 신이 들어있다는 범신론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범신론은 물도 신이요, 나무도 신이요, 흙도 신이요 하는 것처럼 모든 물질에 신이 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범신론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모든 물질세계의 충만함 그 자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생명있는 모든 생명체에 하나님이 참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모든 물질세계가 하나님의 질서로 움직이게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창조세계에 참생명을 불어넣고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생명과 근원적인 힘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참된 생명을 버리고 대신 유사생명을 찾아서 그것에 연연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얻을 수 있는 참된 생명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대신 유사생명으로 연명하는 인간을 보시는 하나님은 그런 인간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악을 행하고 있는 인간을 악한 죄인으로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적개심이 느껴지시나요?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린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이 빠진 공허한 상태, 곧 불충분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꽃을 꺾어서 꽃병에 꽃아놓으면 꽃은 얼마간은 삽니다. 그러나 땅에서 꺾인 꽃은 당분간 살 수 있지만 결국에는 죽습니다. 사는 것처럼 보여도 죽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참된 생명을 버리고 유사생명을 찾아서 사는 인간에게 죽어가고 있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그리고 참된 생명을 잃어버린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생명의 근원이시자 이 세상의 질서의 근본이신 충만함 그 자체이신 하나님으로 다시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온 세상을 다시 하나님의 참된 생명으로 살게 하는 것, 하나님의 법과 질서로 온 세상이 움직이게 하는 것,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온전한 주인이라고 하시는 것, 생명의 주인이시요, 법과 질서의 주인이시라는 것,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회복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시 에베소서 1:23 을 읽겠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사람은 머리만 살아있으면 식물인간이라고 합니다. 식물인간은 뇌만 살아있고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목숨은 붙어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뇌는 죽어있고, 심장만 뛰고 있는 뇌사상태의 사람도 있습니다. 심장은 뛰고 있어도 뇌가 죽었기 때문에 이런 사람도 살아있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엡1:23 에서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셨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머리와 몸이 같이 살아있을 때 몸은 머리를 따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몸의 머리가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고 에베소서1:23는 말씀하셨습니까? 머리가 무엇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합니까? 온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움직이는 그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하나님을 충만하게 하시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는 실질적인 존재를 의미합니다. 코가 간지러워서 코를 긁으라고 머리는 명령하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으면 가려움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로부터 돌이키고 하나님께로 인생의 방향을 모두 돌린 자들, 곧 그리스도를 자기의 인생과 온 우주의 주인이심을 받아들인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을 버린 인간과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질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모든 창조세계를 다시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시려고, 그리스도를 머리가 되게 하시고 그의 몸으로 교회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시 생명과 질서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회복하시려는 그 일에 교회를 부르셨습니다. 교회의 존재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머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뜻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놀랍게도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인 교회의 관계와 같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5: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여기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뺀다면, 이 말씀은 머리만 되고 싶어하는, 다시 말해서 힘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의 방식을 가르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머리는 하나님으로 먼저 충만케 되는 회복을 경험하고, 유사생명으로 살던 때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으로 살아가는 회복이 일어나야 하고, 그래서 이 세상을 다시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비전과 하나님의 회복사역에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두고 인생의 방향성을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두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머리만 움직이려고 하고, 몸은 따라 주지 않는다면 고쳐져야 할 것들이 고쳐지지 않고 회복되어 할 것들이 회복될 수 없습니다. 머리와 몸이 한 몸이 되어 함께 움직여서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며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회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가 이 세상을 다시 생명의 근원으로 참된 질서로 회복하시려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있듯이, 남편과 아내 또한 부부의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온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 안에 있다고 하시는 것이죠. 성도들의 부부는 세상의 부부들과 다른 인생의 방향과 관계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남편과 아내가 머리와 몸이라는 한 몸이 되어서 온 세상을 하나님으로 회복하시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가 교회를 어떻게 생각했고, 품었는지를 잘 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하나님은 온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시려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파트너로 교회를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까지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목숨을 바치는 희생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에 대해서는 이미 깊은 이해가 있으나,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다는 것은 그에 비해 이해가 약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25절은 놀랍게도 그리스도가 목숨을 바치신 것은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시면서까지 교회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이 적개하시는 죄의 댓가로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하신 이유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교회’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기 때문에 이 사랑을 깊이 깨달은 자들은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그리스도께,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하신 놀라운 사랑에 진정한 사랑에 눈을 띄우게 하는 것이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을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주셨던 것처럼 남편은 자기목숨을 내어주면서까지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쪽에게 이런 사랑을 받으면 다른 한쪽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을 깊이 깨닫는 사람일수록 부부간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부부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는 부부관계로 성숙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부부관계에 있어서 성경의 기준이 없다면 성도의 부부들도 여전히 세상의 방식을 따라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내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조건이 배우자에게로부터 잘 채워지지 않는다,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면 배우자에게 만족을 못하고, 늘 사랑에 결핍이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었지만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인생의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인생의 방향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꿔내지 못한다면, 여전히 세상에서 힘과 능력을 가져서 안정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세상에서 필요한 가치를 얻기 위해 경쟁속에 치우져 살아가는 부부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부부는 머리와 몸으로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와 교회가 맺고 있는 관계와 사랑을 배워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삶의 질서를 배워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아가라,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머리를 따라 이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회복해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하나님의 생명과 법으로 충만함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교회가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부부가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희생하는 사랑을 하고, 부부가 함께 충만하신 하나님으로 먼저 회복되어 가고 있고, 이 세상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부부가 되어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는데 부부의 인생의 목적을 찾고, 삶의 방향들을 하나님 중심으로 함께 수정해 가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깊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성도들의 부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이 세상을 여전히 자기들이 살고 싶은데로 살아가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유비에 담겨 있듯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계 안에 하나님이 온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크고 놀라운 비밀을 담아 놓으셨듯이, 희생하는 사랑과 하나님께 맞추어진 인생의 방향을 부부가 함께 하나로 맞추고, 하나님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성도의 부부관계 안에도 있다는 것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 5:31–32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바울은 교회인 우리는 세상과는 달리 같은 목적과 같은 목표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 한 몸인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부부는 놀랍게도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생을 방향을 맞추고 한 몸이 되어 서로 희생하는 사랑을 하는 질서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생명과 질서로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특권을 교회에 주셨다는 것을, 그 특권을 성도의 부부에게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비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안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성도의 부부도 온 세상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고, 서로 사랑하며 한 몸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성도의 부부안에 담겨 놓으신 깊은 비밀을 성도의 남편들과 아내들이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동기도.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정의와 평화가 세상 모든 나라에 임해서 모든 사람들이 바름과 평화 속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이 세상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또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정치, 경제, 사회에 큰 어려움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행정부, 입법부간의 균형이 잘 이뤄지고, 사법부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부화가 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에 정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큰 문제들이 잘 해결되고 국민들이 이 어려움을 잘 이길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특별히 미국 la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전례없는 산불로 la와 la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빨리 산불이 진압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교회와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다시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시는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우리 교회와 이땅에 세우신 교회들이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먼저 회복되어가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세상의 방식에서 벗어서나 부부로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부부가 되고, 하나님의 회복사역에 아름답게 동참해가는 나의 남편과 나의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성도들과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여러가지 문제로 힘들어 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의 실존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개인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온 세상에 충만함이신 하나님, 온 세상을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창조세계를 충만하신 하나님으로 회복하는 일에 교회를 주님의 몸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을 통해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요시아가 왕으로 8살 때 즉위했지만 성전을 청소하며 율법책을 발견하기까지 왕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까지 16년의 시간동안 자랐던 것처럼, 교회가 주님의 몸이 되게하셨사오니, 주님을 따라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회복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교회로 자라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교회인 성도들이 공동체로, 한 몸으로,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배우고 익히게 하시고, 부부가 한 몸이 되어 머리되신 주님을 따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꿈꾸며 이 세상을 하나님으로 회복시켜가는 일에 인생의 방향을 맞추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각 가정을, 각 가정의 남편과 아내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한 몸이 되어 서로 사랑하며 이 세상을 충만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