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풍성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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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에 있는 자들이 보여주는 특징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이었지요. 성경의 진리보다 세상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
두 번째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권력을 위하여 사는 것, 자기는 희생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자신을 위하여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
세 번째는 육체의 욕심,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따른 것. 성경적으로 옳고 그르냐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내 마음에 혹은 내 생각에 혹은 내 기분에 좋냐 나쁘냐를 따지는 태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들은 어딘가에 적어 놓고 늘 들여다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늘 너무 쉽게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죽었던 우리,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살리셨습니다. 특히 5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라고 합니다.
바로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에 우리를 살리셨다는 것이지요. 그 부활시키신 능력이 오늘 우리들을 살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육신으로는 살아 있지만 죽었던 시절이 있었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셨다는 말은 사실 우리의 육신의 죽음과는 무관하다는 말입니다. 아직 육신으로는 죽지 않았지만, 육신이 죽고 영이 살아난 사람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은 육신의 일이 더 이상 우리 존재를 좌지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우리를 영원한 사망으로 끌고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밀고 나가면, 우리의 죄악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살아있던 우리를 죽게 만들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죄악이 우리의 생명에 더 이상 해를 입히지는 못한다는 뜻이지요.
만약에 우리의 죄악이 우리의 생명에 해를 입힌다면 그 은혜가 지극히 풍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기에 모자란다는 의미가 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은혜가 모자란다면 우리들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지극히 풍성하다고 증언합니다. 우리의 일생에 지은 모든 죄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하다고 합니다.
그 지극히 풍성함 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여 주시는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잃어 버립니다. 마치 내가 자격이 없어서 영생을 잃어버릴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대단히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인간이라면, 무엇인가에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자격이 필요합니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과 다양한 액티비티들이 필요합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특정한 시험에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하고, 인턴의 경험과 무엇인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돋보여야 하는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헷갈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리더가 되기 위하여 자격이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목사가 되기 위하여서는 적절한 신학 공부가 필요합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소질이 있다면 된다라고 하지 않듯이, 목사에게도 그런 자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경이 말하는 이 자격이라는 것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잘 섬기기 위해 필요한 훈련과정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스포츠맨쉽을 이해하면 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 그 사람만 칭송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모든 참가한 운동선수들이 다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가 칭송 받을 이유는 더 많은 땀방울을 흘려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금메달을 딴 선수도 다른 선수들을 얕잡아 보면 안됩니다. 다른 선수들을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경쟁이 차별을 낳는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 경쟁이 정당한 보상과 또한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것이 된다면 그 경쟁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인간의 죄성이 그 경쟁을 통해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 것인양 우쭐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리더가 되기 위하여 자격이 필요하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인데, 각자가 맡은 직분을 잘 수행하기 위하여 훈련되었느냐를 본다는 의미입니다.
그 나라 안에서 각자의 달란트 대로 섬기기 위한 자격은 필요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그렇게 자신이 자격을 갖추었다고 우쭐될 이유를 모르는 교회입니다. 목사가 되었다고 장로 혹은 권사가 되었다고 목에 힘을 준다면,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건강한 성도도 아닙니다. 그냥 하나님이 더 섬기라고 종이 되라고 그래서 더 큰 은혜를 알게 해주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어쨌든 죄로 물든 우리들은 남들보다 내가 더 자격에 합당하게 무엇을 이루었다면 스스로를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가 보다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내보이고 싶어하는 것이지요.
자기 중심적, 즉 죄로 물든 태도를 갖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자기 중심적 태도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를 진짜로 높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내가 얼마나 애썼는줄 알아? 내가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줄 알아?
두 번째는 남을 깎아 내리는 것입니다.
제까짓게. 해봤자 뭘 얼마나 하겠어? 저 사람은 틀렸어. 저사람은 글렀어. 실망이야.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으로 인해서 행복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나 연약함으로 실망이 들 때에도 “실망이야”가 아니라, 그럴 수 있지. 그래서, 그를 긍휼히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축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본인이 어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적입니까? 아니면 세상적입니까?
저를 돌아보면 저도 세상적인 것에 더 가깝습니다. 내 능력으로 자격을 얻은 태도로 살아갑니다.
이제 복음적으로 바뀌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신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여러 세대에 나타내게 되시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