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들고 '함께' 걷는 사람들 2025 0117

수련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3 views
Notes
Transcript
마태복음 28:18–20 (NKRV)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인트로

“함께”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의 정체성이 복음으로 변화되었다. 예수 믿고 복음을 누리는 삶을 산다. 복음을 누린다는 것은 내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선언하고 사는 것이다. 자녀들은 자신들이 문제가 있어도 아무 걱정하지 않는다. 왜? 부모가 해결해 줄거니까. 부모의 해결을 믿고 사는 것이 자녀들의 특권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예수를 내 구원자로 믿고, 이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실제적인 내 삶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어제 함께 나눴던 것처럼, 복음으로, 예수 믿음으로 변화된 아주 작은 내 삶의 변화들을 고백하지 않았는가! 작은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작은 응답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믿는 것이다. 그러한 확신이 우리 가운데 생기게 된다.
예수 믿는 것은 보여져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나면 보이게 되고, 경험하게 된다. 진짜 자유를 경험하게 된다. 세상의 가치관과 기준들은 늘 우리를 초조하게 만든다. 진짜 자유를 주지 못한다.
전도서에 보면 진짜 진리의 말씀이 하나 나옴.
전도서 5:10 (NKRV)
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우리 사람은 언제 만족할 수 있는가? 평생 만족할 수 없다. 우리 삶에 은, 즉 재정, 돈이 필요하다. 필요없는 것이 아니다. 꼭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죽는다. 얼마가 있어야 만족할 수 있는가? 만족 절대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헛되다고 전도자가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를 만족시키는 다른 것이 있다는 뜻이다. 돈, 풍요로움, 이 세상에서 즐기는 즐거움, 가치관, 명예, 학력 등등 그러한 것들이 아예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내 영적인 만족감이 채워질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를 채우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게 태어나서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부자가 되어도 별로 기쁘지 않다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인터뷰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대로 돈을 많이 벌어도 행복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세계 행복지수를 조사해보면, 객관적으로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들보다 못 사는 나라들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결과를 볼 때가 있다. 물질적 풍요가 사람의 행복. 즉 영적인 충만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이니까 취직을 너무나 원함. 그리고 월급을 받고 경제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재정적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 그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이직하고 싶고, 더 높은 연봉을 벌고 싶고, 결혼, 육아 등 큰 돈이 들어가는 일들을 맞닥뜨리다 보면, 재정적 해방감은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올무로 되돌아 온다. 돈을 벌어서 생활 환경을 바꿔보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고, 억지로 하는 거, 그걸 사회생활이라고 부름.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목 마르다고 넘쳐나는 바닷물을 계속 마시면 죽는다. 바닷물에서는 수영을 하는 거지 마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갈급함을 해결하시고 채우시는 우리의 생수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어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인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은 그 확장판. “함께”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질적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 무엇이 우리와 “함께”해야 하는가이다. 복음을 받아들여 정체성의 변화를 이룬 사람들이 이제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함께”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복음. 함께. 그리고 그 주제를 관통하는 진리 = 백문일답 : 예수 그리스도!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 : 교회

불완전함은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방향성의 문제일 뿐이다.
불완전한 사람들의 모임. 교회.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늘 부족해서 불완전함. 수시로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는 불완전함.
그래서 교회는 성도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들의 모임. 그러나 뉘우치는 죄인들의 모임이다. 울부짖음이 가득한 죄인들의 소굴이 아닌. 불완전함을 깨닫고 뉘우치며, 올바른 방향을 잡아나가려고 애쓰는 모임이라는 것.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때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사람들. 방향을 알고, 진리를 알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 .. 나?)

대가를 치뤄야 한다.

‌에덴동산까지는 하나님의 무한공급으로 삼‌ .선악과 사건 이후부터 사람은 모든 것에 대가를 치루게 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대가를 치루게 됨‌.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 있어 믿음의 시험과 시련을 통과하게 되고 그것은 흔적을 남기게 됨. 그것이 대가.
창세기 32장
대표적으로 야곱.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붙들고 하나님을 이겨먹어 축복을 받아냄. 그러나 그 결과로 절뚝거리게 됨.
그러니까 선악과 사건 이후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 우리는 그분에게로부터 무조건적인 공급,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대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하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두렵고 떨림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야곱이 이전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도 그랬다.
창세기 28:16 (NKRV)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의 이유.‌ 그래서 경외라는 말. 화해와 용서와 치유와 사랑이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존재.
‌그래서 예수님의 이야기
막 10:35–45 (NKRV)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영광의 보좌를 원하는 제자들. 고난과 십자가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 제자의 길은 대가를 치루는 길.
‌승리를 거두는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절뚝거림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패배가 아니다.
‌새로운 이름을 얻은 새로운 시작이며 새로운 생활방식이다.
‌이것은 새로운 힘과 새로운 약함을 동시에 허락한다. 새로운 힘으로 세상을 이기며 나아가지만,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약함으로 그의 긍휼하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열매만 따 먹고 싶다. 고통의 과정은 건너뛰고 싶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의 재산을 다 팔아야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셨다. 대가가 필요하다. 심지어 그 대가를 치루게 되면 평생 가난해지게 된다. 대가의 흔적이 남게 된다.
‌에덴동산 시절에는 열매를 먹고 싶은대로 마음껏 먹었다. 그러나 선악과 사건 이후부터는 모든 것에 대가를 치루게 된다. 열매를 먹기 위해서는 땅을 경작해야하는 수고가 있어야 하고, 여자들은 해산의 수고를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대가치룸을 하나님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의 모습이 되어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셨다.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대가를 치루셨다. 우리는 복음 들고 “함께” 걷기 위하여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해야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가가 두렵다고 관계의 회복을 멀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의 가치를 놓지 말아야 한다.
복음을 들고 모인 이 공동체가 불완전한 공동체라고 이미 규정했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때문에 우리는 완전함을 기대하게 된다. 불완전함이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잖는가. 방향성의 문제일 뿐이다. 우리는 불완전함의 불안 때문에 방향을 잃고 절망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방향만 제대로 잡아나간다면, 그 실패는 여전히 일어설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된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 복음을 들고 함께 걷자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대가를 치루는 일이다. 솔직히 전도 힘들다. 웬만한 E성향 아닌 이상 쉽지 않다. 그러나 함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 이 사실 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대가를 치루고 있다. 직장의 일을, 누군가와의 시간을, 소중한 나의 재정을. 그러나 그러한 것들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함께”의 가치를 지켜갈 때, 우리의 불완전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결단찬양 <나는 주님께 속한 자>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