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행할 바를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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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내가 의인입니다. 정직한 자입니다.
내가 의인입니다. 정직한 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시편 삼십삼편의 말씀입니다.
제가 잠시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실 때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각자 느낀바가 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내용은 우리의 느낌과 생각과는
별개로 어떠한 사실만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주 찬양해 위대하신 주 모두 할게 되리라! 위대하신 주!”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읽고, 생각하고, 느꼈을 뿐인데 제 입이 저절로 열려 찬양이 나왔네요.
또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해도 찬양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찬양이 나오지 않으셨다면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할 때
어떠한 열망이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포착되십니까?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요.
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예배하고 싶습니다.
또 누군가는 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소리치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겸손해지고 싶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누군가를 돕고 싶습니다.
만약 그러시다면 그러한 열망도 하나님과 연관된 열망이라 볼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열망을 품고 있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열망은 하나님과 관계한 사람만 갖을 수 있는 열망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마땅히 해야할 무언가를 우리의 마음을 통해
느끼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 그 느낌을 정리하여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오늘 시편 저자도 그와 같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가득해지니 시편 삼십삼편 1절 말씀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시편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인과 정직한 자들은 도덕,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말하는 단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올바로 서 있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개념을 가지고 와서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인으로 여겨주셨습니다.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내가 아무리 도덕적,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산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훌륭하다 인정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의인도 정직한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조금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결심했던 일들을 작심 3일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과 마음의 동기 마저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고 그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뿐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할하신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덮고 있는 그 예수님의 의로우심을 보시고 나를 의인이요, 정직한자로 보아 주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과 감정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본문 말씀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의인과 정직한 자들은 이처럼 하나님과 관계를 갖고 있는 성도을 가리켜 말씀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관계한 자의 특징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도는 자신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또한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에 그러한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의인과 정직한자라 여김받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33:15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살피시는 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도로서 품어야 하는 소중한 소원, 마음, 갈망을 주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게 하십니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라고 말씀합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성도들을 오늘도 ‘굽어 살피신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굽어 살피신다’는 표현은 마치 높은 지위나 지대에 있는 어떠한 분이 낮은 지위나 지대에 있는 어떠한 사람을 찾아 보기 위해 등을 굽히어 세심하게 보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허리를 굽히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시편 저자는 높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는 표현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내버려져 방치된 것과 같은 시기를 뒤돌아보면 성도의 인생에는 굽어살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이 분명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절대 저와 여러분들을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혹 그러한 느낌을 받는 때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때와 방법으로 여러분들의 삶을 굽어 살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자들, 윤리 도덕적으로는 뛰어날 수는 있으나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이 우연의 산물이라 믿고 인간은 원숭이에서 나왔다고 믿는 이 땅의 유물론자들의 특징을 가리켜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도 아니요 정직한 자들도 아닙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모르는 인생들의 특징은오늘 본문 말씀대로라면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많은 군대와 말을 거느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부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대와 말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다양한 수단들을 말합니다. 돈, 명예, 권세, 건강, 관계, 지식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자신의 삶을 규모있게 가꾸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죄악시하는 삶을 말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될 수 있으면 좋은 음식도 먹어야 하고, 돈도 잘 벌어서 나와 타인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꿈꿔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지 않으시다면 그와 같은 삶은 16절과 17절의 말씀과 같이 자기 살길을 자신의 능력으로만 준비해 보겠다는 삶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손이 짧아서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수 없으셔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실 수 없는 것 또한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능력이 없어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실 수 없는 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 없는 삶을 살 때 여호와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굽어살피실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편 저자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는지를 점검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의인이요, 정직한 자라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할 찬양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가 시편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여러분들은 세상 정보와 지식 원리가 불변하다고 믿으십니까? 오래전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의 천체가 돈다고 믿었습니다. 천동설이지요. 하지만 이 학설은 비과학적인 학설이라는 게 증명됐습니다. 지구가 천체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이 맞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정도와 지식들이 바뀌고 있습니까? 무엇이 옳은 것이고 그른지를 분별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6일동안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습니다. 그의 행위는 참으로 진실됐고 정직했습니다. 시편 저자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씀과 그 말씀을 내 뱉고 있는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은 정직했고, 진실했던 것 같이 그 분의 말씀도 정직하여 실제 역사를 진실되게 이루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직하고 진실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만물이 우연의 산물일 수 없다는 시작점에서 절대자 하나님이 정직과 진실로 이루신 천지창조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하늘을 지으셨고 ‘그 만상’ 즉 우주의 별과 행성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이 우주의 세계가 물질로부터 왔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최초의 물질은 아주 오랜 시간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우연이 생물 또는 에너지로 그리고 그 곳에서 새로운 물질이 우연히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유신론자들을 설득할 수 없고 유신론자들도 무신론자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생각의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전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시작이 이미 있는 물질에서 왔느냐?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왔느냐? 세상에는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지적 창조자가 있느냐 없느냐? 이와 같은 전제점이 다르기 때문에 유신론과 무신론의 문제는 팩트를 가지고 논의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념체계 즉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찬양, 예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또 다른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의 절대 공정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뜻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앞에서 늘 미달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이 바로 ‘헤세드’입니다. 이 ‘헤세드’는 ‘자비’, ‘긍휼’, ‘끝없는 사랑’등으로 번역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헤세드를 경험하셨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맞습니다. 하나님의 헤세드를 경험했다면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찬양을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령 죽는다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 이를 신학자들은 ‘행위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언약은 상호 책임이 따르게 되는 언약입니다. 하와는 이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담도 이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책임인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그들이 쫓겨났다는 것은 그들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그들 인생의 진짜 죽음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 그들에게는 육체적 병이 찾아옴으로 실질적 죽음 또한 찾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 언약의 결과였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행위 언약만 만들어 놓으셨다면 우리 인류는 실패의 연속 속에서 누더기와 같은 옷만 걸치고 허무와 무의미의 삶을 살다 인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가죽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가죽은 동물을 잡아야 구할 수 있습니다. 동물을 잡을 때 피를 보게 됩니다. 성경은 피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이와 같은 상징 또는 내용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는 ‘헤세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그 인생을 실패의 인생으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 때는 ‘헤세드’자비와 긍휼을 통해 다시 회복해 주시는 분이 우리가 믿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헤세드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33:18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하나님의 헤세드를 경험하고 있는 자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펴보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입니다. 경외라는 표현은 사랑만 가지고 표현될 수 없는 단어입니다. 그렇다고 두려움만 가지고도 표현될 수 없습니다. 사랑과 두려움 모두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존재들을 살펴보십니다. 왜 살펴보십니까? 하나님에게 다 이유가 있어서겠지요. 그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저와 여러분들을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저와 여러분들이 더 하나님을 바라고 그 분의 도움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헤세드 즉 그의 인자하심이 저와 여러분들의 영혼을 오늘도 보호하실 줄 믿습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이 아침 아침마다 새로운 그 분의 인자하심을 구하고 또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시편 저자가 마지막절 말씀에 재차 그 헤세드를 구하고 있는 것과 마찮가지로 말입니다. 시편 33: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의인이요, 정직한 자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 말씀인지 그 말씀이 세상을 창조했을 뿐아니라
저와 여러분들 또한 지키고 있으시다는 사실을 믿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계시다면....
우리의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어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찬양은 그러한 은혜를 누린자들이 마땅히 해야할 바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땅히 해야할 바란...마치 맞는 옷 또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잘 어울리는 악세사리를 했을 때 느끼는 그 안도감과도 같을 수 있습니다.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움에서 무더나오는 그 열심으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찬양했으면 합니다. 그것이 성도가 마땅히 입어야 하는,
즉 성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일 것입니다.
그 비슷한 옷 몇벌 더 소개해 드립니다.
찬양, 구제, 겸손, 섬김
예배, 사랑, 배움, 용서와
같은 것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성도이기에 그 무한한
혜태, 은혜를 누렸기에
제가 주님 앞에서
마땅히 할 바를
알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