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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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장 15-22절
1장 7절에 보면 나오미는 두 며느리와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8절에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9절에서는 두 며느리가 새로운 남편을 만나서 위로를 받고 살아가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두 며느리는 소리를 높여 울면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나오미가 11절에서 13절까지 두 며느리가 자신을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두 며느리가 자신과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별다른 소망이 없고, 앞날에 대한 보장도 없으니 떠나라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말을 듣던 두 며느리 중 오르바는 결국 시어머니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룻은 계속해서 시어머니의 곁을 지키게 됩니다. 이러한 중에 15절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말을 합니다. “네 동서가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갔으니 너도 동서를 따라서 가라” 나오미의 말에서 룻이 나오미를 떠나는 것이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인지를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며느리들에게 친정어머니에게로 돌아가라고 했고, 새로운 남편을 만나라고 권했습니다. 이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인 나오미와 헤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고, 더 이상 이스라엘 사람의 며느리도 아내도 아닌 모압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르바는 시어머니의 권면을 따랐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가기 위해서 짐을 싸고 길을 나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걸음을 돌려 자기 백성과 자기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신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룻의 차례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오르바처럼 자신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룻은 놀라운 대답을 말합니다. 16-17절에서 룻은 총 5개의 내용으로 나오미의 권면에 대한 답을 합니다.
첫째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둘째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다고 말합니다.
셋째로,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넷째로,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섯째로, 죽음 이외의 이유로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룻의 이와 같은 대답은 실로 놀라운 대답입니다. 왜냐하면 그저 시어머니를 잘 모시겠다는 정도의 고백이 아니라, 이 고백에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떠나지 않겠다는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답들을 잘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담겨져 있습니다.
룻의 대답의 중심은 세 번째 대답에 담겨져 있습니다. 곧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룻은 사실상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그 백성에게 속하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룻의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생각할 것들이 있습니다.
사실 나오미에게 있어서 룻은 흠입니다. 남편과 아들들이 다 죽었는데, 이방인 며느리를 달고 나타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결코 긍정적인 대답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또한 룻이 따라오는 것을 나오미가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고향 땅의 사람들이 룻을 받아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나오미가 죽고 난 이후에 룻이 혼자 남겨지게 된다면, 과연 이방여자이고 과부인 룻이 혼자서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상황이 전혀 아닙니다.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모압의 여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룻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 이스라엘 사람들의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룻은 모압이 섬기는 신이 아닌 이스라엘이 섬기는 신, 곧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이라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어떠한 수모를 겪고 어떠한 어려움을 겪게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시어머니를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에는 그곳에서 모압 출신 여자라는 것으로 어떠한 멸시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그곳에서 살고 죽겠다는 것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을 그저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한 룻은 시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서 자신도 죽어서 거기에 장사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가족들이 한 무덤에 묻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묻히는 곳에 자기도 묻히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잘 모시다가 돌아가시면, 그 후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그 지역에서 백성으로 함께 살다가 죽어서까지 어머니를 따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이러한 대답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대답을 더욱 확실하게 나타내주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서 룻은 자신이 죽는 것 이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한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고대 근동에서 언약의 형식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즉, 룻이 나오미를 따르겠다는 것이 그저 즉흥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는 언약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룻의 고백은 총체적으로 놀라움을 줍니다. 룻의 환경을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고백이 얼마나 기이한 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룻은 결혼하기 전까지 그모스 신을 섬기는 모압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그모스신은 인간을 번제로 요구하고 음란한 신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과는 원수입니다.
룻이 경험한 하나님은 시아버지와 남편과 그의 형제를 치신 하나님이십니다. 룻이 그저 인간적인 눈으로 하나님을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도저히 룻의 환경과 경험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이유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불가능한 고백이 룻에게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젊은 과부가 살 수 있는 길은 재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향인 모압을 떠나지 않는 것이 더욱 유리할 것입니다. 그러한 곳을 버리고, 자신의 시댁에 죽음과 고난을 내리신 하나님을 섬기겠다며 시어머니를 따라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룻의 이러한 결정과 고백은 인간의 의지로만 결정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의지는 이러한 결정과 고백을 역행해야 정상입니다.
결국 우리는 룻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가 부어졌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사람의 뜻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디도서 3장 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이 말씀처럼 룻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힘입었습니다.
룻은 이방여인이었고, 불행이 연속해서 찾아온 사람입니다. 그에게 어떠한 가치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은혜를 부으셨습니다. 이방인이었으나, 언약의 백성처럼 여호와를 따라 살겠다는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과 같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의 가르침처럼,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는 것의 배후에는 성령님께서 자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의지와 결단에 의한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나, 참된 구원에 이르는 모든 영적 활동에는 삼위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하는 것입니다.
룻은 이방인이었고, 빛 되신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압으로 이주해온 나오미의 가족들을 통해서 빛 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어두운 마음에 복음의 빛을 비추셔서 하나님을 의존하는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하나님이 없는 인생으로 살다가 죽을 존재들이었으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은혜의 빛을 비추셔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생명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하셨습니다.
룻이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구원 얻는 믿음을 갖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모압여인인 룻이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었던 일은 엘리멜렉이 자기 가족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룻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며 함께 살았던 것이 결국에는 이방여인인 룻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멜렉의 잘못된 판단조차도 사용하셔서 룻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룻이 비록 남편과 가족들을 잃는 고통을 겪고, 시어머니와 힘든 삶을 살게 되었지만, 룻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었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아픔과 괴로움이 있습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우리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사용하셔서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사람의 판단으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룻에게 허락되어서 룻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22절의 말씀에서 두 과부가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추수가 시작될 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오미는 괴로움 속에서 베들레헴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은 추수의 기쁨 속에 있었습니다.
모압 지방에서 괴로움 속에서 살던 두 과부가 베들레헴의 기쁨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모압에서는 생명의 끊어짐을 경험했던 두 사람이 베들레헴에서는 생명의 이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기 때문이고, 하나님께 돌아온 배경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이라면, 때로 여러분에게 찾아오는 괴로움으로 절망에 빠져만 있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에게 괴로움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가 슬픔 속에서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선하신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잠시 허락된 괴로움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거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 드러내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룻과 나오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십시오. 불순종했던 나오미를 순종으로 이끄시고, 이방인이었던 룻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에게 보내셔서, 구원을 베푸시고자 하십니다.
룻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아니 그보다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십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베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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