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권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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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27-33) 1. 도전받는 권위, 드러나는 본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 우리는 뿌리까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통해 형식적인 신앙의 허무함과 심판의 엄중함을 목격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충격적인 사건 직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긴박한 대결, 권위 논쟁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깊은 진리의 울림을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 때,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이 위압적인 태도로 다가와 쏘아붙입니다.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세를 주었느냐?” (마가복음 11:28). 여기서 '이런 일'은 단순히 전날의 성전 청결 사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 전반, 즉 세리와 죄인의 친구 되심,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는 이적,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는 혁명적인 가르침, 그리고 자연의 질서마저 굴복시키는 경이로운 권능까지 아우르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마치 “감히 누가 우리 영역을 침범하는가!” 라고 외치는 듯한, 그들의 기득권과 권위에 대한 강렬한 도전이며, 예수님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려는 날카로운 시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가 자신들이 쌓아 올린 견고한 종교적 권위 체계, 즉 율법 해석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던 권력을 위협한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자신들만이 진리의 수호자요, 백성을 인도할 유일한 권위자라는 듯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날카로운 질문, 이 첨예한 대립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질문 앞에 섭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이 옳은가?" 그리고 "누구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존재 이유를 묻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권위’의 본질, 인간이 만든 질서와 하나님의 뜻 사이의 갈등, 그리고 진정한 권위에 대한 순종의 의미를 탐구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이 여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누구의 권위 아래 서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고, 참된 권위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2. 덫을 놓는 질문, 역설 속에 드러나는 진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그들의 교활한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정면돌파 대신 역설적인 질문으로 응수하십니다. 마치 노련한 검객이 상대의 공격을 되받아치듯 말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마가복음 11:30). 이 질문은 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덫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적인 신앙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신 것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하늘로부터”라고 답하면, 진실과 정의의 선지자 요한을 핍박하고 죽인 자신들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고 답하면, 요한을 진정한 선지자로 존경하고 따르는 분노한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비겁하게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마가복음 11:33)라고 발뺌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의 고백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을 알고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거부, 진리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는 영적 소경됨을 나타내는 절규입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에게 두려움 없이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요구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쌓아 올린 권위와 기득권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에게 진리는 위협이었고, 불편한 짐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실보다 거짓된 평안을,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욕망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와 유사한 딜레마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삶의 변화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 진실을 회피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알지 못하노라”는 핑계를 대며,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고 싶은 유혹 말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회피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외면할수록 더욱 곪아 터져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책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적 가면을 벗기고, 그들의 위선과 불순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거울과 같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보시는 분이며, 우리를 진정한 회개와 변화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만이 우리를 진정한 자유와 생명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3. 권위의 근원: 하나님의 뜻인가, 인간의 욕망인가?

이제 우리는 본문의 핵심, ‘권위’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전적으로 권위는 “남을 지휘하고 감독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권위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며, 인간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듯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 지도자들은 율법과 전통이라는 ‘인간이 만든 질서’를 절대적인 권위로 둔갑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듯, 백성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권력과 명예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과 탐욕에서 비롯된 거짓 권위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진정한 권위의 의미를 다시금 정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는 결코 억압과 착취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과 섬김의 통로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권위는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인을 용서하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의 권위였습니다. 반면에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권위는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억압하며, 결국에는 파멸과 죽음으로 이끕니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명확히 분별하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권위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 직장, 교회, 그리고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 진정한 권위가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4. 뿌리 깊은 불신앙, 겉과 속이 다른 신앙

지난주 우리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극을 통해 겉만 번지르르한 신앙의 위험성을 경고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유대 지도자들은 그 경고의 살아있는 증거와 같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수호하고, 성전을 지키는 신실한 지도자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내면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이 결여된 텅 빈 껍데기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그토록 기다리던 구원자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분을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보물을 바로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고 걷어차 버리는 어리석은 자와 같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줍니다. 우리 역시 겉으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내고, 봉사 활동을 하며, 종교적인 의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이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순종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면, 우리의 신앙은 뿌리 깊은 나무가 아닌,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작은 시련에도 쉽게 흔들리고 무너져 내리는 연약한 신앙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진실한 회개와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단지 겉모습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삶의 열매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5.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 굴복이 아닌 온전한 순종

그렇다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전 인격을 그분께 드리는 온전한 순종,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의 주권 아래 두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그분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성경 말씀을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 되어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합니다. 둘째,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명예를 끝까지 붙잡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자신의 욕망과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주인 된 삶"에서 "예수님이 주인 된 삶"**으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치열한 영적 전쟁입니다. 셋째,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삶을 추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사랑을 실천하고, 섬김의 본을 보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6. “말씀하옵소서, 듣겠나이다”

유대 지도자들의 “알지 못하노라”는 대답은 진리에 대한 고의적인 외면, 영적 무지와 완악함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도 인정하지 않았고, 빛을 보고도 어둠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대신 우리는 어린 사무엘처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사무엘상 3:10)**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책망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생명과 진리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7. 결론: 주님의 권위 아래, 참된 자유와 생명을 누리는 삶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대 지도자들의 실패는 인간의 욕망과 교만이 빚어낸 비극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 대신 자신들의 권위를 앞세웠고, 결국 멸망의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오직 주님의 권위만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 제가 듣겠습니다. 제가 알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따르겠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십시오. 주님의 권위 아래 거하는 삶은 결코 억압과 속박이 아닙니다. 그것은 참된 자유와 기쁨,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축복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 거하는 삶은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은혜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능력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권위 아래 온전히 거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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