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하게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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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배경설명
-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10가지 재앙이 애굽에 있은후 이스라엘은 속히 애굽에서 나옴
- 12:33 애굽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 보내려 하므로
- 12:39 그들이 애굽으로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라
본론
우리의 길을 세심하게 인도하시는 주님
-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일하지 아니하신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과 연약한 판단에 따라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할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맞이하고 실패하기 마련이다.
-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 즉흥적으로 행하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은 완벽한 계획과 의도에 따라 자신의 일을 처리하신다.
-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빗방울 하나도 하나님의 확고한 명령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를 따라 친히 작정하신바를 이뤄가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그분의 섭리안에 종속된다.
그안에는 우발적이란 말도 통하지 않는다. 그안에는 오직 그분의
뜻만이 모든 것을 통치할 뿐이다.'
-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계획과 의도대로 일을 진행해 나가시며 그 어떤것도 심지어 빗방울 하나도 그분의 의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세심하고 완전한 계획으로 이끌고 가실것이 틀림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믿어야 했다.
- 본문 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 사람 땅의 길(해변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홍해 광야길(18절)로 인도해 가신다.
- 당연히 인간적인 생각에서 본다면 빠르면 5일 길게는 일주일정도 걸리는 길인 해변길로 가는 것이 효율적이고 고생도 덜하는 길이다.
-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는 다르게 더욱 고생하는 길인 홍해 광야길로 그들을 인도하셨다.
-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인도해 가실때는 철저한 의도와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 당장 눈에 보기에 옳지 않은 것 처럼 보여도 그 속에는 숨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것이다.
- 본문 17절에는 그 이유가 나온다.
17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 본문에서 보다시피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백성들과 마주대하게 되어 전쟁을 하게 되면 이들이 겁을 먹고 애굽으로 돌아가게 될것을 염려하신 것이었다.
- 하나님의 이 판단은 지극히 옳은 것이었다.
- 실제로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하나님 백성으로서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데스바네아에서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전쟁을 해보기도 전에 자신들은 질수밖에 없다고 통곡하며 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민수기 13장)
- 그들이 훈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과를 맞이했다면 훈련없이 곧바로 블레셋을 마주대했을때는 의심의 여지없이 더욱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 그 만큼 이스라엘 백성은 연약하고 아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또렷하게 가지고 있지 못했다.
- 그러므로 단순히 가는 길이 빠르다 하여 해변길로 블레셋으로 가게 되면 준비도 안된 이스라엘 백성이 오합지졸같이 무너질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적용
- 따라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알고 있는 분이시다라는 것이다.
- 그분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문제에 부딪혀 보기 전에 얼마나 능력없고 연약한지를 모른다. 그러나 하나니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감당할수 있는 시험을 허락하신다.
- 또한 두번째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때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세심하게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인도하신다. 따라서 우리의 계획과 생각을 고집해서는 안된다. 지금 보기에는 내 생각이 옳은 것 같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바른 길임을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다.
- 생각해보라.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 있다가 애굽군대가 자신들을 뒤쫓아와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빨라보인다고 해변길로 나아갔다면 앞에는 블레셋 군대가 막고, 뒤에는 애굽군대가 쫓아와서 이스라엘은 그 사이에서 도륙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애굽군대를 홍해에서 수장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뒤를 염려하지 않고 앞으로 갈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당장의 현실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내 생각보다 훨씬 뛰어남을 믿고, 그분의 인도에 자신을 완전히 맡겨드릴때 승리할 수 있다.
광야로 인도하시는 주님
- 하나님은 이들을 광야길로 인도해 가신다.
- 18절의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 광야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또한 20절에 "그들이 숙곳을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 20절의 광야 끝 이라는 말은 광야가 실제로 끝나는 곳이라는 말이 아니라 '광야 끄트머리' 라는 뜻이다. 따라서 광야가 시작되는 곳을 의미한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먼저 홍해를 건너 광야길로 인도하시기 원하시는 것이다.
- 이것은 왜 그런가.
- 히브리어는 광야를 '미드바르' 라고 표현한다. 한편 하나님의 말씀을 '다바르', 지성소를 '드비르' 라고 한다. 이것들은 모두 어근이 같다. 즉 '말씀' 이다.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광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곳은 비어있고, 오직 나와 하나님밖에 없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이다.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끄시는 것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기 위함이다.
- 우리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바로 이 훈련을 받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신명기 8장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왜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셨는지에 대한 목적이 나오는데 그것이 3절에 잘 나타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든 풍요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 이들이 이런 광야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이 없이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갔다면 이들은 축복속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렸을 것이다.
- 하나님은 진정한 복은 젖과 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가르쳐 주시려 한 것이다.
적용
-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생가운데 우리를 광야로 이끄신다는 것을 알고, 삶의 어려움과 환난이 올때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오직 주의 말씀으로 사는 법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요. 궁극적으로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
- 하나님께 쓰임받은 민족, 사람, 교회 모두 하나같이 광야를 경험한다. 민족적으로 이스라엘, 한국도 마찬가지고 인물로 다윗, 바울, 루터, 칼빈등도 마찬가지며 교회로서 초대교회와 한국교회등과 같이 모두 광야를 경험하고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혹독하게 받았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없듯이, 광야에서 내가죽고 말씀이 사는 역사가 없이 가나안땅의 영광이 없는 것이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
- 우리의 인생이 광야의 길을 지나지만 결단코 두려워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 본문 21절에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라고 말씀하신다.
- 그렇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뒤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신다' 앞서 가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뒤에 따라가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슨 일이 생기면 그제서야 도와주는 신이 아니라, 친히 앞에 가시면서 이스라엘이 진칠곳과 쉴곳과 안식처를 정하시고, 그들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앞서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 '사후 약방문'이라는 말이 있다. 죽고나서 처방전을 쓴다는 말이다. 죽고 난뒤에 처방전을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의 뒤에서 쫓아오는 하나님이라면 사후약방문을 써주는 서투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 앞서 우리의 모든 필요와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분이시다.
- 또한 그분은 우리를 결단코 떠나지 아니하신다. 주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는데 21절에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라고 나온다. 이말을 우리식으로 번역하면 '낮이나 밤이나 떠나지 아니하신다'는 뜻이다.
- 또한 22절에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신다.
- 여기에 떠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세히 보면 '아니 하니라' 의 히브리어 '로' 에 미완료가 붙어있는 형태다. 이것은 원어적으로 '영원한 금지' 혹은 '중단되지 않는 역사'를 의미한다. 즉 주님은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심을 나타낸다. 일시적으로 함께 있다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들과 함께 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과 같이 이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에게 당신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것이 임마누엘이다.
- 또한 그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20
- 무엇보다 예수님으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단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신다.
- 로마서 8장 38-39 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 선언한다.
결론
-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괴로울때나 슬플때나 광야와 같이 외로울때에라도 자신이 홀로 버려지지 않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낮이나 밤이나 쉬지아니하시고 도우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나가야 한다.
- 그 믿음이 있을때 물이 우리를 엄몰치 못하고, 불이 우리를 사르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카락 한올도 다 놓치지 않고 다 세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평안과 은혜를 누리는 백성이 될수 있는 것이다.
- 그러한 축복과 은혜가 올 2017년 한해에 넘쳐나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