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0 ratings
· 28 views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함. 그들의 불평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Notes
Transcript
민수기 11:1-9
민수기 11:1-9
서론
광야에서
본문 말씀: 민수기 11장 1-9절
서론
예배의 자리를 사모함으로 이 자리에 나온 모든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이 회복되는 시간, 주님을 향한 시선이 고정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축복합니다.
2024년 12월, 지난 달에 날솟샘을 통해 묵상했던 성경말씀이 어디였는지 기억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출애굽기’ 말씀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출애굽기 묵상을 끝내며 개인적으로 제 마음 속에 들었던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 이후의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 대해 나누고 싶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민수기로 정하였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에 대해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민수기 11장 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아멘.
11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아멘.
1절에서는 “악한 말로 원망했다.” 4절에서는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이러한 표현들을 보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의 목소리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보니 3절에서 진노하사 불을 그들 진영에 사르게 하셨다. 33절에서는 큰 재앙으로 치셨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불평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처벌을 읽으며 아마도 많은 성도님들께서 오늘 설교자가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우리에게 어떤 교훈과 적용을 말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며 어느 정도 설교 한 편이 쫙 그려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탐욕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원망과 불평, 그리고 그것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처벌을 보여줍니다. 이걸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 교훈과 적용들로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원망을 보이면 안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 범사에 감사하라! 야고보서 1장 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탐욕을 버려야 해!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말하는 바는 분명 그러한 가르침들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본문 말씀이 표면적으로 말하는 것에만 하나님의 모든 뜻과 그분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민수기 전체, 더 나아가 성경 전체를 통해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후 그분의 뜻을 우리 삶 가운데 실천하며, 적용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본론1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인 ‘민수기’가 무슨 책인지를 생각해보며 주님의 뜻 가운데 한 발자국씩 나아가길 원합니다. 성도님들에게 여쭙길 원합니다. ‘민수기’의 뜻이 무엇일까요? 네! 한자 뜻 그대로 보면, 백성들의 숫자를 세서 기록한 책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수기 1장과 26장에 나온 두 번의 인구조사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이 쓰인, 히브리어 성경은 ‘민수기’를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에서!”
그렇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야에서’라는 제목이 참으로 적절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 11장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가운데 어떤 위치에 놓여 있을까요?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데요.
학자들은 광야 시대를 1기, 2기 이렇게 나눕니다. 1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직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고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는 상황까지를 1기로 보고 그 직후부터 2기로 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민수기 11장이 광야시대 2기의 시작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광야 시대 2기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네! ‘불평’과 ‘원망’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불평과 원망으로 시작하는 이 말씀을 보며 앞선 민수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말씀과 너무나도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돌아가셔서 민수기 1장부터 10장까지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읽어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한없이 순종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그 모습을 민수기 9장과 10장에 잘 드러나는데요. 이 감격스럽고도 중요한 장면, 제가 성경 66권 중 가장 좋아하는 말씀 부분이기도 한 이 부분을 함께 교독하여 읽길 원합니다. 민수기 9장 17-23 절을 교독해서 읽겠습니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아멘.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머리 속으로 그려지십니까?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막 위에 머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머뭅니다. 하나님의 구름이 떠오르면 수백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구름을 따라 걸어가는 이 모습! 얼마나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모습입니까? 이런 감격스러운 순종, 전적인 순종의 자세로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만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11장에 이르러서 그들의 태도가 확연하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종과 감사, 기쁨과 감격에서 불평과 원망, 비난과 의심의 태도가 곳곳에 보이게 됩니다. 이전과는 너무나 상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들의 태도가 이토록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조급함’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모와 자식, 연인과 연인 사이에서 자주 짜증을 내고 감정이 상하는 부분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네! 바로 이 조급함에서 충돌이 많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하는데, 애가 늦장을 부리는 겁니다. 밥도 천천히 먹고 씻는 것도 제대로 안 씻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은 얼마 안 남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조급함이 올라오고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얘기합니까? ‘야! 너! 빨리 안해?! 늦는다고!’ 목소리 데시벨이 엄청 올라가며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또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부모님께서 생일 때 사주기로 한 선물이 있는데, 그 선물 조금만 일찍 사달라고 미리 받아도 되는지 조급해하고 안달나하며 막 울고 불고 떼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연인 사이에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데이트를 가는데,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합니다. 조금 기다렸는데 안 나오는 겁니다. 그 때, 지하철 급행이 오고 있습니다. 이거 놓치면 한참 뒤에 올텐데, 이럴 때의 조급함!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나왔던 라암셋 동쪽에서 가나안까지는 직선 거리로 14일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으로부터 약속의 땅 가나안 입구까지는 걸어서 11일 밖에 걸리지 않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거리를 이동하는데 얼마나 걸렸습니까?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백만이었고 노인과 아이들 가축들도 있었기 때문에 여정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 여정이 길어져도 너무 길어지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각보다 너무 더디고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없으니 불만이 생겼던 것이지요.
민수기 11장 1절에서 백성들이 ‘악한 말로 원망’한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겠다! 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가 바뀐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것은 바로 ‘익숙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1년 가까이 먹었던 만나를 지겨워합니다. 분명 그들에게 처음 만나가 주어졌을 때, 그들은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가 너무나도 익숙해졌고 이제는 이 만나가 지겹다며 고기를 내놓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익숙함 속에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을 왜곡하기까지 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민수기 11장 5절 말씀 읽겠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아멘.
무슨 말입니까?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 왜요? 애굽에 있을 때는 값없이, 다른 말로 공짜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며 살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출애굽기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들이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값없이 먹을 수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들은 종이었습니다! 노예였어요! 온갖 고역에 시달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의 학살을 경험했던 끔찍한 곳이 바로 ‘애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현재 애굽에 있던 시절을 좋게 왜곡하며 현 상황에 대한 불평과 원망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뀌게 된 이유는 ‘조급함’과 ‘익숙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조급함’과 ‘익숙함’이 생기는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것은 바로 그들의 ‘시선 이탈’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친 광야 생활을 능히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만 의존하여 걸어가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눈 앞에 보인 상황들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가나안 땅이 있지만 광야 한 복판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들의 현실을 본 것이고 일용할 양식을 매일! 변함없이! 내려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닌 매일 똑같이 내려오는 ‘만나’라는 음식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불평과 원망을 토로하는 죄를 저지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였습니다.
본론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성도님들에게 말씀드린 ‘광야에서’라는 민수기의 말씀을 들으니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참으로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대입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우리의 삶처럼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저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광야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광야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의 구원과 넘치는 사랑, 그 은혜를 경험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순종의 모습을 보입니다. 찬양을 하다가, 말씀을 듣다가, 기도 하다가 막 감격에 젖어 눈물도 쏟고 기뻐 뛰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기꺼이 하나님을 향한 봉사와 헌신, 섬김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죠.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민수기 1장에서 10장에 걸쳐 보였던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또는 막 연애를 시작한 두 연인처럼 사랑이 불타오릅니다. 하나님 생각만 해도 좋고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그러나 안타깝고 비통한 것은 광야 길을 걷다보니 점차 변질된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생기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향한 감격을 상실하고 나의 마음이 차갑고 딱딱하게 식어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부족한 것들, 불편한 것들, 만족이 채워지지 않는 것들, 더 나아가 주변 사람, 환경이 보이며 불만과 원망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벗어나 땅의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 환경, 내 주변 사람, 내 현실에 눈을 돌리니 부족해 보이는 것 투성이인 것이죠. 내 기대와 내 뜻과 다른 것 투성이인 것이죠. 그 결과 내 입에서는 넘치는 감사가 아닌 넘치는 불평이 나오고 넘치는 사랑이 아닌 원망의 말이 나오게 됩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2:4 절 말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아멘.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돌림으로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의 시선을 돌려버리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 얼마나 놀라운 경험들을 했던 사람입니까?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던 드라마틱한 경험,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하며 행했던 놀라운 사역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그가 셋째 하늘에도 올라갔다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놀라운 관계 속에 있었고 하나님을 열렬히 사랑했던 바울도 늘 자신을 돌아보며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려고 애썼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아멘. 빌립보서 3장 13-14절 말씀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고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 내 마음 가운데 탐욕이 있고 불평이 있으며 원망이 있지 않나?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가감없이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놓치고 있지 않나? 돌아봐야 합니다! 돌아보고! 우리의 시선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고정해야 합니다!
본론3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로 시선을 고정할 수 있을까요? 총 2가지의 구체적인 적용과 실천을 나눠보길 원합니다. 첫째로, ‘말씀 붙잡기’ 입니다. 살다보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 한복판에 1년 동안 떠도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상황이 펼쳐질 때가 있습니다. 답답함, 막막함, 조급함, 여러 의심과 원망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는 순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다면 그 모든 마음들이 사그라들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희망과 기쁨의 환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처럼 66권으로 된 말씀을 풍성하게 알고 붙잡을 상황이 안됐지만, 우리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고정할 때, 굳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바라볼 때 그 끝이 어찌되는지 이 말씀을 통해 알지 않습니까?
만약 마음에 조급함이 드십니까? 말씀을 읽음으로 하나님이 어떻게 나에게 역사하실지를 미리 보십시오! 그리고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이런 상황에 두고 계신 것이구나! 그러나 우리 하나님! 나를 반드시 좋은 길 선한 길로 이끄시는구나! 이렇게 반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둘째로 삶 곳곳에서 ‘은혜 기억하는 실천’입니다. 익숙함을 타파하기 위한 가장 좋은 실천으로 저는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제목 5개 이상 매일 적기’가 참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분명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가 매일 내리는 것을 보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려보고 감사의 제목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비가 오는데도 만나가 내렸네? 감사하다! 오늘 만나를 만들어 먹는데, 끓여서 먹는 방식이 이전과 다르게 더 맛있는데? 배도 부른데? 감사하다! 내일은 다른 방식으로 먹어볼까? 참 은혜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구원의 은혜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보이고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다는 핑계의 무게 앞에 우릴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가 어떤 은혜인지 다채롭게 적어보십시오! 그리고 내 삶 곳곳에 펼쳐져 있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수많은 은혜들을 적어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려보는 시간을 실천해보십시오! 분명!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익숙함이 아닌 날마다 새로움, 날마다 감격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이 이야기를 끝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자랑하는 종목 중 하나로 ‘양궁’이 있습니다. 선수들에게 ‘양궁’을 잘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특징을 물어보면 지속적인 균형성이라고 합니다. 반복된 동작으로 활을 잘 잡고 땡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 너무 너무 기본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집중’입니다. 내 앞에 놓인 과녁을 향한 집중이죠! 뚫어지게, 반듯하게 쳐다보는 시선이지요! 만약 양궁 선수가 과녁에 대한 시선을 놓쳐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과녁이 아닌 다른 곳으로 화살이 날라가 꽂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같은 인생길의 핵심도 이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고 우리의 마음을 어디로 쏠 것인가? 하나님인가? 우린 눈 앞에 놓인 상황, 현실, 환경들인가? 하나님께 시선을 둔다면 얼마나 강렬하게 최고의 마음으로! 최고의 집중으로!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내어드릴 것인가? 이 질문을 가지고 늘 걸어가야 합니다! 저와 사랑하는 동암교회 영가족 모두가 오늘 말씀 기억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을 두고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쏟으며 광야 같은 인생길 능히 걸어가는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자녀들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