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Notes
Transcript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장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5장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4장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어요.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수많은 민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셔요.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느거예요.
지금도 하나님은 나 한사람을 선택하셨어요. 부르셨어요. 꿈을 꾸셔요.
너를 통해서 수 많은 민족이 복을 받기를 원한단다.
내가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겠다거 하셔요.
우리는 수많은 복을 원하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은 쇠하지 않고 시들지 않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축복이래요.
예수그리스도이셔요.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셔요.
세상에 매이고 묶이고 눌린자를 풀어주시기 원하셔요.
아파하는자 고통받는자를 치유하시기 원하셔요.
복음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기를 원하셔요.
그 한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내가 되기를 원하신데요.
하나님을 믿는자 아브라함은 떠났어요.
하나님을 믿는자 아브라함은 머물렀어요.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보게 될것을 기대하며
그 땅에서 예배를 드렸어요.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어요. 순종으로 믿음을 보여주었어요/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의롭다. 옳다, 인정해주셨어요.
하나님이 유심히 보시는 그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어요.
주님 저도 믿음으로 이곳에 머물러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당신을 의지합니다. 신뢰합니다.
주제 1강 : 하나님만 의지해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이 자리에 불러주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믿음을 배우겠네요.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가르쳐주신데요.
친구들 아브람을 들어본 친구도 있고 처음 듣는 친구도 있을거예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전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너도나도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지어서 아주 유명한 이름이 되었어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키우신 하나님을 들어봅시다.
제목과 말씀을 읽어봅시다. 창세기 12장 1-9절
아브라함의 예전 이름은 아브람이었어요.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어요.
갈대아 우르는 티그리스와 유브라데스 강을 끼고 있어서 물이 있고 나무가 우거지고 땅에는 먹을 거리가 풍부하였어요.
시장도 있고 병원도 직장도 학교도 잘 갖추어진 근사한 도시였어요. 아브람의 친척들은 갈대아 우르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살았어요. 할아버지 작은아버지 친척들과 모여서 고기도 구워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재미나게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갈대아 우르의 안좋은 점이 있었어요. 잘먹고 잘 살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몰랐어요.
그들은 우상을 만들어서 절을 하며 더 잘살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냈어요.
아브람의 조상들은 그곳에서 우상을 조각하여 만들어서 파는 일을 했어요. 하나님은 우상을 싫어하시잖아요.
그런데 이런 우상을 많이 팔아야 부자가 되겠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지 않았어요.
어쪄면 아브람도 집안의 가업을 물려받아서 우상 만드는 일을 했지을지도 몰라요.
아브람은 풍요로운 갈대아 우르에서 아내 사래와 결혼하였어요. 결혼한지 오래되었지만 이브람의 나이가 75세가 될때까지 아이가 없었어요. 그 당시 사회에서는 아이가 없다는 저주받았다고 여겼어요. 지질이도 복도 없다고 수근거렸어요.
아브람은 잘 먹고 잘 살았지만 소망이 없었어요. 꿈이 없었어요. 인생에 기쁨이 없었어요.
이렇게 자식없이 살다가 가나보다~ 하루하루가 그저 그런날로 살고 있었어요.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똑똑 두드리시며 찾아오셨어요. 수 많은 사람들중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찾으시고 부르신거예요.
얼머나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닌가요? 수 많은 사람들중에 하나님이 나를 주목하셨다니요~ 친구들도 가슴이 떨리지 않은가요?
이 시간도 수많은 세상 사람들중에 나를 찾아와서 똑똑 두드리셔요.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어요.
하나님 : 너는 본토 친척 너의 아버지 집을 이제는 떠나라. 그리고 내가 가라고 하는 가나안땅으로 가거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금부터는 믿음으로 시작해라~ 믿음의 출발을 해라~ 하셨어요.
믿음으로 살자 않았던 예전의 장소와 너의 모습에서 떠나라고 하셔요.
지금까지 아브람을 지켜왔던 삶의 경계선이 있었어요. 우리는 어느정도 안정된 나의 경계선을 만들고 살아가요.
나의 경계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열심히 돈도 벌고 공부도하고 열심히 나의 장래 계획도 세우고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지요.
역시 아브람도 75세까지 살아온 갈대아 우르의 경계선이 있었어요. 부모님과 형제들과 친척들이 나의 든든한 빽이 되어주었어요.
친구들과 지금껏 알아온 나의 인맥들을 관리하면서 유지하면서 어울리면서 살아왔어요.
오랫동안 살아온 나의 집과 익숙한 직장과 어느 정도 안정된 재산이 이곳에 있었어요.
갈대아 우르는 어디를 가도 아브람이 다 알아요. 맛집이 어디인지? 명의가 계신 병원이 어디인지?
하루하루 살아온 지식이 이곳 갈대아 우르에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곳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셔요.
이곳에서 믿음의 출발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왜 그럴까요?
이곳에서는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을거거든요. 지금처럼 살아갈거든요. 결코 믿음을 배우지 못해요.
결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해요.
그리고 갈대아 우르는 우상을 숭배하는 곳이예요. 몸부림치다가도 다시 우상을 만드는 직업으로 돌아갈수 있어요.
친구들처럼 부모님처럼 우상과 함께 아무 생각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를실때에 우리의 경계선을 넘으라고 하셔요.
우리는 나의 생각과 판단을 의지해요. 나의 생각과 판단에 맞지 않으면 한걸음도 걸으려하지 않아요.
우리는 고집이 세요. 자존심이 강해요. 우리는 사실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의 명령을 듣고 살기를 싫어해요.
내가 잘해서 내가 머리 굴려서 열심히 살아보아요. 미래를 계획하고 든든한 보험을 들어두어요.
그래서 나만의 성을 쌓고 나만의 친구들, 나만의 방을 나만의 비밀공간을 만들고 경계선을 그어요.
내일 아침에 무엇을 먹고 이 돈으로 무엇을 사고 내년에는 중학교에 가겠지~
어느 정도의 예상이 되어야 안심이 되잖아요.
우리는 경계선을 넘으면 죽을것같고 두려워서 망설이지게 되어요. 그 경계선 안쪽은 하나님도 들어올수 없는 공간이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만의 경계선에서 이제 나오라고 하셔요.
나없이 살았던 너의 경계선을 이제는 넘어라~ 너를 고집하지 말고 이제는 믿음으로 시작해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의 경계선을 넘어서 내가 가라고 하는 곳으로 출발해라하셔요.
누가 가라고 하시는곳, 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곳으로. 나를 떠나보내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시작하라고 하셔요.
그런데 가야할 곳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지 않으셔요.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먹고 살지, 어떤 일이 생길지, 집은 있는지, 친구는 있는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누구의 말씀대로 출발해요? 하나님이요. 누구를 의지하여 출발해요? 하나님이요. 누구와 함께 출발해요? 하나님이요.
떠나야만 우리는 오로지 할수없이 어쩔수없이 누구만 의지하게 되어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어요.
믿음의 짝궁은 순종이예요.
믿음은 순종으로 시작하는거예요.
믿음은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나를 이끄시는 분,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순종의 걸음을 걷는거라고 하셔요.
믿음은 순종으로 걸어가면, 순종으로 몸을 움직이면 그때에서야 조금씩 믿음이 이거구나~ 실체를 알게 된데요.
믿음은 순종으로 걸어가봐야~ 믿음이 이거였어~ 경험하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거래요.
자리에 앉아서 아멘~ 믿습니다. 그걸로는 결코 살아있는 믿음을 배울수가 없데요.
순종으로 살아내야만 살아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수있데요.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셨어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 : 너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내가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줄 것이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려고 부르신거예요. 가보지 않는 땅에 가서 고생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주실 복은 째째한 복이 아니였어요. 아브람이 생각할수 없던 어마어마하고 광대한 꿈을 품고 계셨어요.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3가지 약속하셨어요.
첫째는 큰 민족을 주시는 약속이예요. (플랭카드를 보고 읽어봅시다.)
I will make you into a great nation.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둘째는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이예요.
내가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할거야~ I will make your name great.
셋째는 아브람이 복이 된다고 약속하셨어요.
I will make you a blessing. 너는 복이 될거야~
친구들 지금 아브람은 자식이 없어요. 자식이 없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데 하나님은 아브람으로 위대한 민족을 만드실거래요.
우와~ 자식하나 없어서 쪼그라든 아브람을 통해 어마어마한 민족을 이루신다네요.
숫자만 어마어마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일을 이루는 민족이 되게 하신데요.
어떤 민족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죽이고 괴롭히는 민족들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한 민족으로 세상 열방이 복을 받게되는 민족이 되게 하신데요.
이 민족을 통해 다른 민족이 살아나게 하신데요. 늙은 아브람에게 자식을 주신다는 약속이예요. 아브람은 깜짝 놀랐을거예요.
둘째는 아브람이란 이름을 유명하게 하신데요.
갈대아우르에서 우상 만드는 이름없이 살다가 죽을 아브람을 유명하게 위대한 사람으로 바꾸신데요.
75세의 아브람은 도저히 그런 꿈을 꾸어본적도 없었어요. 내가 뭘~ 내가 이제서 뭘~ 쪼그라들고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아브람으로는 할수 없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데요.
믿음으로 순종의 걸음을 걷는 자를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으로 세워주신데요.
우와~ 믿음의 출발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요?
우와~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일방적으로 선포하시는 거예요. 약속하시는거예요.
믿음의 부르심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요? 나같은 이름없는 늙은이를 부르시다니요? 아브람은 깜짝 놀랐어요.
셋째는 아브람을 복이 되게 하신데요.
친구들 모두 복을 좋아하잖아요. 복을 받고 싶어서 세계 모든 나라들은 복받으세요~ 라는 말을 제일 좋아한데잖아요.
그런데 그 복이 나에게서 나오게 하신데요. 복 좀 주세요~ 복 좀 나누어주세요~ 쫓아다니고 구걸하지 않아요.
바로 그 복이 나에게서 나오게 하신데요. 어떻게요? 맞아요. 우리 안에는 복이 없어요.
우리 안에는 나오는 것이 욕이요, 저주요, 미움이요, 원망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나를 복게 하셔서, 나에게서 복이 흘러나오게 나를 만드신데요.
내가 있으면 우리 집이 복이 흐르는거예요. 내가 이 친구를 만나면 나에게서 복이 전달되는거예요.
내가 직장에 가면 그 직장에서 콸콸 복이 흘거나오는거예요.
나를 복의 저수지가 되게 하시는거예요. 나에게서 복이 나오는거예요.
예전에는 나에게서 저주만 나왔는데요. 이제는 내가 축복하면 축복이 이 사람에게, 저사람에게 전달되게 하신데요.
축복의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나를 바꾸신데요.
친구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이예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흘러보내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예요.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약속하셔요.
내가 너로 복의 저수지가 되게 할거야~ 복이 흘러나오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할거야~
친구들~ 아브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도 부르셔요.
이수야 너는 복이 될거야~ 주호야 너는 복이 될거야~ 예담아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할거야~ 주환아 너로 큰 민족을 이룰거야~
서아야 너에게 축복의 권한을 줄거야~ 민하야 너로 인해 저주가 멈추고 축복이 시작될거야~
소연아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어줄거야~
하나님은 지금 우리도 부르셔요. 지금 우리와도 약속하셔요.
그러니 너는 이제부터 너로 시작하는 것은 그만해라~ 나로 시작하는 믿음의 여행을 걸어봐라~ 하셔요.
믿음의 출발을 하라고 하셔요. 순종의 걸음을 걸으라고 하셔요.
우리의 아브람은 위대한 부르심을 따라서 갔을까요? 싫어요. 살던데로 우상만 만들고 살거예요? 했을까요?
우리의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어요. 순종으로 믿음의 걸음을 시작했어요.
아브람 : 그래~ 나는 복의 저수지야~ 내가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내가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될거야~
나는 복덩어리야~ 세상 복이 나에게서 나올거야~
(아브람과 사래는 손을 잡고 떠난다 롯도 함께 떠난다.)
친구들 아브람이니까 가능했지 않아요? 아브람도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을거예요. 먹을 거없어지면 하나님 어떻게 해요? 물었을거예요.
우리 마을에서 떠나라고 사람들이 몰려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안고 혼자 몰래 울었을지도 몰라요. 하루하루가 가슴이 쫄깃쫄깃했어요.
내일은 어디로 가지 잠이 들면서도 허허 웃을거예요~ 이 나이에 가슴 떨리게 살아보네 허허허 웃었을거예요.
그래도 아브람은 걸었어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걸었어요.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며 걸었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나는 몰라요.
이길을 걷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요. 이 사람들을 만나야하는지 마음에 와닿지 않아요.
그래도 나의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복이 되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이제는 저주로 살지 않으렵니다. 저는 이제 복으로 살렵니다.
내가 가는곳이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내가 서있는곳에서 나로 하여금 복이 흘러가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나를 복되게 하실 나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는 오늘도 믿음의 여행을 계속합니다.
우리 친구들도 아브람처럼 믿음의 출발을 이 시간 결단합시다.
출발이 없으면 결승점은 관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요.
조종사되시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의지하며 믿음 비행기에 올라탑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도 약속을 품고 순종의 걸음을 걸어갑시다.
조별로 나와서 약속의 말씀을 나의 영혼이 들려지도록 선포해보겠습니다.
I will make you into a great nation.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I will make your name great. 내가 너의 이름을 창대하게 할거야~
I will make you a blessing. 너는 복이 될거야~
우리 모두 한 목소리로 기도해봐요.
★ 저도 나의 경계선을 넘겠습니다.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께로 걸어갑니다.
★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 손을 꼭 잡고 출발합니다.
★ 이제 저주의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축복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의자에 앉아있는다.)
우리의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났어요. 순종으로 믿음의 걸음을 시작했어요.
아브람 : 그래~ 나는 복의 저수지야~ 내가 축복하는 사람은 복을 받고 내가 저주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될거야~
나는 복덩어리야~ 세상 복이 나에게서 나올거야~
(아브람과 사래는 손을 잡고 떠난다 롯도 함께 떠난다.)
믿음은 순종으로 표현하는거예요.
믿음의 짝꿍은 순종이예요.
우리의 믿음을 우리는 순종으로 하나님께 보여드려요.
우리도 믿음의 출발을 합시다.
우리가 떠나야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복의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무엇을 떠나야할까요?
나만 위해 살던 나를 떠나야해요.
우리는 어디에 가서 거해야할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곳에 잠잠히, 묵묵히 오늘도 거해야해요.
그러나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썩습니다.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더럽습니다. 그 영광이 금방 쇠해 버립니다.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습니다. 세상권세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무리 아름다워도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는 뜻입니다. 젊어서 그렇게 예뻤던 친척들도 오랜만에 명절에 만나보면 왜 그렇게 삭아 버렸는지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처럼 울지 않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샤 원정을 갔을 때 고레스 왕의 묘비를 보고 울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한때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결국 한 개의 무덤 밖에 남는 것이 없구나” 세상권세와 영화는 잠깐이요, 순간에 사라집니다. 지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시고 약속하십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네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 것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자신이 축복이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신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이 축복이 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힘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생명과 힘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이요, 생명력 왕성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후 그들을 축복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9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생명력이 왕성해야 합니다. 외적, 내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없이 비실비실해서는 결코 생육하며 번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며 번성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말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생명력을 주셨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냥 말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하신다고 하셨을 때 생육하고 번성할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닙니다. 큰 민족을 이룰 만한 내적, 외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생명력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백 세가 되어서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그런 생명력이었습니다. 백 세가 되어서도 아기 낳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그런 내적 생명력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고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은 우상 숭배의 땅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여호와 신앙에 대해서 적대적인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가나안의 정신적 환경을 이기며 살기 위해서는 많은 내적 힘이 필요했습니다. 자기 소신이 필요했습니다. 내적 힘이 없으면 가나안의 정신적 환경에 눌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그런 환경을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 그 땅에 기근이 닥쳤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갔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아내 사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집트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말하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이렇게 말할 때의 아브라함의 내적 힘이 어떠했을까요? 약했습니까? 강했습니까? 물론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지켜주셨습니다. 아내 사래를 지켜주셨습니다. 이집트 왕 바로가 사래를 궁으로 데려갔으나 하나님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놀라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말하고 사래를 돌려보냈습니다. 그 모든 일을 보고서 아브라함의 마음은 다시 강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는데, 불신적인 환경을 이길 얻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믿으며 살고자 할 때 불신의 환경을 이겨내는 것이 큰 과제입니다. 불신의 환경을 이기려면 내적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힘이 어디서 옵니까?
둘째,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중 한 가지가 이것입니다. 3:18,19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이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가인의 때에는 그보다 더 심해졌습니다.
4:11,12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의 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남의 것을 빼앗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카로운 도구들을 만들었고 사람 죽이는 검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후로 사람은 수고해야만 먹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이는 험악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갈 때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집트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말하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면 여자의 남편을 죽이고 여자를 데리고 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왕들의 전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들이 필요하면 동맹을 맺기도 하고 또 깨기도 합니다. 서로 전쟁하는데, 고대 전쟁은 약탈 전쟁이었습니다. 그런 시대 속에서 아브라함도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남의 것을 빼앗아야 했습니까? 아브라함도 다른 사람들처럼 사나워야 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십니다. 축복하신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자기 힘으로 살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사나운 마음을 품고서 엉켜 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니 그렇게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축복하고자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자기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살게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이 뭔가 잘했기 때문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했기 때문입니까?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은 후로 사람은 자기 힘으로 살아야 했고 서로 다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사회는 영원한 경쟁사회가 되었고 사람 사이는 살벌해졌습니다.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온유는 사라지고 사나움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자기 힘으로 사는 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축복의 역사가 하나님의 본래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생명체들을 축복하셨고, 사람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사람을 먹이고 기르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 6:25)
그런데 사람이 자기 힘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런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의 축복의 일을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그 일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하실까요? 그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어쩌면 아브라함에게는 자기를 의지하고 자랑할 만한 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아니면 비록 자랑할 것은 있지만 아브라함 자신이 겸손해서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브라함은 사는 동안에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쳤습니다. 그런 때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12:10절에 기록된 기근이 아브라함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심했다고 했습니다. 요즘이라도 기근은 해결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하물며 고대는 어떠했겠습니까?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한 기근에서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기근을 피하여 할 수 없이 이집트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라.” 기근을 피해서 갔는데, 거기에 새로운 문제, 아브라함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입니다.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아브라함은 아내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아내 때문에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2:14,15 “아브람이 이집트에 이르렀을 때에 이집트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 들인지라.” 이 일 앞에서도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자기가 사래의 남편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뭔가 해보려고 안달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으면 그냥 가만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일을 시작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아브라함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로가 사래를 데리고 갔을 때 여호와께서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사래를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복이 됩니다.
이후로 아브라함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배웁니다. 자기 능력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을 배웁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했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축복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땅에 대한 약속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너는 축복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란 고상한 아버지란 뜻입니다. 고상한 아버지인데, 아직 아들은 없습니다. 고상한 아버지 아브람에게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이제 이후로 아브람은 자기의 계획이나 생각을 따르지 않습니다. 혹은 친족이나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곳으로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으로 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생각, 판단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하면 아브람은 어떻게 됩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본문에서 말하는 큰 민족은 단순히 수만 많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민족’은 곧 나라인데, 이방 나라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조상으로 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 나라는 기존의 나라들과는 다른 나라, 기존의 나라들 편에서 보면 이방 나라인 그런 나라를 말합니다. 기존의 나라들은 신을 믿고 섬기되 여러 신들을 믿습니다. 한 나라에 여러 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나라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깁니다. 여러 신들을 믿는 나라들 편에서 보면 한 신만 믿는 아브람의 나라는 이상한 나라, 낯선 나라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신은 많을수록 좋은데 아브람의 나라는 어째서 한 신만을 믿고 섬길까? 한 신으로 충분할까? 그들은 이런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탐심을 바탕으로 해서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고 빼앗습니다. 영토를 넓혀갑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나라는 “탐내지 말라”는 여호와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 나라는 힘이 있어도 다른 나라를 침략, 공격하지 않으며 빼앗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를 돕고자 합니다. 그런 점에서도 아브람의 나라는 이상합니다.
다른 나라는 경제력,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힘을 자랑합니다. 자기들 힘을 씁니다. 칼과 창을 믿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나라는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바탕으로 살아갑니다. 사람의 힘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랑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시작으로 하여 이런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큰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서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고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 너는 축복이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축복할 것이다.”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말에서 축복하다는 말은 힘 있게 하다. 번영, 성공하게 하다. 이런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힘 있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성공하게 하고 번영하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을 크게 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람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브람이 자기 힘으로 살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자기 힘과 노력으로 성공하고 번영하지 않습니다. 혹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힘 있게 하시고 성공, 번영하게 하십니다.
“너는 축복이 될지라.”
아브람의 존재,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아브람의 삶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누구든 아브람을 보면, “여호와께 축복 받은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저주를 끊고 축복을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저주에서 축복으로 전환하고자 하십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으니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이니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을 것이다.” (창세기 3:17-19)
사람은 수고하여 애써야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으니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않을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 (창세기 4:10-12)
가인과 그 후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종 예리한 기구들을 만들어 농사를 지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빼앗기 위해서 사람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가인의 후손 중에 라멕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일곱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창세기 4:23-24)
그 후 노아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폭력이었습니다. 힘 센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했습니다. 폭력의 시대를 살기 위해서는 모두들 자기 힘을 길러야 했습니다. 자기 힘을 길러서 다른 사람을 눌러야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신 만큼 사람들은 더 많은 힘을 써야 했습니다. 힘쓰고 애써야 먹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저주 받은 땅에서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속이고 빼앗고 죽이고,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며 살았습니다. 억울한 사람이 생겨났고 억울한 피가 흘려졌습니다. 저주 받은 땅에서 사람들을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 방법들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인간관계는 이익의 관계였고 만인 대 만인의 관계는 이리의 관계, 곧 서로 먹으려고 하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양보, 사랑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사람의 힘이 강조되고, 그런 만큼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는 사람에게 가려졌습니다. 세상은 사람이 지배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사람의 힘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저주의 역사, 사람의 힘의 역사를 끝내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를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사람이 사람 자신의 힘만으로 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게 하십니다. 사람의 힘만으로 성공하고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성공하고 번영하는 것을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자신의 힘과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사람의 힘에 가려져 있던 여호와 하나님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너는 내 영광을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이를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나라를 이루고 너를 축복하고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 너는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왜 아브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십니까? 왜 다른 사람이 아닌 아브람이 축복이 되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그냥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아무나 고르셨는데 아브람이 골라진 것입니까?
아브람의 생애 전체를 보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자기 생각, 자기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생각, 계획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브람도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판단이 있는 인물입니다. 12:10 절에 보면, 아브람은 기근의 때에 자기 판단과 결정을 따라서 이집트로 갑니다. 아브람은 몸에서 난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상속자를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롯을, 그 후에는 다메섹 엘리에셀을, 그 다음에는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정한 상속자를 가리켜 네 상속자가 아니라 말씀하셨을 때 아브람은 그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삭을 상속자로 정했습니다. 아브람은 자기 생각, 판단이 있었지만,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셨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축복이 될 것이다.”
아담이 선악 열매를 따 먹은 후, 곧 사람이 하나님 같이 되어 선악을 알고자 한 후로부터 사람은 자기 생각, 판단을 고집하게 되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드린 자기 선물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지만, 가인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선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고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의로운 아벨을 돌로 죽이는 악을 행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후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가득하라.” (창세기 1:28) 그러나 노아 홍수 이후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지지 말자.” (창세기 11:4)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 사이에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언어를 따라 사람들이 각 족속으로 나누어졌고, 족속들끼리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인간사회에 갈등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을 고집할 때 갈등, 싸움, 살인에 의한 죽음이 밀려왔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갈 때 아내 사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집트 사람들이 볼 때에 말하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창세기 12:11-12) 그래서 아브람은 살기 위해서 아내를 아내가 아니라 여동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 판단을 고집하는 곳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 그로 인한 두려움이 함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속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인물이었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너는 축복이 될 것이다.”
이 말씀에는 더 넓은 뜻이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은 내가 축복하겠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은 내가 저주할 것이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사람이란 아브람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사람, 아브람의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브람의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의 삶의 방식은 사람의 힘, 사람의 생각과 판단만으로 살지 않는 사람, 사람의 선악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선악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브람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축복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아브람을 저주하는 사람은 아브람의 삶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아브람의 삶의 방식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의 하나님,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의 힘, 생각, 판단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 하나님의 선악이 아니라 자기의 선악을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브람을 저주합니다. 이 땅에서 사람의 힘,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사람을 싫어하고 저주합니다. 심지어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저주하십니다.
저주하심으로써 그들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아브람을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심으로써 아브람의 삶의 방식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아브람을 축복하는 사람을 축복하시고, 반대로 아브람을 저주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저주하신다면, 결국 땅의 모든 사람들은 아브람의 삶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게 될 것이요, 아브람을 축복할 것입니다. 이는 아브람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정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그 모든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축복을 받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람을 축복하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땅의 모든 족속을 축복하고자 하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 힘을 믿고 살아갑니다. 자기들 생각과 판단을 따라 살아갑니다. 자기들 선악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 사이에 갈등, 싸움, 죽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두려워합니다.
이런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선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의 행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돌보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
12:10-20 절 사건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들어온 땅에서 심한 기근을 만난 아브람은 자기 판단과 결정을 따라 이집트로 갔습니다. 그 때 그는 이집트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이집트 사람들이 그대를 볼 때에 말하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은 그대로 인하여 보존되리라.” 아브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내 덕에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두려워한 대로 바로가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갔습니다. 아브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두려움 가운데서 “어쩌나 어쩌나”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결국 바로는 사래를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창세기 12:20) 그리고 아브람은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창세기 12:16)
아브람은 자기 생각과 판단을 따라 행동했고 사람들을 두려워했습니다.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했고 두 눈 뜨고 아내를 바로의 첩으로 보낼 뻔했습니다. 기근을 피하려는 아브람의 판단과 결정이 도리어 그에게 재앙이 될 뻔했습니다.
그런 아브람에 대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셨습니다. 바로 왕을 통해서 아브람에게 큰 재산을 주셨습니다. 바로에게 재앙을 내려 아내를 돌려보내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잘못 판단하고 결정했지만,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 “내가 너를 축복할 것이다”는 말씀을 실제 삶 속에서 체험했습니다. “내가 너를 축복할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이 말씀을 이루셨고, 이로써 여호와 자신을 아브람에게 나타내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고 너를 축복하며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 너는 축복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빈 말씀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루시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루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을 나타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