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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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슬픔을 기쁨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룻 1:6-14
인생은 참 신비롭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신비는 바로 고난의 신비입니다. 그것은 고난 때문에 더 잘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인간의 좁은 생각으로는 인생의 신비, 고난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거듭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우리의 생각보다 높은 하나님의 생각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소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안목으로 인생을 바라보게 됩니다. 룻기를 통해 배우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절망을 선택하지 않는 한, 아무도 우리를 절망시킬 수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우리가 희망을 선택한다면 우리 인생은 언제든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역전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룻기서 1장 1-5절을 읽으면 잃어버린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느낌입니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었습니다. 또한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나오미는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슬퍼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본문을 다시 한 번 보면 잃어버린 이야기가 아니라 남아 있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남아 있는 것에 초점을 둘 것인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룻 1:3-5).
이 말씀에서 ‘죽고’라는 말에 초점을 두지 말고 ‘남았다’는 말에 초점을 두고 읽어보시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인생은 초점 맞추기입니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고 우리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변화의 첫 출발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있습니다.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이 남았습니다. 두 아들이 죽고 난 후에는 두 며느리가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남은 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두 아들 때문에 두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두 아들이 죽은 후에 나오미는 그의 삶을 역전시켜 주는 룻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보다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라고 명하셨을 때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출 4:2).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있던 지팡이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모세의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화시켜 사용하셨습니다(출 4:20).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가서 기적을 행할 때 어떻게 역사하였습니까? 그는 과부에게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왕상 17:11)고 말합니다. 그때 사르밧 과부가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왕상 17:12) 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하시어 극심한 가뭄의 때를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물으십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역전의 인생을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상실의 아픔을 만나게 됩니다.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잃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를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닫힌 문, 잃어버린 것, 떠나 버린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열릴 문, 아직도 남아 있는 것, 아직도 남아 있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출 것인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아직도 두 며느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것보다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능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환경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오미에게는 잘못된 선택을 과감하게 돌이킬 수 있는 회개의 능력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능력을 최대한 사용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 지혜와 용기는 하나님이 그녀에게 부어주신 은총이었습니다. 그 은혜를 따라 나오미는 역전승의 궤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오미의 인생이 역전될 수 있었던 것은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줄 아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철저히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룻 1:6,7).
나오미는 지금 모압 땅을 떠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곳을 떠났습니다. 나오미는 지금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란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새로운 치유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역전승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인생을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궤도를 수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십시오. 회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일어나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고통 중에 있던 나오미가 어느 날 소식을 듣습니다. 6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듣고”입니다. 무엇을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사는 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되고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지 못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고통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고통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이끌어 내십니다. 고통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것이 고통이라는 신비로운 방법입니다.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라는 책에서 고통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들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고통이란 귀머거리에게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듣는 기술이 말하는 기술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듣기 위해서는 잠잠해야 합니다. 듣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듣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때 우리 영혼이 기름진 것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 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 55:2,3a).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 영혼이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믿음이 성장합니다.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잠시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현대의 힘은 속도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다른 업체 보다 빨라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보다 빨리 정보를 입수해야 되고, 보다 빨리 앞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것이 현대입니다. 그래서 현대는 속도의 전쟁입니다. 옛날에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빠른 것이 모든 것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므로 빠른 속도로 변화되는 21세기에서 승리하는 길은 속도감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도를 낼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방향입니다. 아무리 빨라도 방향이 틀렸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잘못된 방향에 들어선 것도 모르고 속도를 내면 큰일 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길은 때때로 속도를 줄이고 잠시 멈추어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향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가인 아이작 스톤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중국에는 전국에서 선발한 어린아이들을 모아서 만든 국립관현악단이 있습니다. 10억 인구 중에 선발된 아이들이기 때문에 보통 연주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공산주의 특유의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훈련을 시켰기 때문에 열 살 안팎의 어린아이들이 차이코프스키의 어려운 곡들도 굉장히 잘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책임자가 아이작 스톤한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작 스톤은 두 가지 생각을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 어린 나이에 기교 있는 음악을 아이들이 연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둘째, 그러면서도 이토록 영혼이 없는 음악은 처음이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입니까? 스파르타식 훈련을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연주의 기교를 습득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혼이 담긴 연주, 영감이 넘치는 연주는 그렇게 단시일 내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하는데 속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양심이 없고 영혼이 없고 하나님이 없다면 그 성공은 타이타닉호와 같은 비극으로 끝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잠시 속도를 줄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나오미는 그동안 성공을 위해, 물질적인 부요를 위해 속도를 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영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속도를 줄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요히 내 심령의 문을 열고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의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오미는 자신이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는 것을 깨닫고는 과감하게 돌아섰습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빨리 돌이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체하면 안 됩니다. 지체할수록 손해입니다. 돌이킬 때는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는 돌이킬 줄 몰랐기 때문에 망한 것입니다. 결단할 때는 과감해야 합니다.
회개란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란 결단하는 것입니다. 회개한 그동안 붙잡은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돌려주십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면서 모압에서 얻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합니다. 두 며느리에게 자신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는 하나님 앞에 두 며느리를 올려 드린 것입니다.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룻 1:8,9).
나오미는 철저하게 모든 것을 정리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오미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들이 소리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룻 1:14).
오르바는 떠났지만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하나님은 룻을 남겨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남겨주십니다. 우리는 집착함으로가 아니라 집착한 것을 내려놓음으로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붙잡으려고 몸부림치기보다는, 두 손을 펼 때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존 베리는 “낙원의 새는 쥐려고 하지 않을 때 손바닥에 내려앉는다”고 말했습니다. 나오미가 두 손을 폈을 때, 룻이 낙원의 새처럼 나오미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잠시 멈추어 서고 여러분의 인생의 궤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조용히 자신의 생애를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달리고 있는 인생의 궤도가 어느 방향입니까? 혹시 잘못된 방향은 아닙니까?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세상 따라 가는 넓은 길은 아닙니까? 모압으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기 위해 고요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재능과 은사 그리고 사명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점검하십시오.
나오미가 잠시 멈추어 서서 달리던 인생의 궤도를 살피며 잘못된 궤도를 수정했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회복의 은총을 부어주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1).
이 말씀처럼 여러분이 잘못된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고 주님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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