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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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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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오라 - 깊은 곳에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주님
내게로 오라 - 깊은 곳에서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주님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부터 7주간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만만의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눌 것입니다. 만만한 하나님이 아니라 만만의 하나님, 우리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에 주신 말씀이 “너는 깊은데로 나가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 깊은데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깊은 데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만나주시고 만져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함께 예배하기를 소망합니다.
2025년 새해 시작하자마자 듣게 된 LA 화재 소식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진화에 진척이 있다는 얘기를 듣지만, 내일부터 또 다시 강풍이 불 수 있어서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계속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번 화마는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입힌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강력한 돌풍과 함께 불길이 소방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번져갔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버리고 대피해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평생을 수고하여 일군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수십년 동안의 추억을 잃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이런 혼란을 틈타 강도와 약탈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소방관 옷을 입고 빈집 털이를 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화가 납니다.
계속 절망적인 소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처음으로 들려온 희망의 소식은 한국인들의 섬김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LA 한인회가 기업과 한인교회들 연대를 이루어 어떤 NGO 단체들보다 가장 먼저 현장에 나와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나누어 주었던 겁니다. 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미국인들은 이런 혼란 중에 강도 약탈만 일삼는데, 한국인들은 가장 먼저 나와 조건 없는 섬김을 보여주었다 하면서, 자신도 이에 감동을 받고 자기 집을 피해자들에게 오픈해서 구호 활동을 한다 했습니다.
정말이지 누가 이런 재난 상황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너무나 안타깝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삶은 환난과 역경에도 계속되어야 하기에 힘을 내야 합니다. 생각지 못한 고난을 통과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마태복음 11장에서 화가 나신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은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이라는 갈릴리 주변 도시들에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던 두로와 시돈, 그리고 소돔을 연결시키시면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화재 피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도와 약탈을 일삼는 악한 자들처럼, 이 땅 사람들도 예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 하면서 율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종교적 멍에를 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은 실상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예수님이 처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 이 단어는 자그마치 1067번이나 쓰였습니다. 그 중에 한 구절은 이와 같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은 회개하면 죄를 용서하신다 수없이 약속하셨습니다. 이 회개라는 단어는 “반환하다”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쓰였습니다. 회개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 곧 우상에, 세상에 빼앗겼던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께 반환하는 것입니다.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죠. 또한 방금 읽은 구절에서 처럼 떠난 다는 의미인데… 거짓에서 떠나 진리로, 미움에서 떠나 사랑으로, 불의에서 떠나 공의로, 다툼에서 떠나 화목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물가에서 떠나 깊은 데로 나가는 것입니다. 깊은 데로 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만나주시고, 만져 주십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어둠이 떠나갑니다. 예수님이 만져주시면 우리는 위로와 치유, 그리고 새롭게 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깊은 데로 가라 하십니다. 우리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셔서 새롭게 해주시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 부르심이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내가 원해서 진 짐도 있고, 원치 않았지만 지게 된 것도 있죠. 학업, 취업, 사업의 짐을 집니다. 여러 인간 관계도 짐이 됩니다. 심지어 가족도 그래요. 남편이 짐되고, 아내가 짐이 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도 짐이 될 때가 있고, 그렇게 예쁘던 자식도 어느 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됩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내 몸도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됩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사회 정치 문제도 우리 어깨에 짐의 무게를 더합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우리를 예수님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게로 오라! 이 부르심은 다음 절에서 더 구체화된 두 가지 부르심으로 우리에게 전해 집니다.
1. 나의 멍에를 메라
1. 나의 멍에를 메라
쉼을 주신다면서 왜 멍에를 메라 하실까요? 멍에는 소나 나귀같은 동물들이 멥니다. 고대에는 노예들도 멍에를 멨답니다. 멍에를 메면 힘을 다해 수고해야 합니다. 일을 하는 것입니다. 돈 벌이를 위한 멍에이고, 성공을 위한 멍에입니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성공입니까? 멍에를 진 자들의 성공이 아니라 주인을 위한 성공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멍에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멍에를 메고 힘들게 일하고 수고하십니까? 주인은 누구입니까? “나”죠. 세상 멍에의 주인은 보통 납니다. 모두가 나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 그 짐을 지고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어요. 뭡니까? “나”라는 주인은 결코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도 상황도 만족함이 없으니 늘 투덜투덜 합니다. 그만큼 벌었으면 내려놓을 만도 한데 만족함이 없으니 내려놓지 않습니다. 자식에게도 만족함이 없으니 스스로 짐을 더할 뿐 아니라, 애가 감당할 수없는 멍에를 지라 합니다. 신앙 생활은 어떻습니까? 만족함이 있을까요? 주님의 멍에가 아니라 늘 자기 자신의 멍에를 메고 신앙 생활을 하니 종교 활동이 되는 겁니다. 율법의 멍에를 지고 늘 불평하며 실망하는 신앙 생활입니다. 무겁기만한 짐입니다. 만족함이 없어요. 교회를 아무리 옮겨다녀도 똑같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사망으로 이끄는 멍에입니다. 이것의 정체는 죄의 멍에입니다.
여기 멍에는 둘이 함께 메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 혼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고 고생 고생하며 이제까지 왔다 생각하지만, 실상은 죄의 종 노릇하면서 죄에 이끌려, 죄의 멍에를 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 죄가 주는 불안감, 죄책감, 상실감, 패배감, 우울감 이런 것들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은 “너의 멍에가 아니라 나의 멍에를 메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메야 할 것은 예수님의 멍에입니다.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하시면서 내 멍에를 나와 함께 메자 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내려 놓고,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주인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입니다. 만족함이 없는 “나”라는 주인을 위해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반복하면 할 수록 더욱 기쁘고 즐겁게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 주인은 만족함이 없어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니... 한 없이 무거워지지만, 새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그저 우리의 존재로 기뻐하시기 때문에 무거울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힘이 없어도, 좀 못해도 괜찮다 하십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괜찮아. 나이 좀 어리면 어떠니? 반대로 나이가 많으면 어때 괜찮아 하십니다. 또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지 못하는 신앙적 한계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 하셨는데, 여기 ‘쉽다’로 번역된 단어는 놀랍게도 “친절한, 자비로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친절하고 자비롭게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쉽다의 또 다른 뜻 하나는 “가장 좋은, 최상급의”라는 뜻입니다. 멍에는 두 마리 소가 함께 메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인은 능숙한 소에게 처음 멍에를 지는 초짜를 연결해 줍니다. 초짜는 일을 해 본적이 없고, 힘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불안하고 염려가 되겠지만, 능숙한 형님, 혹은 어미 소가 “괜찮아, 염려하지 말어. 두려워 할 필요 없어. 그냥 나만 따라오면 된다. 알겠지?” 합니다. 초짜는 이끄시는데로 따라만 가면 됩니다. 이렇게 좋은 것이 어디있습니까?
가장 좋은 이것을 바로 “은혜”라 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따라갈 때 거저 주어지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야 말로 가장 좋은 것이죠. 이 은혜가 나를 새롭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은혜로 새롭게 된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 필요없습니다. 오직 은혜! 은혜면 족합니다.
우리를 사망으로 이끄는 세상 멍에는 이제 내려놓고,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는 주님의 멍에, 곧 은혜의 멍에를 메고 기쁨으로 걸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나에게 배우라
2. 나에게 배우라
오늘날 젊은 이들에게 자기 계발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자기 계발이 없는 사람은 게으르고, 매력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배움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나면서부터 배움이 시작되죠. 배움이 끝나면 늙고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배우며 살아야 합니다. 또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모양이 달라지죠. 예수님은 나에게 배우라 하셨습니다. 이는 나를 배우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배우라는 단어는 알라내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배우고, 그분이 누구신지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1)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이 마음은 심장, 중심이라는 뜻으로 그 사람의 어떠함, 그의 인격을 말합니다. 세상은 폭력적이고 교만하지만,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세상은 딱딱하고 차갑지만, 예수님은 부드럽고 따뜻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성도는 마땅히 예수님의 아름다운 인격을 배우고, 그 분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면서, 언제나 약자들 편에 서시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이 되시고, 사랑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의 사역을 배워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힘이 되어 주며, 세상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고, 알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배우라 하신 “나”는 원어를 보면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죠.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의 복음, 이 말씀을 계속해서 배우고 또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 연구, 신학 공부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멍에를 메고 배우라 하셨으니,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예수님을 따라 하나 하나 삶에 적용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배움을 통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배움은 우리에게 “앎”을 가져다 줍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어느날 한 율법사가 물었던 ‘내가 무엇을 하여야,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에 대한 해답입니다. 그러니까 영생은 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사역,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배워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앎이 바로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영생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너희 마음에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얘기할 때의 그 마음과 다른 마음입니다. 우리 말 번역이 같아서 아쉽지만, 이 마음의 본 뜻은 영혼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게로 오라고 초대하신 것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심으로 우리 영혼에 쉼을 주시고, 새힘을 주심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랑하는 KCOAA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왜 세상 멍에를 지고 삽니까? 그것은 우상의 멍에요, 속박의 멍에, 사망의 멍에입니다.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지고 이제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예수님은 그렇게 살던 우리를 내게 오라 불러주셨습니다. 이제 그 짐은 내려 놓으십시다. 주님이 만나주시고, 만져주신다 하십니다.
2025년 새해는 만만의 하나님, 우리 구주 예수님께 나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멍에를 메십시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시며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사역!
그리고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알아
여러분의 영혼이 쉼을 얻고, 새 힘을 얻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나눔/적용
<나눔>
예수님이 갈릴리 주변 도시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수고와 지고 가는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게로 오라” 초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멍에'와 '예수님의 멍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적용>
우리 자신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내려놓고 회개하기
자녀나 가정 문제로 힘들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법 찾기
우리의 일상에서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구체적인 방법 찾기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의 사역,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는 영혼의 학습 계획 세우기
<목회적 제안>
갈등이 생길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그분의 사랑을 따라 용서를 선택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멍에가 가볍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 예수님의 멍에를 맨다는 것은 정직과 성실함을 기반으로 하는 근무 태도를 갖추는 것일 수 있습니다. 복잡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회피하거나 거짓말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진실하게 대처하십시오.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업무를 통해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세상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주위의 필요를 인식하며 이웃을 섬기는 방법으로 주님의 멍에를 멜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자세를 유지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통로가 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