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있는 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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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자 같이
에베소서 5:15–21 (KRV)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025년은 을사년, 푸른뱀의 해이다. 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섭다. 징그럽다. 간교하다.입니다.
뱀의 입장에서는 억울할법도 하다. 구약성서에선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들어 교활함의 대명사로 낙인찍혔고,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온통 뱀으로 묘사 돼 있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뱀 같은 인간”이라고 말하면 기분 좋을 사람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뱀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도 봤던 듯싶다. 사람의 곡식을 갉아먹는 쥐의 천적인 뱀을 이로운 동물로 여겨, 담 넘어 들어온 구렁이를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다. 한 번에 10개 정도의 알을 낳아 끈질긴 생명력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리스신화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가지고 있는 치유의 지팡이는 뱀이 칭칭 감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보건기구(WHO)나 군 의무대 등의 마크에 뱀 문양을 넣은 이유인데, 뱀이 생명을 치유하거나 회복시키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창세기를 지나 민수기의 모세시대에 와서는 놋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위치가 바뀌게 되었다.
2025년 을사년 푸른뱀의 해를 맞아 뱀처럼 지혜롭고 생명력이 있는 한해를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지혜 있는 자 같이 살라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문장 처음에 나오는 ‘그런즉’이라는 단어는 앞에 있는 말씀과 이어짐을 의미합니다. 본문 앞에 있는 말씀은 한 마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몰랐고, 어두움에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빛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지혜로운 삶은 세월을 아끼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6절에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때가 악하다’는 말은 주어진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도록 유혹하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을 영어 성경 NIV에서는 ‘세월’을 ‘기회-opportunity’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기회를 최선의 것으로 만들라 말씀하십니다. 세월을 ‘삶의 자리에 주어지는 기회’로 번역한 것입니다. ‘때가 악하다’는 말은 이 기회를 잘못 사용하도록 유혹하는 혼탁한 시대라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서는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라’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이 기회를 자신의 욕망과 이익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 등장하는 두 사람을 주목해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3년 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과 함께지내는 3년 동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고 따라 다닌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뜻을 중심으로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세상은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섬기는 자리보다 더 높아지고 영향력 있는 자리에 서라고 유혹했고, 더 많은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유혹했습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그 유혹에 넘어져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넘겼습니다.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녔던 3년의 시간이 그에게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월 즉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였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다니엘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에서 잡아온 뛰어난 젊은이들을 나라의 인재로 삼고자 했습니다. 왕은 교육을 받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좋은 음식을 아낌없이 제공 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먹는 음식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음을 알게되고, 음식 맡은 환관장에서 왕이 주는 고기와 포도주가 아닌 채식으로 줄것을 요청했습니다. 환관장은 만약 그렇게 해서 너희들이 왕 앞에 설 때에 초췌한 모습으로 서면 내가 죽임을 당할 수가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다니엘은 그러면 열흘간 비교 해 보고 다른 사람들보다 괜찮으면 채식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환관장이 그렇게 허락을 하고 열흘 후에 보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얼굴이 다른 소년들 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환관장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원하는 대로 채식을 하도록 허락합니다. 3년 후에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섰을 때 그들의 준수함과 지혜로움이 드러나 왕의 택함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바벨론 궁정에서 보낸 3년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어리석은 모습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내버린 어리석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가 선택한 것은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선택한 3년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복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도 예수님을 따르는 3년의 시간, 기회가 주어졌고, 다니엘에게도 동일하게 3년이라는 시간,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과 기회를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하였느냐에 따라 그들의 삶의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멸망이 되었고 한 사람에게는 구원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신 것입니다.
하루24시간, 일주일, 한달 그리고 일년 365일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시간은 양적(quantity)인 시간 개념과 질적(quality)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시간을 어떤 개념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양적인 개념의 시간으로 인생을 살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가 삶의 기준이 됩니다. 오래사는 것도 인생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장수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살았다고 해서 그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고령화 시대에 찾아오는 인생의 위기를 보면 오래산다는 것이 무조건 복된 것만은 아님을 알게된다.
질적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인생을 살면 ‘무엇을 하면서 살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삽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분명한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얼마나 살았느냐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그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지혜가 없는 사람과 지혜가 있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시편 90편에 보면 모세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한 순간처럼 지나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는 10절에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모세는 인생의 시간을 양적인 시간 개념으로 계산하지 않고 질적인 시간 개념으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 남아있는 날을 계산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단순히 더 살 수 있는 날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사는 지혜를 갖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사상가 가운데 다석 유영모 선생이있습니다. 그 분은 일일일생을 주장한 분입니다. 하루가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고 저녁에 잠들면 그것은 죽은 것이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면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인생을 하루살이에 비유하며 단 하루를 사는 것처럼 살자고 이야기합니다. 그 분은 자신이 몇 년을 살았다고 말하지 않고 몇 일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70년을 살았다면 그 분은 25550일을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개념으로 보면 만약 우리들이 앞으로 10년을 더 산다고 하면 3650번을 자고 일어나면 죽는 겁니다. 20년을 더 산다고 하면 7300번을 자고 일어나면 죽습니다. 30년을 더 산다면 10950번을 자면 죽습니다. 결국 인생이란 몇 번을 자고 일어 난 후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면서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세월을 아끼라 말씀하십니다.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뜻에 따라 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업적이나 사역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에게 매일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인생도, 가정도, 직장도 작은 것에 성실한 것들이 모아져 건강한 인생, 건강한 가정, 건강한 직장과 교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재물의 복을 주시지 않아서, 건강을 주시지 않아서,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주시지 않아서 라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도 큰 사역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곳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며 순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작은 일에 성실하며 순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25년입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뱀처럼 지혜롭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 감당하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