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117 새벽기도회: 출애굽기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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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8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날씨가 추운 가운데서도 언제나 저희를 보호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기 위하여 나아왔습니다. 저희는 하나님 앞에 항상 못나고 죄만 짓는 불경한 자들이지만,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오늘 이 시간도 함께해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 2:11-15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11–15 NKRV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인 오늘도 잘 나오셨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금요일 잘 마무리하시고,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신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 2장의 말씀으로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보고 분노하여 애굽인을 죽인 모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보고 모세의 살인에 초점을 둘 수가 있는데요. 사실 그렇지 않고, 이 본문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어떻게 준비시키셨고, 모세의 행동은 믿음에서 기인한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 이 본문은 어떤 의미를 주는지 깨닫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11절부터 보시면 “모세가 장성한 후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가 성장했다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고, 지적으로도 충분히 성숙한 성년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시면 이때의 모세 나이가 마흔 살이라고 말합니다. 애굽의 공주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일 강물에 떠내려 온 모세를 발견하고 자기 아들로 길렀습니다. 구체적으로 모세가 마흔 살이 되기까지 애굽의 왕자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공주가 모세를 자기 아들로 길렀다면, 모세는 반드시 애굽의 왕자로서 최고급 교육을 받았을 겁니다. 같은 본문인 사도행전 7장에서는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사용하는 문자나 문화, 그리고 지식들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당시 근동 지방의 공용어였던 아카드어도 배웠을 겁니다. 지금은 우리가 문자를 쉽게 배울 수 있지만, 이 당시에 문자를 배운다는 것은 귀족이나 왕족만이 할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조선시대였을 때만 봐도 한자를 배울 수 있었던건 오직 양반에게만 허락되었던 것만 봐도 문자를 배운다는 것은 지금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런 위치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모세는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고 했는데, 이것은 애굽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고전문서들을 공부하고, 또 왕족으로서 반드시 알아야할 법전들도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서 받을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을 누렸을 겁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 모세는 자신이 원래 히브리인이라는 것도 모른채 철저하게 애굽인으로서 성장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스라엘의 직분자,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기 위해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어떻게 도우십니까? 바로의 딸이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불러다가 유모로 삼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 과정들을 마치 우연의 일치처럼 보이게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의 어머니를 붙이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게벳을 통해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장년으로 성장한 모세는 어느 날 문득 “자기 형제들”에게 나갔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그냥 형제들이라고 하지 않고 “자기 형제들”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모세가 히브리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모세는 애굽의 최고 교육을 받았고, 주변에는 같은 동족인 히브리인들보다는 애굽인들만이 있는 왕자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뿌리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세가 자기 형제들을 살펴보기 위해 노동 현장에 간 것은 다른 애굽인들처럼 감독하고 노역을 부과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산책하러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간 것은 자기 형제들의 형편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자신의 공동체, 자신의 교회를 심방하러 간 것입니다. 모세의 이스라엘의 직분자로서 모습이 여기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형제들의 형편을 살펴보러 갔더니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압제하기 위해 고된 노동을 부과한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죠. 여기서도 그냥 평범한 애굽의 왕자였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노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모세는 “고되게 노동”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지합니다. 고되게 노동하는 것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무거운 짐’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힘에 벅찬 짐들을 나르며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의 형편을 살피러 간 모세는 거기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바로 애굽인이 히브리인을, 11절에서 말하는 표현대로 자기 형제를 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애굽인은 노동을 감독하는 감독관이었을 겁니다. “치다”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이 단어의 원래 의미를 살리기에는 좀 부족한데요. 원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다.”, 또는 “살해다다”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자주 사람을 쳐서 죽이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바로 이 단어는 한번 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처럼 연속적으로 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데에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렇기에 애굽인이 히브리인을 친다는 11절은 히브리인이 죽을 정도로 아주 심하게 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 형제가 이렇게 심한 매질을 당하고 있는 것을 모세는 목격합니다. 보통 같으면 그냥 그런갑다하고 넘어가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인은 지배자이고, 히브리인은 노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분적 차이에 의해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치거나 죽여도 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달랐습니다. 모세에게 노예인 히브리인들은 자기 형제들이었고, 자기 형제가 죽을 정도의 심한 매질을 당하고 있는 상황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2절에서 모세는 그때 마침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 이 틈을 타 애굽인을 쳐서 죽이게 됩니다. 12절의 “치다”도 11절과 같은 단어입니다. 바로 모세는 애굽인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모세가 행한 보복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의 왕자이며, 법률을 잘 알고 있는 모세가 그 정도의 판결과 시행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예인 히브리인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은 애굽 안에서는 심각한 범죄에 속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의 시체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게 모래 속에 묻어둡니다.
이 사건에 대해 우리는 모세의 살인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세의 살인을 살인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직분자로서 부당한 대우, 심지어 죽을 위기에 처한 형제, 교회의 지체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 믿음의 행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께서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어머니를 붙여주시고,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믿음의 행동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세를 이스라엘의 직분자로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과 노력이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교회의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왕자라는 신분을 사용하셔서 그를 지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된 노동과 애굽인들의 핍박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참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상황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한다는 겁니다. 13절에서 모세는 다음 날 다시 나가봅니다. 그런데 거기서 어떤 사건이 또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데요. 이번에는 히브리 동포끼리 싸우고 있는 것을 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보라!”라는 말로 이 상황이 긴급하고 충격적인 상황이라는 것에 집중시킵니다. 모세에게 이 모습은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싸워야하는 것은 서로가 아니라 애굽인이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동료 성도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잘못한 사람을 향해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라며 꾸짖습니다. 바로 직분자로서 올바르게 교회를 치리하려는 것입니다. 모세는 왕자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잘잘못을 판단하고 상벌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세는 애굽의 왕자의 신분이 아니라 히브리인 동족,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 교회의 성도로, 교회의 직분자로서 동료를 꾸짖습니다.
그렇지만 슬픈 것은 이것을 잘못을 저지른 자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4절에서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여기서 “다스리는 자”로 번역된 단어는 ‘왕자’ 또는 ‘지도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모세는 재판관은 아니지만, 왕자로서 충분히 히브리인을 다스리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노예인 히브리인이 감히 왕자에게 대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모세를 애굽의 왕자로 보지도 않았고, 자기 동료의 지도자로도 보지 않는 아주 안타까운 상황이 펼쳐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네가 애굽인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라며 모세를 위협합니다. 모세는 히브리인을 보호하기 위해 한 행동이었는데도 말입니다. 히브리서 7장에서도 “모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제 자신이 한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바로의 귀에까지 소문이 퍼져 이 일을 알게 된 바로가 모세를 죽이고자 찾습니다. “죽이고자”라고 번역된 이 단어는 보통의 죽임이 아니라 “학살하다, 살해하다”와 같은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애굽의 법에는 같은 애굽인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특히 노예인 이스라엘인과 애굽인 사이에 벌어진 일로 인해 애굽인을 죽였으니 왕의 분노를 살 만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바로가 모세가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그 분노는 더했을 겁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모세는 더이상 애굽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얼른 애굽을 떠나 미디안으로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모세의 이야기를 보고 모세가 어설픈 구원자 행세를 하다가 자기 인생을 망친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짧은 이 네 절에 담긴 모세의 이야기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모세가 애굽의 왕자로 자랐지만, 이 사건을 통해 동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이스라엘의 직분자로 세우시기 위해 그에게 충분한 자질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혈기왕성한 청년이 불의를 보고 홧김에 저지른 살인 이야기가 아니라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자신의 백성을 언제나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가 고난 중에 있고, 심지어 핍박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보호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그리고 성도끼리 분쟁하여 다투게 되어 치리를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어 교회 성도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분쟁 때문에 치리를 받을 때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보호하시고 다스리고 계심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고 우리 교회를 절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보호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언제나 찬양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이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언제나 보호하시고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깨닫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저희의 부족함을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민감해져서 하나님께 항상 찬송과 영광을 드리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 하나님께서 저희 안에서 이러한 민감함을 주시고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입니다. 날씨가 추운 가운데서도 저희를 보호해주시고 오늘 하루도 말씀을 살아내는 하루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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