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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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가 단절된 세상
관계가 단절된 세상
요즘 세상이 많이 혼란스럽죠? 특히나 최근에 나라 안팎으로 더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는 한편, 나라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까지 계속해서 이러한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나라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사람들이 서로 단합하고 단결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나라가 분열되고 단절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대간의 갈등, 남녀의 갈등, 사상의 갈등, 정치적인 갈등 등등 이러한 갈등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안에서 관계가 단절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서 조차 관계의 단절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죠. 사소한 일부터 큰 일까지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이러한 관계의 단절은 하나님의 본질과 아주 크게 떨어진 것입니다.
죽은 우상과 살아계신 하나님
죽은 우상과 살아계신 하나님
그래서 제가 오늘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했는데, 참 다루기가 어려운 주제이기도 합니다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필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라고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죽은 우상과는 다른 분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눈에 보이는 우상들은 단순히 무기물이라서 죽은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후에 만든 금 송아지는 그냥 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혹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것이 아니라 5절에도 보이는 것처럼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즉 “관계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금 송아지를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거나 재앙을 내리거나 어떤 이익도 불이익도 없습니다. 금으로서 가치는 있을 수도 있지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떠십니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라고 하는 말에는 하나님께서는 관계하시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한 목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 장면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동시에 한 자리에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여기서 저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관계 맺는 분, 즉 스스로 살아계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인간이 되었든지 간에 반드시 육신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어야 세상에 있을 수 있구요, 또한 갓난 아기는 너무나도 연약해서 돌보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저희는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고 항상 관계맺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처럼 의존적인 존재가 아니시죠.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스스로 존재하는, 스스로 살아있는, 즉 스스로 관계맺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있기 이전에, 영원부터 하나님은 스스로 관계 맺음으로서 스스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삼신론에 대한 주의
삼신론에 대한 주의
아니 그러면, 하나님이 세 분 이실까요? 관계라는 것은 보통 다른 사람하고 일종의 교류가 있는게 관계 아닌가요? 그럼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은 세분이시라는 거네요? 성부 하나님은 창조하신 하나님이고, 성자 하나님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고,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교통하시는 하나님으로 말이죠.
그게 아니죠.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하는 유명한 구절이죠. 신명기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그리고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도 인용하셔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하나님은 한 분 이십니다. 이것에 변함은 없습니다. 오히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따로 계신 세 분이라고 이야기하면 이것을 삼신론이라고 하는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이 세분이시라는 것이죠.
양태론에 대한 주의
양태론에 대한 주의
그렇다면 하나님이 한 분이시니까, 그리고 동시에 삼위, 즉 세 위격으로 나타나시니까 하나님께서 가면을 쓰고 나타나신 걸까요? 창조하실 때에는 성부의 가면, 이 땅에 오셔서 저희를 구원해주실 때에는 성자의 가면, 교통하게 하실 때에는 성령의 가면을 쓰시고 일하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가면을 쓰시고 활동하신다, 언뜻 보면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또한 틀린 말입니다. 본문말씀을 다시 보시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여기서 성부 성자 성령이 한 장면에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이라고 제가 아까 설명 드렸죠? 하나님께서 가면을 쓰고 계신 거면, 동시에 등장하신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이렇게 가면을 쓰고 나타나신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이단을 양태론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한 분이시지만 동시에 서로 구별된 세 위격으로 계신 분이십니다. 성부와 성자는 다릅니다. 성자와 성령도 다르구요. 성령과 성부도 다르지만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종속론에 대한 주의
종속론에 대한 주의
어떤 사람들은 성부 성자 성령이 일종의 단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부 하나님이 제일 대빵이신 하나님이시고, 그보다 조금 못하시지만 인간으로 오셔서 구원하신 분이 성자 하나님이시고, 그보다 조금 못하시지만 인간들이 서로 교통하게, 또한 하나님과 관계 맺게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바로 이 구절을 가지고서 성부와 성자 간에 위계 질서가 있다, “여기 좀 보세요. 예수님이 하나님께 복종하신다고 하니까 성부 하나님이 더 위대하신거 아니에요?”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 성자 하나님, 즉 예수님의 복종은 예수님의 겸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 즉 성자 하나님의 본질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위격은 동등합니다. 서로 위아래가 없다는 뜻이죠. 이처럼 성부 성자 성령 간에 위 아래가 있다고 말하는 이단을 저희는 종속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내재적 삼위일체
내재적 삼위일체
그럼 삼위일체 하나님이 대체 누구냐? 머리 아파 죽겠다. 이해가 안된다!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근데 여러분 사실 완전히 이해가 안 되어야 정상입니다. 제가 처음 수요예배 설교할 때 하나님의 까꿍!을 설명 드리면서 말씀드렸을 거에요. “내가 하나님을 100프로 이해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단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감추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감추시면 저희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저희가 성경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진)
성부는 성자가 아니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고, 성령은 성부가 아니시지만,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음악을 생각해볼때, 도 미 솔 이라고 하는 이 세 음은 각각 서로 구별된 음들입니다. 하지만 이 도미솔이 함께 연주되었을 때, 각각 한 음 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내죠.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을 지니신 풍성하고 외롭지 않은 한 분이시구요, 세 위격이시지만 한 분 하나님으로서 일치된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세 위격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스스로 관계 맺고, 스스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이것을 저희는 하나님의 내적인 삼위일체를 다룬다고 하여 내재적 삼위일체 라고 부릅니다.
경륜적 삼위일체
경륜적 삼위일체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만 관계맺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세 위격이자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저희들, 그리고 이 우주만물과 관계 맺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떻게 관계 맺으시나요? 그것은 제가 수요예배 설교를 통해서 쭉 말씀드린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번 보시죠.(도표)
이것을 저는 크게 세 가지 역할로 구분하고자 합니다. 바로 창조, 구원, 그리고 교통하심입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여러분도 다들 아시다시피 만물의 주재, 창조주, 모든 존재의 아버지가 되시는 성부 하나님께서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성부 하나님만 일하신게 아니죠, 보시면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이 함께 운행하시고,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심으로서 요한복음의 1장에서도 나오는 말씀 즉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둘째로는 성자 하나님의 구속, 즉 구원입니다.
말할 것도 없죠? 예수님께서 저희를 죄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다만 이것은 본문 말씀에서도 저희가 봤던 것처럼 예수님 혼자서 이루신 사역이 아닙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함께 계획하셨구요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하나님께서 인치심으로 이 구원에 보증을 서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 즉 구원하시고 끊임없이 저희와 관계 맺음으로 인해서 성화, 저희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저희 안에 거하심으로 인해서 저희가 영적인 삶을 계속해서 영위할 수 있구요, 또한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저희 안에 계심으로 인해서 저희가 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구요, 마지막으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즉 성부 하나님 역시 저희 안에 거하심으로 인해서 저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고 영적인 삶,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성화의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교통하심, 즉 계속해서 하나님과 관계 맺고, 성도들 끼리 관계맺고, 세상과 관계맺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 역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같이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저희와 관계 맺으시는 것을 이 세상에 대한 경륜을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이라고 해서 경륜적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살아있게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
살아있게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
이처럼 여러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저희와 이렇게 관계를 맺으시는데, 세 위격을 가지심과 동시에 한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세 위격은 함께 일하시고 함께 관계 맺으십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관계 맺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사람,” 즉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결론
결론
오늘 말씀 통하여서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살아계심은 그냥 저희처럼 심장이 뛰고 육체를 가짐으로서 살아계심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내재적인 관계, 즉 하나님 안에서의 관계로 스스로 관계맺으시고 스스로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한 분이시자 세 위격이시고, 세 위격이시자 한분인 하나님으로서 풍성하고 다채로운 영광을 지니신 한 분이시고, 일치되고 하나가 되시고 연합하시는 세 위격의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과 관계맺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관계 맺으시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풍성하고 다채로운 영광의 한분, 일치되고 연합하시는 세 위격의 하나님께서 저희와 관계맺으십니다. 이것이 저희에게 큰 은혜가 되는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그냥 구원을 위한 일종의 “쇼”가 아니라 정말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서도 저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아픔과 또한 사랑이 전적으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어디 멀리 계셔서 마치 게임하듯이 저희를 조종하거나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정말 불붙는 마음과 사랑으로 저희를 구원하시고 관계맺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또한 저희를 살아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처럼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를,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희와 관계 맺으심으로 저희가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일 예배드릴때, 송영 찬송 드릴 때만 “성부 성자와 성령~ 찬송과 영광 올려보내세~” 하는 것이 아니라, 저희의 일상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계 맺기 위해서 힘써야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정말 이 말씀처럼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저와 여러분에게 언제나 함께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